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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준 칼럼-스키점프로 시집 가는 신데렐라 이지영

성호준 기자2015.08.26 오후 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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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될 김흥수씨와 함께 자동차에서 셀카를 찍은 이지영. LPGA 투어에서 그는 가장 드라이버를 잘 치는 선수였다.

2대 신데렐라 이지영(30)이 LPGA에서 은퇴한다. 이지영은 오는 12월 스키점프 영화 ‘국가대표’의 실제 모델 김흥수(35)씨와 결혼한다. 27일 개막하는 요코하마 타이어 클래식이 마지막 경기다. 에비앙 챔피언십 출전권이 있지만 코스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 가지 않는다.

이지영은 2005년 만 스무 살에 LPGA 투어 나인브릿지 클래식 우승해 2006년 미국에 진출했다. 딱 10년을 채웠다.

이지영은 드라이브샷이 여자 선수 중 최고였다. 당시 이지영보다 멀리 치는 선수는 카린 쇼딘, 소피 구스타프손 등을 꼽을 수 있었지만 이지영만큼 똑바로, 멀리 치는 선수는 없었다. 캐디들이 이지영의 드라이버를 보고 눈이 동그래졌다. 그런 선수를 처음 본다고 했다. 호쾌하며 정교한 이지영의 드라이브샷을 크리머가 매우 부러워해 둘이 유달리 친했다.

루키이던 2006년 필즈 오픈에서 4개 파 5홀을 모두 2온 시킨 유일한 선수가 이지영이었다. 이지영은 평균 거리가 2006년 LPGA 투어에서 275야드로 4위, 2007년 273야드로 2위였다.

2006년부터 2010년까지 성적이 좋았다. 가장 뛰어난 성적을 낸 건 2007년이다. 상금 96만6000달러를 벌어 랭킹 10위였다. 2007년 이지영은 브리티시 여자 오픈 2위, US여자오픈 5위 등 메이저대회에서도 뛰어난 성적을 냈다.

그러나 아쉬움이 많다. 최고의 드라이버를 가지고 있었는데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한 인상이 짙다. 비회원으로 LPGA 투어에서 우승했지만 정작 회원이 되고 나서는 LPGA 우승이 없다. 준우승만 9번을 했다. 로레나 오초아에게 몇 차례 우승을 빼앗겼다.

이지영의 가장 아픈 기억은 2007년 미켈롭 울트라 오픈이었다. 대회는 신지애가 폴라 크리머와 9홀 연장을 벌인 킹스밀 리조트에서 열렸다. 그때처럼 18번 홀에서 계속 연장이 벌어졌다. 이지영은 수잔 페테르센과 치른 연장전 3번째 홀에서 3m 정도의 버디 기회를 잡았다. 페테르센은 약 10m였다. 그린이 경사가 있기 때문에 페테르센의 3퍼트 가능성이 있었다. 페테르센은 50cm 정도에 붙였다. 이지영은 버디 퍼트가 50cm 정도 지나갔다. 이 파 퍼트를 이지영은 넣지 못했다.

미켈롭 울트라 오픈은 LPGA에서 큰 대회였다. 스폰서 안호이저 부시가 남자 대회를 개최하다가 PGA에서 평범한 대회를 하지 말고 LPGA 대회 중 최고를 만들자고 해서 생긴 대회다. 선수에 대한 대우도 매우 좋았고 상금도 컸다. 선수들은 메이저 이상으로 이 대회를 좋아했고 뛰어난 선수들이 모두 나왔다. 우승과 준우승의 상금 차이는 1억원이 넘었다. 돌이켜 보면 1억원은 빙산의 일각이었다. LPGA 정상급 스타로 도약할 가능성이 있었던 페테르센과 이지영의 희비가 확 엇갈렸다.

이지영의 아버지 이사원씨는 아직도 킹스밀을 아쉬워한다. 이지영의 LPGA 투어 선수로서 분수령이 된 사건으로 본다. 멘탈스포츠인 골프는 바둑과 비슷하다. 큰 싸움에서 지면 자신감을 잃는다. 일본 최고 기사들에게 파죽의 승리를 거두던 중국의 녜웨이핑은 1989년 응씨배 바둑 결승 4국에서 조훈현에게 다 이겼다가 실수로 역전패했다. 이 싸움에서 진 후 녜웨이핑은 나머지 경기에서 힘을 쓰지 못했고 승부의 세계에서 사라졌다.

