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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드의 모델' 앨리슨 리의 희로애락

김두용 기자2015.11.05 오전 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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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키 앨리슨 리는 올 시즌 LPGA 투어에 데뷔하면서 희로애락을 모두 겪었다. [고성진 사진작가]

올 시즌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는 유난히 슈퍼 루키들이 많다. 이들은 빼어난 기량뿐 아니라 남다른 개성으로 팬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필드의 모델’ 앨리슨 리는 ‘시선 강탈’의 선두 주자다. 앨리슨 리의 매력은 톡톡 튀는 패션은 물론 플레이에서도 나타난다. 올해 스무 살. 확고한 소신과 거침없는 입담이 매력적인 앨리슨 리를 만났다.

#톡톡 튀는 차세대 주자 팔방미인(八方美人)

“와~. 정말 모델이 따로 없네요.”
LPGA 투어 KEB하나은행 챔피언십이 열린 지난 10월 16일 인천 영종도 스카이72 골프장 오션코스. 팬들의 시선을 피해 건너편 레이크 코스로 건너갔지만 앨리슨 리의 사진 촬영이 시작되자 삼삼오오 모여든 삼촌 팬들은 감탄사를 쏟아냈다. 앨리슨 리는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자 곧바로 전문 모델 못지않은 포즈를 취했다. 간단한 동작으로도 자신의 매력을 한껏 드러내자 “역시 앨리슨 리”라는 탄성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LPGA 투어의 신인 앨리슨 리는 최근 ‘필드의 모델’로 각광받고 있다. 1m75cm의 늘씬한 키와 시원시원한 이목구비가 그의 매력 포인트다. 부모님과 할머니는 모두 한국인이지만 할아버지는 아일랜드 출신이다. 그래선지 앨리슨 리는 동양과 서양의 매력을 동시에 갖췄다. 패션 감각도 뛰어나다. LPGA 투어에서 뛰고 있는 한국 선수들이 ‘가장 닮고 싶은 몸매와 패션 센스의 소유자’로 앨리슨 리를 꼽을 정도다. 김세영은 “여자가 봐도 멋있고 예쁘다”며 부러움을 드러냈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LPGA 투어에서 활동하면서 살이 너무 많이 쪘다. 다이어트가 필요하다”며 손사래를 쳤다.

앨리슨 리는 오히려 우리말로 “도대체 어디가 예쁜가요”라고 반문했다. 그리곤 한참 있다가 자신의 매력 포인트로 머리카락을 꼽았다. 그는 “미국에서는 외모를 많이 따지지 않는다. 특별히 예쁘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전 미모가 그렇게 뛰어난 선수가 아니다”라고 재차 강조했다.

앨리슨 리는 KEB하나은행 챔피언십을 앞두고 열린 전야제에서 베스트 드레서 상을 받았다. 한쪽 어깨를 드러낸 푸른색 드레스를 입고 등장해 주목을 모았다. 대회 기간 중에 입은 톡톡 튀는 의상들도 눈길을 끌었다. 그는 “기분과 상황에 맞게 알아서 옷을 갖춰 입는다. 쇼핑을 좋아한다”고 털어 놓았다. 올 시즌 한국을 두 차례 방문했는데 패션의 거리라고 할 수 있는 명동을 찾았고, 또 김포공항 아웃렛에서 쇼핑을 하며 기분 전환도 했다고 한다.

미국에서도 앨리슨 리는 주목 받고 있다. 남자골프 세계 1위 조던 스피스(미국)를 후원하는 스포츠 브랜드 언더아머의 의류 후원을 받는다. 여자 골퍼 중에는 앨리슨 리가 유일한데, 잠재력과 스타성을 높이 평가해 시즌 중반 의류 계약 후원을 맺었다. 지난 겨울 LPGA투어 Q스쿨을 공동 수석으로 통과한 그는 올해 미국과 유럽의 여자골프 대항전인 솔하임컵에선 최연소 미국 대표로 뽑혀 팀 승리에 기여하며 차세대 주자로 떠오르고 있다.

