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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준 칼럼-장하나와 치치의 세리머니

성호준 기자2016.02.11 오전 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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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치의 투우사 세리머니는 히스패닉계인 본인의 정체성을 잘 보여줬다.

장하나의 LPGA 투어 코츠 챔피언십 우승 세리머니가 화제다. 장하나는 시원시원한 성격에 걸맞게 칼을 휘두르는 화끈한 세리머니로 관심을 끌었다. 장하나는 전 주 바하마 클래식에서는 LPGA 투어 사상 첫 파 4홀 홀인원을 하고 그린에서 큰 절 세리머니를 해서 주목을 받았다.

골프에서 멋진 세리머니의 대명사는 치치 로드리게스(81)다. 그는 버디나 이글을 잡으면 투우사의 칼춤을 췄다. 그에게 공은 황소, 퍼터는 칼이었다. 칼을 휘둘러 황소를 잡은 후 절도 있게 칼집에 넣고 모자챙에 손을 얹어 인사를 했는데 스페인 특급 투우사의 그 것처럼 폼이 났다.

패션도 멋졌다. 놋쇠 와이어가 달린 레이밴 선글라스를 끼고 검정 테를 두른 챙이 좁은 밀짚모자를 쓴 그의 복장은 칼춤과 잘 어울렸다. 그는 골프라는 오래되고 점잔 빼는 스포츠에 즐거움과 색깔을 입혔다.

로드리게스는 “골프팬들은 돈을 내고 멀리 골프장까지 찾아와서 선수들이 샷을 할 때 말도 못하고 기침도 참아야 한다. 골프 팬들을 즐겁게 해주고 싶었다. 웃음이 없는 인생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고 했다.

초창기 치치는 버디나 이글을 하면 투우가 아니라 탱고를 추고 나서 모자를 벗어 홀을 덮었다. 어린 시절 동료 캐디와 내기를 할 때 기억 때문이라고 한다. 공을 홀에 넣었는데 구멍 안에 있던 땅다람쥐가 놀라 나오면서 공도 밖으로 튀어나왔다는 거다.

그의 동반자들은 공이 홀 밖으로 나왔으니 퍼트가 들어가지 않은 거라고 우겼다. 이후로 로드리게스는 공이 홀에서 빠져 나가는 것을 막으려 모자로 홀을 덮는 세리머니를 했다.

고루한 골프계에서 치치의 쇼는 충격이었다. 팬들은 박수를 쳤으나 동료들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가 밀짚모자를 던지면 홀 주위 그린이 상한다고 트집을 잡는 선수도 있었다. 1964년 당시 최고 스타 아널드 파머는 로드리게스에게 “생계를 위해서 치열하게 경기하는 동료 선수들은 당신의 춤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충고했다.

로드리게스는 화려한 쇼의 수위를 낮췄고 같은 조 선수들이 다 홀 아웃한 다음에만 세리머니를 했다. 1970년까지도 반발은 남았다. 그 해 카이저 오픈에서는 동료인 데이브 힐이 “광대 같은 짓에 신경 쓰여 제대로 경기를 못했다”고 신고했고 투어는 “선수답지 않은 행동”이라며 벌금 200달러를 부과했다.

이를 마지막으로 치치의 쇼는 투어에서 인정받았고 명물로 자리 잡았다. 그가 챔피언스 투어에서 활동한 90년대 말까지 약 40년간 쇼는 계속됐다. 오랜 기간이었지만 사람들은 그의 세리머니에 질리지 않았다. 동료들도 더 이상 경박하다고 느끼지 않았다. 그의 쇼는 기품이 있었다.

로드리게스는 푸에르토리코의 가난한 마을 출신이다. 4살 때 구루병 등을 앓았다. 영양실조로 인해 뼈에 문제가 생기는 병이다. 그래서 덩치가 작고 손가락도 휘었다. 로드리게스는 “굽은 손가락이 그립 잡기에는 오히려 좋다”고 할 정도로 긍정적이고 쾌활한 사나이였다. 키가 작아서 운동선수로 성공할 수 없다는 얘기도 들었는데 “골프 공은 내 키가 얼마나 되는지 모른다”면서 꿈을 꺾지 않았다.

여섯 살 때 사탕수수 플렌테이션에서, 일곱 살 때부터 골프장에서 일했다. 골프는 나무 가지와 깡통으로 배웠다.

그렇게 가난했는데도 그의 아버지는 더 어려운 사람을 위해 음식을 나눠줬다고 했다. 그래서 로드리게스도 자신이 번 상금에 필적하는 액수의 돈을 기부했다. 불우한 아이들을 위한 재단을 세우고 자주 찾아가며 봉사했다. 그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잭 니클라우스가 아니라 테레사 수녀다. 자선, 봉사와 관련한 상을 여러 개 탔다.

로드리게스는 선수로서 엄청난 업적을 남기지는 못했다. 메이저 우승은 못했고 PGA 투어 일반 대회 8승을 했다. 그러나 그는 진정으로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려 노력했다. 눈만이 아니라 가슴으로도, 그래서 그의 쇼는 마스터피스가 됐다.



장하나의 쇼맨십도 치치 로드리게스 못지않게 멋지다. 장하나는 어릴 때 검도를 해서 칼 휘두르는 자세가 나왔다. 장하나와 로드리게스 둘 다 항상 즐거워 보이고, 장타를 치고, 경기 스타일이 화끈하다.

장하나는 코츠 챔피언십 경기 후 인터뷰에서 "우승 세리머니 동작은 유튜브의 사무라이 스윙 동작을 본 뜬것"이라고 했다. 이 때문에 “왜 하필 사무라이냐”는 여론의 비난을 받고 있다.

한국이 일본 콤플렉스를 벗어날 때도 됐다. 그러나 위안부 문제 등으로 민감한 시기여서 사무라이 발언이 적절한 말은 아니었던 것 같다. 신중했다면 그 세리머니가 훨씬 더 빛났을 것이다.

장하나는 투어 풋내기 시절 치치처럼 시행착오를 거친 듯하다. 장하나도 위대한 선수이자 훌륭한 엔터테이너가 되기를 바란다. 치치의 투우사 세리머니는 히스패닉계인 본인의 정체성을 잘 보여줬다. 장하나가 참고할만하다.

성호준 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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