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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GA투어의 창조적 개척자 최경주

남화영 기자2022.11.15 오전 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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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더플레이어스에서 우승한 최경주.

한국 남자 골프사에서 최경주를 빼고 말할 수 있을까? 코리안투어에서 없던 미국프로골프(PGA)투어라는 길을 탱크처럼 뚝심으로 밀고가 현실화시킨 개척자. 그로 인해 오늘날 세계 최고의 미국 무대에서 활동하는 후배들이 늘었다.

최경주의 인생만큼 혁신적인 골프 선수의 삶이 또 있을까 싶다. 역도 대신 반강제로 골프를 시작하고 3개월 만에 처음 필드에 나가 105타를 쳤고 두 번째 라운드에선 98타로 줄였다. 이후 선수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서울로 올라와 고된 연습생 생활을 보내고 1993년 8월 처음 응시한 프로 테스트에 덜컥 합격했다.

데뷔 해인 94년에는 첫 대회인 매경오픈에서 공동 43위, SBS프로골프최강전 공동 11위를 기록하면서 상금 순위 22위에 머물렀다. 하지만 이듬해 95년 팬텀오픈에서 생애 첫승을 거두고 시즌 상금 7위로 마쳤다. 96년에는 내셔널타이틀인 한국오픈 우승에 2위 4번으로 생애 상금왕에 올랐고, 1997년은 무려 3승(팬텀오픈, KPGA선수권, 포카리스웨트오픈)을 하면서 2년 연속 상금왕에 올랐다.

1996년 한국오픈에서 우승한 최경주 [사진=KGA]

까만 얼굴에 날카로운 눈매의 최경주에게 붙은 별명이 ‘필드의 타이슨’이었는데 마치 당시 세계 복싱계를 주름잡던 핵주먹 타이슨처럼 국내 골프계를 평정해갔다. 98년에는 SK텔레콤클래식 등 2위를 두 번하며 상금은 4위에 그쳤으나 99년에 한국오픈 우승을 비롯해 일본 투어에서도 2승을 거둔다.

이쯤하면 국내 무대에 안주했을 만하다. 하지만 그는 달랐다. 97년 미국에서 열린 골프 월드컵을 체험하고 깨우친 바가 있어 ‘5년 시간을 가지고 PGA투어를 준비하겠다’는 선언이 나왔다. PGA투어 퀄리파잉스쿨에서 첫 해엔 보기좋게 떨어졌다. 99년에 기회가 왔다. 4월 일본 투어의 기린오픈에서 우승한 데 이어 5월 우베고산오픈에서도 우승했다.

일본에서 시즌 상금 5위 이내에 들면 미국 PGA투어 퀄리파잉 스쿨 최종전 출전권을 주는데 여기서 35위 턱걸이로 2000년 투어 출전권을 따냈다. 당시 영어 한 마디 할 줄 몰랐지만 최경주는 더 큰 무대를 찾아 미국 투어로 뛰어들었다.

세계 최고 골퍼들이 모인 PGA투어 무대에서 살아남는 길은 연습밖에 없었다. 연습벌레라는 별명의 비제이 싱도 “나보다 더 지독하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미국 진출 첫 해엔 네 번째 경기 만에 예선을 간신히 통과했고 다시 큐스쿨로 넘어갔다.

노력의 결실은 2002년 5월 미국 PGA투어 컴팩클래식에서 따냈다. 한국인으로는 처음이자 동양인으로는 이사오 아오키(1983년 하와이오픈), 마루야마 시게키(2001년 밀워키오픈)에 이어 세 번째였다. 내처 템파베이클래식까지 2승을 올렸다. 2003년에는 유러피언투어 린데저먼마스터즈에서 대회 최소타 기록으로 우승했다.

2005년과 06년에는 클라이슬러클래식과 클라이슬러챔피언십을 연달아 우승했고 2007년에는 잭 니클라우스가 주최하는 특급 대회인 메모리얼토너먼트와 타이거 우즈가 주최한 AT&T내셔널에서 시즌 2승을 쌓아 미국 진출 9년만에 상금 랭킹 4위까지 올랐다. 이듬해 소니오픈에서 승수를 추가하더니 3년 뒤인 2011년에는 ‘제5의 메이저’로 불리는 더플레이어스를 우승하면서 미국 PGA투어 8승이라는 금자탑을 쌓았다. 아시아 선수로는 최다승을 이룩했다.

미국 투어를 처음 개척하고 승수를 쌓는 동시에 틈틈이 국내 코리안투어를 오가며 통산 16승을 쌓았다. SK텔레콤오픈은 2003년을 시작으로 2005년, 08년까지 3승을 올렸다. 2011년 시작한 CJ최경주인비테이셔널 개막전에 이어 이듬해까지 2연패를 했다. 투어에서 승수를 쌓는 이면으로 2007년 설립한 최경주재단을 설립해 골프로부터 받은 도움과 혜택을 사회에 환원하는 노력도 실천하고 있다.

2020년에는 만 50세가 되어 출전한 팸피언스투어 페블비치에서의 퓨어인비테이셔널에서 역시 한국인 처음으로 우승하는 기록을 작성했다. 살아온 이력 어느 한구석이 새로운 기록이나 도전 아닌 것이 없다. 최근 자신의 이름을 단 현대해상최경주인비테이셔널 출전차 참석한 그는 “다시 PGA 1부투어로 돌아가고싶다”면서 “거기서 좀더 자극이 된다”고 말했다.

※ 해당 콘텐트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11월호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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