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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준 칼럼-박인비와 오초아의 명예의 전당

성호준 기자2015.11.17 오전 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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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PGA 투어 명예의 전당은 주요 스포츠 중 가장 깐깐하다. 박인비가 들어가면 2007년 박세리 이후 처음이다

박인비가 로레나 오초아 인비테이셔널에서 우승하면서 명예의 전당이 눈앞에 다가 왔다. 박인비는 메이저 대회 7승(각 2점)으로 14점, 일반 대회 10승으로 10점, 올해의 선수상과 베어트로피(최저타수상)을 한 번씩 타서 2점을 땄다. 합계 26점으로 명예의 전당 입회 포인트(27점)에 1점만 남기게 됐다.

시즌 최종전인 CME 그룹 투어 챔피언십에서 박인비는 리디아 고와 각종 타이틀을 두고 경쟁한다. 그중에는 명예의 전당 입회 점수가 달린 우승, 올해의 선수상, 최저 타수상도 있다.

두 선수의 기록이 워낙 박빙이기 때문에 둘 중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한 명이 3점을 다 가져갈 가능성이 있다. 박인비가 포인트를 채운다면 투어 생활 10년을 채우는 내년 중 명예의 전당에 들어가게 된다.

LPGA 투어 명예의 전당은 주요 스포츠 중 가장 깐깐하다. 메이저리그의 경우 1936년부터 2015년까지 314명이 입회했다. 매년 4명 가까운 사람이 들어갔다. 미국 농구도 매년 입회자(혹은 단체)가 평균 3명이 약간 넘는다.

그러나 LPGA 투어는 65년 동안 명예의 전당에 입회한 선수(혹은 관계자)가 총 24명에 불과하다. 2.7년에 한 명 꼴이다. 다른 스포츠에 비해 LPGA 투어 선수 숫자가 적다고 해도 이는 매우 낮은 수치다.

선수층이 두터워지면서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요즘 LPGA 명예의 전당 포인트를 채우는 것은 낙타가 바늘 귀 통과하는 것처럼 힘들어졌다. 2007년 박세리가 들어간 이후 8년간 아무도 LPGA 투어 명예의 전당에 못 갔다.

명예의 전당 포인트 27점을 채우기가 얼마나 어렵기에 8년간 입회자가 없을까. 올해 박인비와 리디아 고는 5승씩을 거뒀다. 다른 선수들을 압도하는 커다란 활약이었다.

그래봐야 일반대회 5승은 5점에 불과하다. 그 중 메이저대회가 하나 포함되면 6점이 된다. 그렇게 4년간 활약하면 24점을 얻는다. 4년간 꾸준히 이 정도 활약했다면 올해의 선수상과 최저 타수상을 한 두 번씩 탈 수 있다. 27점이 채워질 것이다. 그러나 4년간 이런 성적을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다.

가장 아쉬운 선수가 로라 데이비스다. 2001년 25점째를 딴 후 14년 동안 점수를 추가하지 못했다. 52세인 나이를 감안하면 전당 포인트로 LPGA 명예의 전당에 가기는 어려워 보인다.

한 때 동료들을 두려움에 떨게 했던 청야니는 2012년 3월 명예의 전당 포인트 23점 고지를 밟았다. 당시 청야니의 명예의 전당 입회는 당연하고 소렌스탐의 기록을 깰 수 있을지가 관심사였다.

그러나 골프는 아무 것도 약속해주지 않는다. 청야니는 이후 3년 여 동안 점수를 추가하지 못했다. 전당까지 남은 점수는 4점에 불과하고 아직 26세로 젊지만 자력으로 들어간다는 보장은 없다.

세계랭킹 1위를 역임한 선수들도 예외가 아니다. 스테이시 루이스는 17점이다. 만 서른을 넘긴 루이스가 10점을 더 채울 수 있을까? 알 수 없다. LPGA 투어 17승을 한 크리스티 커는 19점이다. 나이가 38세여서 역시 험난하다.

