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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준 칼럼-미셸 위의 골든타임

성호준 기자2015.08.10 오후 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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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초부터 왼쪽 발목에 보호대를 차고 나오는 미셸 위. 스윙을 할 때도 부상 때문에 스탠스가 눈에 띄게 좁아졌다. [골프파일]

십년 전 기자는 미셸 위가 큰 일을 할 거라고 믿었다. 미셸 위가 꿈 꿨던 마스터스 우승은 어렵더라도, 남자 투어에서 활동할 실력은 되리라고 봤다.

10대 중반의 소녀가 PGA 투어에서 언더파를 쳐서만은 아니다. 당시 남자 선수들을 포함해 또래 골퍼들 중 미셸 위가 최고였기 때문이다. 미셸 위의 실력이 어느 정도만 유지된다면 이전에 누구도 못했던, 성벽(性壁)을 넘을 여전사가 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

미셸 위가 남녀 통틀어 또래 중 최고였던 시기는 오래 가지 않았다. 같은 1989년생 중 괴물이 있었다. 북아일랜드 홀리루드라는 곳에 살던 곱슬머리 소년 로리 매킬로이가 2007년부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지금은 세계랭킹 1위 골퍼가 됐다.

매킬로이는 발목 부상으로 디 오픈에 못 나갔다. 미셸 위도 리코 브리티시 여자 오픈에 발목 보호 부츠를 신고 나갔다가 기권했다. 미끄러지면서 다리 부상이 악화되었다고 한다.

미셸 위의 몸은 지난해부터 삐걱거렸다. 다리에 테이핑을 하고 나왔다. 올해 들어서 악화된 것 같다. 경기 중 기권을 했다. 골반 통증이 무릎, 발목, 발에까지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허리 디스크와 관계가 있을 듯하다.

골프 천재 소녀로 세상에 알려진 2004년, 혹은 그 이전부터 미셸 위는 때로는 힘에 부치는 스윙을 했을 것이다. “마스터스 정복”이라는 목표를 세우면서 남자에 필적하는 혹은 이기는 스윙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10여 년간 그런 스윙을 하면서 압력을 많이 받는 왼쪽 관절들이 손상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타이거 우즈가 힘을 잃어가기 전 나타난 전조도 그랬다.

닦고, 조이고, 기름 치고, 아껴서 쓰면 오래 갈 수도 있지만 한계는 있다. 나이가 들어가는 타이거 우즈를 두고 전 캐디 스티브 윌리엄스가 한 말대로 “갈아 끼워도 결국은 닳아 없어지는 것이 인간의 몸”이다.

미셸 위가 잘 치료해 건강하게 돌아오기를 빈다. 미셸 위는 만 스물 다섯이다. 아직 젊어 몸을 추스를 시간도 있고, 다시 스퍼트할 수 있는 기회도 충분히 있을 것이다.

그래도 어느 정도의 시간은 걸릴 것이고, 이 부상과 함께 미셸 위의 최고점이 지나가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투어에서 더 이상 미셸 위는 어린 나이는 아니다. 올해 US여자오픈 출전선수의 평균 연령은 25세였다. 미셸 위는 올해를 기점으로 베테랑 축에 들어가게 된다. 미셸 위는 ESPN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늙은 것 같다”고 했다.

그의 드라이버 평균 거리는 2010년(평균 274야드, 1위)을 기점으로 조금씩 떨어지고 있다. 올해는 5년 전에 비해 18야드 줄어든 256야드로 31위다. 장타의 상징이었던 미셸 위는 이제 거리에서 과거처럼 압도적이지는 않다.

나이가 젊더라도 여기 저기 고치면서 운동을 해야 한다면 최고의 능력을 발휘하기 어렵다. 90도로 허리를 꺾은 채 하는 퍼트 자세도 척추나 골반에 별로 좋을 것 같지는 않다.



발목에 채워놓은 육중한 보호 부츠와, 몸을 보호하기 위해 좁아진 미셸 위의 스탠스는 그를 옥죄는 감옥 같다. 겁 없이 달려드는 어린 선수들을 보면 미셸 위가 이제는 도전자의 입장에서 경기를 해야 할 시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

영종도 스카이 72골프장 하늘 코스에 가면 미셸 위에게 헌정된 홀이 있다. 2006년 코리언 투어 SK텔레콤 오픈 컷 통과 기념이다. 이후 9년이 지났다. 미셸 위가 아픈 이 시점에서 돌아보면 그 9년은 미셸 위라는 선수에게는 매우 귀중한 시간이었다. 미셸 위는 그 중 5년을 대학에 있었다.

미셸 위는 프로와 대학 생활을 병행하는 것이 큰 지장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듯하다. 20대 초반의 시간은 그리 중요하지 않을 거라고 봤을 것이다. 안니카 소렌스탐처럼 30대가 되어도 최고의 기량을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을 거다. 소렌스탐 보다 위대하게 될 거라고 믿었을 테니까.

그러나 트렌드는 빠르게 변했다. 10대 후반에 프로로 전향해 20대 초중반에 전성기를 보내는 것이 현재 여자 골프 추세다. 그 트렌드를 만드는 데는 10대 중반에 거액의 스폰서 계약과 함께 프로로 전향한 미셸 위도 크게 기여했다.

결과적으로 대학 캠퍼스에서 선수 미셸 위의 골든타임 중 많은 부분이 흘러갔다. 선수로서 대학에 가느냐 안 가느냐는 본인 선택 문제다. 행복의 기준도 사람마다 다 다르다. 무엇이 맞고 무엇이 틀린 것도 아니다.

그러나 두 가지를 동시에 최고 수준으로 하기는 어렵다. 모든 것을 다 가질 수는 없다. 대학에 가게 되면 뭔가 포기를 해야 한다. 남녀의 벽을 깨려 했다면, 그게 아니라도 여자 최고의 자리에 오르려 했다면 대학에 가지 않았어야 하지 않을까.
아니면 중퇴했어야 하지 않을까. 소렌스탐과 로레나 오초아, 타이거 우즈, 박지은은 대학을 2년만 다녔다. 미셸 위는 유급을 포함해 5년을 보냈다.

최고 선수 중 대학을 4년 다닌 사람이 있긴 하다. 잭 니클러스는 대학을 4년 다녔다. 오하이오 주립대에서 약학을 전공했다. 프로가 될 생각이 없어 아버지의 가업을 이으려 했다. 보비 존스의 예를 따라 아마추어로 남으려 했다. 그러다 막판 생각을 바꿔 최고 선수들과 겨루겠다면서 프로에 전향했다. 졸업은 못했다.

스테이시 루이스는 대학을 졸업했다. 다녀야 할 사정이 있었다. 허리가 아파 저학년 때는 연습을 하지 못했다. 또 허리가 아픈 자신을 뽑아준 대학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는 생각도 했다고 한다.

미셸 위의 학위는 은퇴 후 다른 삶을 찾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 학위는 선수로서 미셸 위의 골든타임과 바꾼 것이다. 어느 것이 더 중요한지는 본인의 판단이다.

그가 골프 선수로 최고가 될 것으로 기대한 사람으로서는 아쉽다. 리오넬 메시가 대학에 5년 다닌다면 축구팬들이 얼마나 아쉬울 것인가.

성호준 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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