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미정은 2009년 세이프웨이 클래식 우승 이후 스윙 교정을 하다가 슬럼프를 겪었다. 그러나 그럴수록 더 연습에 몰두했고 기어이 우승을 해냈다.[LPGA 홈페이지]
22일(한국시간) 미국 앨라배마주 프래트빌의 로버트 트렌트 존스(RTJ) 골프트래일 캐피털 힐 세니터 코스(파72)에서 열린 요코하마 타이어 클래식 최종 라운드.
18번홀에서 마지막 챔피언 퍼팅을 넣은 허미정(25)은 참았던 눈물을 왈칵 쏟아냈다. 허미정은 “너무 기다렸던 우승이라 눈물부터 왈칵 났다”고 했다.
허미정은 5년 2개월 만에 다시 챔피언이 됐다. 루키였던 2009년 7월 세이프웨이 클래식 우승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지만 이후 우승 없이 다섯 해를 보냈다. 허미정은 “어디 다녀온 것도 아닌데 너무 시간이 오래 걸렸다”고 농담을 했다.
중3 때 신장이 175cm. 또래보다 체격 조건이 월등했던 허미정은 차세대 기대주였다. 2005년부터 2006년까지 국가대표 에이스로 활약했다. LPGA 투어에서 3승을 거둔 유소연(하나금융그룹)이 국가대표 동기였다.
2007년 프로로 전향한 허미정은 국내 무대에 데뷔한 또래들과 달리 홀로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허미정은 “미국에는 주니어 때 딱 한 번 가봤기 때문에 겁도 났다. 하지만 초등학교 3학년 때 골프를 시작한 뒤 미국은 ‘꿈의 무대’였다. 한국에서 성공한 뒤 미국에 가는 게 낫지 않겠냐는 이야기도 들었지만 이왕 갈 거라면 빨리 가서 경험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혈혈단신으로 부딪힌 미국 생활은 예상보다 훨씬 더 고단했다. 얼마 뒤 아버지(허관무씨)가 사업(의류업)을 접고 미국으로 건너와 뒷바라지에 나섰지만 말도 통하지 않고 입맛도 맞지 않는 환경은 외로움으로 채워졌다. 2007년 말 퀄리파잉(Q) 스쿨에서 떨어진 허미정은 2부 투어로 발길을 돌려 상금랭킹 4위로 투어 카드를 얻었다.
첫해 세이프웨이 클래식 우승으로 성공을 거뒀지만 이후 생활은 다시 고단해졌다. 스윙 교정 뒤 극심한 부진에 빠졌고, 장기였던 퍼트 실력도 사라졌다. 스폰서 계약이 끝나 무적 선수가 됐고, 5년 동안 톱 10 아홉 차례에 그치면서 투어 경비를 대기도 빠듯해졌다. 그러나 허미정은 그럴수록 더 스윙 교정에 몰두했고 연습에 매달렸다. “날 믿고 모든 걸 정리해 미국으로 온 가족들을 보면서 실망하거나 좌절할 수 없었다”고 했다.
8월 말 포틀랜드 클래식에서 기회가 왔다. 최종 라운드에 선두로 나서 비록 우승은 놓쳤지만 바닥까지 떨어졌던 자신감을 끌어올렸다. 지난주 끝난 시즌 마지막 메이저 에비앙 챔피언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공동 3위를 한 허미정은 “아쉬운 점도 있지만 마음만 앞선다고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내 샷에 최선을 다하고 기다리겠다”고 했다.
허미정은 이번 대회에서 아버지에게 캐디 백을 맡겼다. 2년 전 이 대회의 전신인 나비스타 클래식에서 아버지와 함께 공동 3위를 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허미정은 “아버지와 함께 해 마음이 편안했다”고 말했다.
8월 중순까지만 해도 상금랭킹 100위권 밖으로 Q스쿨에 다시 내려갈 처지였지만 허미정은 이제 그런 걱정은 훌훌 털게 됐다. 허미정은 “스윙 교정을 하면서 계속 컷 탈락을 당했을 땐 겉으로는 표현못해도 내 결정이 잘못됐던 건 아닐까 마음 졸이기도 했는데 우승으로 그 결정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하게 돼 기쁘다”고 했다.
이지연기자 easygolf@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