신지애는 한국과 일본에서 23승을 했지만 LPGA 투어에서는 메이저 2승 포함 11승이다. 명예의 전당 포인트로는 13점이다. 명예의 전당에 가려면 신발 끈을 조여야 한다.

우승을 많이 한다 해도 다 되는 것은 아니다. 1970년대 활약한 제인 블라록이라는 선수가 있다. 27점을 채우긴 했는데 모두 일반 대회 우승으로 얻은 점수다. LPGA 명예의 전당은 메이저 우승이나 올해의 선수상, 최저 타수상이 없으면 안 받아준다. 블라록은 못 들어갔다.

PGA 투어, LPGA 투어를 포함한 미국 골프 전체를 아우르는 명예의 전당이 있다. LPGA 명예의 전당에 입회하면 자동으로 골프 명예의 전당에 들어간다.

그러나 LPGA의 기준이 워낙 까다롭기 때문에 골프 명예의 전당에 들어가는 여성 선수가 너무 귀했다. 그래서 지난 해 골프 명예의 전당이 독자적으로 여성 선수의 입회 기준을 완화했다.

15승(미국, 한국, 일본, 유럽, 호주 여자 투어 포함)을 하거나 LPGA 메이저 2승을 하면 후보에 올라가고 투표를 통해 가입할 수 있다. 이 기준을 통과해 로라 데이비스가 명예의 전당 회원이 됐다.

그러나 LPGA 투어는 골프 명예의 전당과 LPGA 투어 명예의 전당 기준은 별개라고 선을 그었다. LPGA 투어 커미셔너 마이크 완은 “골프 명예의 전당의 자격 완화 결정을 환영하지만 LPGA 투어는 입회 기준을 변경할 의사가 없다. 27점은 달성하기가 매우 어렵긴 하지만 그래서 위대하고 지켜내야 한다”고 했다.


오초아는 명예의 전당 포인트가 37점이다. 그러나 입회하지 못했다. [게티이미지]

27점을 채우고 메이저 등에서 우승해도 안 되는 경우가 있다. LPGA 명예의 전당 규정은 현역 선수 생활을 10년 해야 한다는 규정도 있다.

여기에 걸린 선수는 로레나 오초아다. 오초아는 명예의 전당 포인트가 37점이다. LPGA 전당에서 원하는 27점을 10점이나 넘었다. 그러나 오초아는 7시즌만 뛴 후 결혼과 함께 은퇴했다. 그래서 못 들어갔다.

은퇴 후 5년이 지나면 LPGA 투어의 ‘베테랑 위원회’가 명예의 전당 입회 자격에 미달한 선수라도 투표를 통해 전당에 넣을 수 있다. 오초아는 은퇴한지 5년이 넘었다. 성적으로 보면 오초아는 당연히 뽑혀야 한다. 그러나 베테랑 위원회가 열린지 13년이 지났다. 언제 다시 열릴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로레나 오초아는 실력도 출중했지만 인성도 멋졌다. LPGA 투어에서 가장 사랑받는 선수 중 한 명이었다. LPGA 투어 무대는 상금을 놓고 경쟁하는 전쟁터 같은 곳이다. 누군가 잘 되면 시기를 받는다. 그러나 아무도 오초아를 미워하지 않았다. 오초아는 멕시코 어린이 드라마 천사의 합창의 히메나 선생님 같은 캐릭터다.
안니카 소렌스탐의 제국을 무너뜨린 오초아가 못 들어간다면 그건 LPGA의 명예의 전당이 아니라 고루한 규정의 전당일 뿐이다.

언젠가 오초아는 명예의 전당에 들어갈 것이다. 그래도 지금 오초아가 명예의 전당 주위를 서성이고 있는 건 아이러니다. 명예의 전당은 역사다. 역사책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다.

* 박인비의 명예의 전당 입성은 투어 생활 10년을 채우는 내년 말이 아니고, 한 시즌으로 인정되는 10경기를 치른 시점이므로 '내년 중'으로 바로 잡습니다.

성호준 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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