번번이 역전패를 당하면서 샷이 좋은데 심약한 선수로 불렸던 페테르센은 미켈롭에서 우승한 후 오히려 역전승을 많이 했다. LPGA 챔피언십에서 한국의 민나온에게 역전승했다. 롱스드럭스 챔피언십에서 우승했고 한국으로 와 하나은행 챔피언십에서도 챔피언이 됐다. 시즌 막바지 태국에서 열린 혼다 챔피언십에서도 우승하면서 그 해 페테르센은 5승을 했다. 주로 한국 선수와 경쟁해서 얻은 우승이었다.

10대에 한국여자오픈과 나인브릿지 클래식에서 겁 없이 쉽게 우승했던 이지영은 미켈롭 이후 우승 경쟁에서 트로피를 가져오지 못했다. 이지영이 이겼다면 그가 LPGA 정상급 스타인 페테르센의 자리를 대신 했을 가능성도 있다. 페테르센은 지금까지 LPGA 투어에서 번 상금이 1330만 달러다. 약 158억원이다. 이지영은 상금으로 약 44억원을 벌었다.

손목도 아팠다. 손목이 아플 때는 확실히 쉬어야 하는데 스폰서 계약을 새로 하는 등의 문제 때문에 쉬지 못했다. 스폰서에 대한 의무감이 지나치게 강했다. 이지영은 “2009년부터 심해졌고 2010년엔 조금만 움직여도 통증이 왔다. 성적이 그나마 괜찮아 버텨보려고 했는데 자면서 손이 조금이라도 눌리면 손목부터 어깨까지 아파서 깨곤 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공을 어떻게 칠까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안 아프게 칠까 생각하면서 샷을 했다”고 말했다.

이지영은 2010년 가을 수술을 했다. 재활이 아주 고통스럽지는 않았는데 지루하고 진전이 없었다. 의사가 아예 통증이 없어지도록 신경선을 잘라 버리자고도 권유했다. 이지영은 신경선이 없으면 쇼트게임 감각이 없어지기 때문에 거절했다.

2011년은 악몽이었다. 컷탈락이 많았다. 골프가 재미없어졌다. 거리가 줄어 기분이 나쁜데 퍼트까지 나빠졌다. 2012년 캐나다에서는 퍼트 수가 141개나 되기도 했다. 집에 퍼트 연습장을 만들어 놓고 하루 종일 해도 실력이 다시 나오지 않았다.

2013년 파운더스컵에서 이지영은 1, 2라운드 7언더파와 8언더파를 치고 선두에 나섰는데 3, 4라운드에서 큰 활약을 못했다. 이지영은 “2년 동안 죽을 쒀서 오랜만에 챔피언조에 나가니 너무 이상했다”고 말했다. 당시 우승은 스테이시 루이스가 차지했다. 이후 이지영은 TV 카메라에 잘 잡히지 않았다.

이지영에게 지난 주 줄리 잉스터와 팻 허스트가 고별 저녁을 샀다. 이번 주에는 허미정, 김세영, 강혜지와 친한 캐디들이 모여 파티를 했다. 이번 대회는 에비앙 챔피언십을 앞두고 열리는 대회여서 한국 선수들이 많이 나오지 않았다.

남자 친구 김흥수씨는 2012년 만났다고 한다. 한국에 잠깐 들어왔을 때 소개를 받았는데 대화가 잘 통했다. 이지영은 “처음 만났을 때 관심사도 비슷하고 좋아하는 것이 비슷하다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나와 사귀려고 오빠가 거짓말을 한 것 같다”고 웃었다. 김흥수씨도 골프를 좋아한다. 이지영은 “타수는 90대다. 그런데 거리는 엄청 나간다. 5번 우드로 티샷을 하는데 나랑 비슷하다”고 자랑했다.

김씨는 현재 평창 올림픽 조직위에서 스키점프 경기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이지영은 “오빠가 강원도에서 일 하니까 올림픽이 끝난 후 신접살림을 차릴 예정”이라고 말했다.

신데렐라 이지영은 LPGA에서 여왕처럼 살 기회가 있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은퇴하는 이지영의 목소리는 밝았다. “지금은 속이 시원하다. 고소공포증이 있어 비행기를 타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호텔생활도 지긋지긋했다”고 말했다.

이지영은 “그래도 시간이 좀 지나면 LPGA 투어 생활이 많이 그리울 것 같다”고 말했다. 최고의 여자 드라이버가 필드를 떠나 스키점프로 시집간다.

성호준 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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