#솔하임컵 전화위복(轉禍爲福)

처음 출전한 솔하임컵은 앨리슨 리를 글로벌 스타로 만들어준 대회였다. 어린 앨리슨 리에게 솔하임컵은 골프인생의 전환점이었고, 희로애락을 모두 느낄 수 있었던 인생의 축소판이기도 했다. 앨리슨 리는 솔하임컵 전부터 출전 논란이 있었다. 식중독 증세를 보여 출전이 불투명했다. 48시간 동안 음식을 먹지 못하고 정맥 주사만 맞으면서 체력이 바닥났다. 우여곡절 끝에 출전했지만 첫 3경기에서 모두 패해 캡틴 줄리 잉크스터의 선택이 잘못됐다는 여론도 있었다.

마지막 날 포볼 경기에서 사건이 터졌다. 앨리슨 리-브리타니 린시컴 조는 16번 홀까지 수잔 페테르센(노르웨이)-찰리 헐(잉글랜드) 조와 올 스퀘어 상황이었다. 하지만 17번 홀에서 앨리슨 리가 3m의 버디 퍼트를 왼쪽으로 뺐다. 이후 앨리슨 리는 상대팀이 컨시드를 주지 않았는데도 공을 집어 올렸다. 이때 수잔 페테르센이 컨시드를 주지 않았다고 항의를 했고, 경기위원은 앨리슨 리가 홀아웃을 하지 않고 공을 집어 들었다는 이유로 유럽의 승리를 선언했다.

앨리슨 리는 마지막 홀도 유럽에 내줘 결국 2홀 차로 패했다. 억울했던 앨리슨 리는 결국 울음을 터트렸고, 이 모습이 세계 골프팬들의 마음까지 아프게 했다. 앨리슨의 눈물이 오히려 반전의 계기가 됐고, 미국은 전투력을 끌어 올리며 모두가 힘들다고 생각했던 상황을 뒤집으며 14.5대 13.5의 대역전극을 이뤄냈다. 마지막 싱글매치에서 글라디스 노세라(프랑스)를 물리친 앨리슨 리는 “사람들이 상상도 못했지만 우리 12명은 결국 우승을 합작했다”고 자랑스러워했다.

사실 미국의 역전승도 이슈였지만 앨리슨 리와 페테르센 사이의 ‘컨시드 논란’이 더 화제였다. 로라 데이비스는 “정말 역겹다. 지금 같은 팀으로 뛰지 않는 게 다행”이라며 페테르센을 맹비난했다. 디 오픈 우승자 잭 존슨도 “일어날 수 없는 스포츠계의 수치”라며 비난에 동참했다. 신사 스포츠인 골프에서 있을 수 없는 비매너 행동이라는 공분이 일었다. 페테르센은 앨리슨 리의 버디 퍼트가 빠지는 것을 보고 헐과 함께 다음 홀로 걸어가는 액션을 취했다. 불과 45cm의 파 퍼트를 남겨둔 상황이라 이런 움직임이 암묵적인 컨시드라고 생각하며 앨리슨 리는 공을 집었던 것이다.

앨리슨 리는 “일단 내 실수다. 그 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갔기 때문에 어찌된 영문인지 당시에는 알 수 없었다. 아마 그 순간은 앞으로 남은 인생에서도 영원히 기억될 순간”이라며 “그 사건으로 인해 정말 많은 것 배울 수 있었다”라고 회상했다. 페테르센에게 서운했던 감정도 있었다. 그는 “지금은 괜찮아졌지만 당시에는 정말 힘들었다. 투지가 좋은 페테르센은 롤모델 중 한 명이었다. 캐나다에서도 박인비, 페테르센과 즐겁게 라운드를 했던 경험도 있었다”며 “페테르센이 솔하임컵 이후 이메일을 통해 사과를 먼저 했다. 또 사임다비 LPGA 말레이시아에서도 만나 진심으로 사과를 해서 앙금 같은 건 없어졌다. 지금은 예전처럼 대회장에서 만나면 서로 인사를 한다”라고 설명했다.

