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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준 칼럼-스테이시 루이스의 연장전

성호준 기자2015.08.25 오전 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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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장전 전적은 극단적이 되기도 한다. 박세리는 6승무패 리디아 고는 3승무패다. 스테이시 루이스는 3전전패 김인경은 5전전패를 기록했다.

“연장전은 아주 단순하다. 내가 이기거나, 집에 가거나 둘 중의 하나다. 그러나 상대를 어떻게 할 수 없기 때문에 내 능력 내에서 가장 잘 쳐야 한다. 결과에 대해 신경 쓰기 시작한다면 집중력을 잃을 것이다. 나가서 즐기고, 최선을 다하고, 이긴다고 생각해야 한다.” 이 말이 연장전에 임하는 선수 심리의 모범답안이다. 최나연은 “압박감은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모든 경기가 다 똑같다고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일반적인 대회는 연장을 서든데스로 한다. Sudden death, 직역하면 갑작스러운 사망, 즉 급사 急死다. 어감부터 매우 좋지 않다. 패배한 선수는 단번에 그냥 집에 가야 한다. 자신이 실수해도 돌아가고, 자신은 잘했지만 상대가 더 잘해도 진다. 그러나 연장전의 압박감을 이기기가 어렵기 때문에 평소만큼의 실력을 보여주면 대부분의 경우 이길 수 있다.
 
연장전 승률은 50%가 안 된다. 2명 이상이 연장에 들어가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특히 여성의 경우 극단적인 승률이 나온다. 이기는 선수는 이기고 지는 선수는 계속 지는 경향이 있다. 박세리는 연장전 6전6승을 기록했다. 그녀는 “연장전에 가면 더 편해진다”고 한다. 다른 선수들이 무너져 주는 것을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박세리는 쉽고 단순하게 생각하고 그렇게 쳐서 어렵지 않게 이겼다. 

2010년 벨마이크로 LPGA에서 박세리는 수잔 페테르센과 브리트니 린시컴을 꺾고 우승했다. 연장 세 번째 홀(18번 홀)에서 박세리의 티샷은 오른쪽 벙커에 빠졌고 린시컴은 페어웨이에 공을 갖다 놨다. 박세리는 단순하게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오른쪽 벙커 쪽에서는 페어웨이보다 그린을 공략할 각도가 좋고, 벙커에서는 스핀이 더 잘 걸려 공을 세우기가 낫다고 자기 최면을 걸었다”고 말했다. 

박세리는 벙커에서 6번 아이언으로 핀 3m에 붙였다. 그러자 린시컴이 흔들렸다. 두 번째 샷을 그린 앞 벙커에 빠뜨렸다. 린시컴이 샌드세이브에 성공했지만 박세리는 버디 퍼트를 쑥 집어넣었다. 그런 식으로 박세리는 연장전에서 계속 이겼다. 

타이거 우즈는 1998년부터 2006까지 비공식 대회 포함 연장전 13연승을 한 적이 있다. 안니카 소렌스탐은 연장 16승6패의 기록을 남겼다.  

그러나 다들 박세리처럼 연장전을 치르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알고 있지만 모범답안대로 되지 않는 것이 골프다. 우즈는 빨간 셔츠의 공포를 풍길 때는 쉽게 이겼지만 2006년 이후 4번 연장전에서 1승3패다. 

24일 열린 LPGA 투어 캐네디언 퍼시픽 위민스 오픈에서 연장전 분위기는 완전히 스테이시 루이스 쪽이었다. 루이스는 최종일 5타를 줄였고 리디아 고는 이븐파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공을 똑바로 치는 것으로 유명한 리디아 고는 하루 종일 드라이버와 아이언이 똑바로 가지 않아 고생했다. 

리디아 고는 지난 4월 이후 부진했다. 성적은 나쁘지 않았지만 우승 문턱에서 중압감을 가지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래서 우승 제조기 리디아 고가 4개월 넘게 우승을 못했다. 이번 대회에서도 최종라운드 동반자인 캔디 쿵이 초반부터 무너져줬는데 리디아 고는 전혀 도망가지 못했다. 

비틀거리는 리디아 고를 연장전에서 루이스가 살려줬다. 정규 경기에서 잘 친데다 연습장에서 샷을 가다듬고 나온 루이스는 연장전에서 4번의 샷 중 3번을 실수했다. 리디아 고는 편하게 우승컵을 들었다.

그 동안 연장전에서 실패한 기억, 한국 선수들에게 우승을 놓친 기억들이 루이스의 좋은 컨디션을 확 없애버렸을 것이다. 너무 많은 생각들이 그의 샷을 무디게 했을 것이다. 

LPGA 투어에 한국 혹은 한국계 선수가 없다면 이라는 가정을 한다면 어떨까. 기자는 루이스가 올해 7승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루이스는 혼다 챔피언십에서 양희영에 이어 2등을 했다. HSBC 챔피언스에서는 박인비, 리디아 고에 이어 3등을 했다. JTBC에서는 김효주에 이어 2등을 했다. US오픈에서는 전인지, 양희영에게 뒤져 3위를 했다. 캐나디언 오픈에서는 리디아 고에 이어 2위였다. 5번 우승이 가능하다. 

ANA 인스피레이션에서는 브리타니 린시컴에 이어 2등을 했다. 그러나 실제로 루이스는 챔피언조에서 3타 앞에 있는 김세영을 끌어내리려고 격전을 벌이다 기가 빠져 연장에서 린시컴에 졌다고 봐도 무방하다. 월마트 아칸소 챔피언십에서는 최나연, 미야자토 미카에 이어 3등을 했다. 그러나 최나연의 17번 홀 샷 이글에 흔들려 미야자토에게까지도 밀렸다고 볼 수 있다. 



박세리가 없었다면 LPGA에 있지 않았을 선수들 때문에 7번의 우승을 놓친 것이다. 8월까지 7승을 했다면 타이거나 소렌스탐의 전성기 때처럼 다른 선수들을 공포에 빠뜨리는 수준이 됐을 것이고 한 시즌 10승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한다.   

리디아 고는 약간 운이 좋게 연장전 3전전승의 기록을 남기게 됐다. 박세리처럼 연장 불패다. 스테이시 루이스는 리디아 고에 패하면서 연장전 3전3패가 됐다. 

연장전 기록으로 가장 안타까운 선수는 김인경이다. 5전5패다. 2012년 나비스코 챔피언십에서 짧은 우승 퍼트를 넣지 못한 후 연장에서 계속 지고 있다.  스테이시 루이스가 비슷한 길로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 

루이스는 연장전에서 패한 후 “선두에 5타나 뒤에 있었기 때문에 경기 전 내가 연장전에 갈 수 있다고 했다면 아주 좋아했을 것이다”라고 위안했다. 연장에 간 자체로 잘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연장에 안 갔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것은 다 안다. 루이스도 알고 리디아 고도 알고 팬들도 안다. 연장전에서 루이스가 또 큰 펀치를 맞았기 때문이다. 충격은 작지 않다. 

루이스는 너무 많은 펀치를 맞았다. 올해 들어 7번 도전이 모두 실패했다. 말 그대로 7전8기를 해야 하는데 전 프로복서 홍수환씨에게 강의라도 들어야 할 판이다. 거기에 연장전 공포까지 짊어지게 됐다.

성호준 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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