앨리슨 리는 ‘컨시드 논란’의 최대 수혜자였다. 특히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앨리슨 리에 대한 응원의 글이 폭발적으로 올라 왔다. 그는 “골프를 잘 모르는 사람들도 SNS를 통해 많은 격려의 글을 보내줬다. SNS에서 반향이 정말 컸다”고 털어 놓았다. ‘컨시드 논란으로 유명해졌다’고 말하자 그는 크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고 솔하임컵에 대해서 묻는다. 이전보다 유명해진 건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투어와 학업 병행 두 마리 토끼 사냥

앨리슨 리는 또 다른 재미동포 미셸 위처럼 투어와 학업을 병행하고 있다. 캘리포니아대학교(UCLA)에서 정치사회학을 전공하는 그는 지난 9월 3학년 과정을 시작했다. 그래서 KEB 하나은행 챔피언십 주간에도 학교 과제를 챙겨 왔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는 것도 중요하다. 골프와 공부의 밸런스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두 가지를 병행하느라 남들보다 바쁘지만 그래도 행복하다”며 환하게 웃었다. 이어 그는 “골프가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 선수 생활을 끝낸 뒤 다른 삶을 살고 싶다”고 덧붙였다.

KEB하나은행 챔피언십을 2언더파 공동 40위로 마친 그는 미국으로 돌아갔다. 학교 수업 때문에 남은 아시안 스윙에 모두 불참하기로 했다. 그리고 11월 19일 개막하는 시즌 마지막 대회인 CME그룹 투어 챔피언십에나 복귀할 예정이다. 그는 “미셸 위가 골프와 공부의 밸런스를 조율하는 법을 알려줬다. 학교 스케줄을 조정하는 방법도 가르쳐줬다”고 설명했다.

‘제 2의 미셸 위’로 불리고 있는 앨리슨 리는 “골프와 학업을 병행하는 미셸 위를 닮고 싶다” 고 했다. 그는 “기량도 그렇지만 미셸은 인성적으로도 존경 받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그래도 미셸 위보다 나은 게 하나 있다. 평균드라이브 샷 거리가 250야드로 장타자는 아니지만 퍼트 실력이 뛰어나다. 앨리슨 리는 평균 퍼트 수 29.01개, 그린 적중 시 퍼트 수 1.76개를 기록 중이다. 미셸 위의 30.35개, 1.80개보다 앞선다.

퍼트 비결은 ‘연습과 자신감, 감각’이라고 한다. 그는 “각자 퍼트를 하는 스타일이 있고 스스로 깨우쳐야 한다. 연습을 많이 하고 자신감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기술적인 요소보다 감각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편안한 어드레스 자세에서 스트로크를 할 수 있는 멘털이 퍼트를 좌우하는 요소”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퍼터는 잘 바꾸지 않는다. 앨리슨 리는 10년 동안 동거동락 했던 ‘애인’을 아직까지 사용하고 있다.

올해 앨리슨 리는 킹스밀 챔피언십에서 아쉽게 우승을 놓쳤다. 3라운드 17번 홀에서 4퍼트를 하면서 더블보기를 적어내 우승 문턱에서 미끄러졌다. 그는 “킹스밀이 우승할 기회였다. 하지만 4퍼트 때문에 우승을 놓쳤다. 프로 전향 후 처음으로 4퍼트를 했다. 다시는 그런 기분을 느끼고 싶지 않고 그런 실수를 하지 않을 것”이라며 입술을 깨물었다. 앨리슨 리는 3타 차 3위를 차지했다. 올 시즌 톱10 6번에 들었던 앨리슨 리의 올 시즌 최고 성적이었다.

그래도 시즌 전 설정했던 목표는 이미 달성했다. 그는 “투어 카드 유지가 시즌 목표였는데 생각보다 좋은 시즌을 보냈고, 만족스러운 경기를 했다”며 “대회가 이제 1개 밖에 남지 않았지만 목표는 우승”이라고 당차게 말했다.

#명예의 전당 입회 꿈

앨리슨 리는 세 번째 한국 방문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로스앤젤레스 한인촌에 사는 그는 “KEB하나은행 챔피언십은 LA 한인촌에서 경기를 한 기분이었다”고 했다. 앨리슨 리는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났지만 한국 문화를 잘 이해한다. 그는 “10살 때까지 할머니와 같이 살면서 한국어를 배웠다. 한국어의 80%는 알아듣는다. 말하는 것뿐 아니라 한글을 읽을 수도 있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실제로 한국어로 질문하는 내용들은 어려운 단어가 아니고는 대부분 알아 듣고 답했다.

아일랜드계 백인 하프코리언인 아버지 이성일씨가 골프 스승이다. 그는 “아직도 스윙 코치가 별도로 없다. 아빠가 어렸을 때부터 골프에 대한 모든 것을 알려줬다”며 “엄마 아빠의 희생 없이는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라고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아버지 이씨는 미드 아마추어로 골프를 좋아하고 잘 치는 편이라고 한다. 남동생은 골프와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살고 있다. 그는 “프로 전향 후 동생이 대회장에 온 적은 한 번도 없다. 누나가 인기가 있다는 것도 전혀 모른다”라고 했다.

한국문화도 익숙하다. 앨리슨 리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한국의 예의범절을 중시하며 자식들을 키웠다고 한다. 그래서 앨리슨 리도 겸손을 최대 미덕으로 꼽았다. 그는 “만약 겸손하지 않았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다. 골프에서는 특히 ‘겸손’이라는 덕목이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2009년 14살에 US여자오픈 본선에 출전할 정도로 어릴 때부터 두각을 나타냈고, 엘리트 코스를 밟아왔던 앨리슨 리다. 첫 메이저 대회에서 컷을 통과했고, 공동 26위라는 훌륭한 성적표를 받아 미국 골프계를 깜짝 놀라게 만들기도 했다. 거만해질 수도 있었지만 계속해서 자신을 낮추며 한 길을 걸어왔던 그는 지난해 미국 대학 최고 선수에게 수여되는 안니카상도 수상했다.

앨리슨 리는 지난해 10월에만 해도 프로 전향 계획이 없었다. 하지만 연말에 LPGA 투어 Q스쿨을 통과하면서 프로가 됐다. 그는 “지난해 이맘 때 미래가 뚜렷하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 이 자리까지 온 게 너무 영광이고 만족스럽다”라고 말했다. 대신 프로가 되면서 UCLA 대학에서 주는 장학금은 받지 못한다고 했다.

앨리슨 리는 자신이 사랑 받는 이유가 ‘꿈나무들의 전형’이기 때문이란다. 그는 “주니어 시절부터 LPGA 투어를 보면서 자라났다. 그리고 LPGA 투어 무대를 누비는 꿈을 꾸며 열심히 연습해 이 자리에 올랐다. 이런 성장 배경과 이미지가 모든 꿈나무들에게 좋은 예가 될 수 있기에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생각보다 한국팬이 많아 놀라기도 했다는 앨리슨 리다.

지금까지 좋은 예시를 보여줬지만 앞으로 가야할 길은 너무나 멀다. 이제 기나긴 투어 생활의 출발점에 선 앨리슨 리다. 폴라 크리머와 미셸 위처럼 남다른 개성을 유지하며 진정한 롤모델이 되기 위해선 성적으로 증명해야 한다. LPGA 투어 첫 승이 그 첫 걸음이 될 수 있고, 또 기외 많은 것들을 이뤄야 한다. 그는 “최종 목표는 모든 골퍼들이 꿈꾸듯 세계 골프 명예의 전당에 입회하는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앨리슨 리 profile
생년월일: 1995년 2월 26일
국적: 미국(한국명 이화현)
신장: 1m75cm
골프 입문: 2001년
프로 전향: 2014년 12월
취미: 쇼핑, 요리
장기: 퍼트
존경하는 선수: 안니카 소렌스탐
올해 성적: 톱10 6회(최고 성적 킹스밀 챔피언십 3위)
주요 경력: 2014년 미국 대학 최고 선수(안니카상)
2015년 LPGA Q스쿨 공동 수석, 솔하임컵 우승

김두용 기자 enjoygolf@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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