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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준 칼럼-캐디와 헤어지는 방법

성호준 기자2015.07.28 오전 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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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츠 챔피언십에서 최나연의 우승을 도운 데이비드 존스. 현재는 전인지의 가방을 메고 있다.

최나연이 지난 달 아칸소 챔피언십에서 우승할 때 경기 중 그린에서 직접 깃대를 빼서 들고 있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다. 그의 초보 캐디는 언제 핀을 뽑아야 하는지를 모르고 있던 듯 했고 보스가 핀을 빼자 당황한 듯 달려와 깃대를 받아갔다. 최나연은 경험 없는 캐디 때문에 고생한 것처럼 보였는데 우승 후에는 “새 캐디 때문에 우승할 수 있었다”고 얘기했다.

최나연은 올해 개막전인 코츠 챔피언십에서 우승할 때도 캐디를 칭찬했다. 마지막 라운드 17번 홀에서 나뭇가지를 치울 수 있다는 조언을 받았고 그 홀에서 파 세이브를 하면서 우승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했다.

그 캐디 데이비드 존스는 최나연이 2013년 여자 브리티시 오픈에서 준우승할 때 처음 만난 사람이다. 유럽 2부 투어에서 뛴 선수 출신으로 세인트 앤드루스 올드 코스에 대한 공략법을 최나연에게 알려줬다. 이후 최나연이 삼고초려로 모셔온 캐디였다.

그러나 아칸소에서 우승할 때는 새로운 캐디였다. 최나연의 매니저는 “존스가 북아일랜드에 있는 가족들에게 돌아가겠다고 해 새로운 캐디를 구했다”고 한다. 그 존스는 지금 전인지의 캐디가 됐다. 최나연과 존스가 같이 일을 하지 않게 된 이유는 반드시 가족 때문만은 아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신지애도 비슷한 일이 있다. 2008년 국제 대회 경험이 거의 없던 신지애의 가방을 메고 브리티시 여자 오픈 우승을 돕고, 세계랭킹 1위로 이끈 캐디 딘 허든과 2011년 헤어졌다. 당시 허든이 호주에 있는 노모의 병환 때문에 캐디 일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허든은 곧바로 유소연의 가방을 메고 US오픈 우승을 도왔다. 신지애와 이별한 이유가 반드시 어머니의 병환 때문만은 아니었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신지애, 유소연, 서희경, 장하나, 전인지의 가방을 멘 한국 전문 캐디 딘 허든. [성호준]

이후 허든은 한국 선수 전문 캐디가 됐다. 놀랍게도 유소연과 US오픈 연장전을 치러 패한 서희경의 가방을 멨고, 그가 출산으로 자리를 비운 동안 장하나의 가방도 챙겼으며 최근 전인지의 US여자 오픈 우승도 도왔다.

신지애나 최나연이 어려울 때 도움을 받은 캐디를 갈아 치우고 해고 사유를 둘러댔다고 얘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골프 선수가 캐디를 바꾸는 것은 투어의 일상이다. 캐디와 오랫동안 지내며 우정을 쌓는 것은 미담이지만 바꾸는 것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반대로 캐디가 선수를 해고하는 일도 잦다. 더 돈을 많이 벌게 해줄 수 있는 선수를 찾아 떠나는 일도 다반사다.

또 선수들이 캐디와 만나고 헤어지는 이유를 정확히 알려야 할 의무는 없다. 최나연과 신지애의 경우 실제로 캐디가 “가족에게 돌아가겠다”고 하고, 다른 자리를 알아봤거나 미리 제의를 받았을 가능성도 있다.

캐디와 선수와의 관계는 미묘하다. 캐디가 너무 말이 많아도 문제라고 선수들은 생각하고 말이 없어도 문제다. 선수의 기분을 살피면서 침묵해야 할 때 입을 닫고 필요할 때 기를 살려줘야 하는데 필요할 때가 언제인지의 기준은 말 그대로 선수 기분에 따라 다르다.

선수들은 캐디의 역할이 너무 커도, 너무 작아도 불만이다. 역시 모두가 공감할 객관적 기준은 없다. 캐디의 실력이 형편없으면 당연히 안 되지만, 지나치게 실력이 뛰어나도 선수의 독자적인 판단 능력이 줄어드는 것 같아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진실을 냉정하게 얘기하는 캐디가 좋다고 생각하는 선수가 있으며 반대로 컨디션에 따라 거리를 짧게 혹은 길게 불러주는 등 융통성이 있어야 유능한 캐디로 보는 사람도 있다. 결론은 어떤 캐디가 좋은 캐디인지 정답은 없다는 것이다.

프로 전향시기가 점점 어려지기 때문에 선수로서 성장 단계에 따라 그에 맞는 캐디가 필요하다. 어린 선수에게는 노련한 캐디가 좋지만 경험이 쌓이고 독자적인 판단을 해야 할 때 기가 센 캐디와 함께 있으면 충돌이 일어난다.

캐디를 바꾸면 기분이 새로워지고 좋은 성적을 내기도 한다. 신지애는 2012년 킹스밀에서 경험이 별로 없고 체격이 작은 캐디를 처음 데리고 나왔다. 덩치 큰 딘 허든이라는 방패 없이 신지애가 야전 사령관이 되어 처음 맞는 경기로도 해석할 수 있었다.

신지애는 그 때 폴라 크리머와 9홀 연장전을 치러 이겼다. 캐디의 실수가 몇 번 있었지만 신지애는 오히려 더 잘 했다. 그 다음 주 브리티시 여자 오픈에서도 신지애는 그 강한 바람을 뚫고 9타 차로 우승했다.

최나연도 올해 캐디를 바꾸자마자 우승했다. 캐디의 경험 부족이 최나연을 조금 더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만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캐디 교체는 나쁜 게 아니다. 그래도 헤어질 때는 자연스럽게 조용히 헤어지는 것이 좋다.

최근 PGA 투어 캐나디언 오픈에서 로버트 앨런비와 그의 캐디가 시끄럽게 헤어졌다. 라운드 도중 캐디가 해고되고 자원봉사자가 가방을 메야 했다. 클럽 선택에 관한 의견 다툼이 이유였다. 대다수의 갈등에서 그러듯 양쪽 주장이 달랐는데 한 조에서 이를 목격한 다른 캐디는 앨런비가 거짓말을 했다고 주장했다.

캐디는 약자다. 선수를 비난했다가 찍히면 직업을 잃는다. 우승 한 번에 1억원 넘게 버는 요즘 PGA 투어 캐디는 매우 짭짤한 직업이다. 그 동네에서 블랙리스트에 오를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공개적으로 선수를 비난한 것을 보면 앨런비가 인심을 많이 잃은 것으로 보인다. 앨런비가 경기 중 캐디를 바꾼 일이 네 번째라는 얘기도 나왔다.

앨런비는 올해 초 하와이에서 납치 폭행, 강도를 당했다고 주장한 선수다. 보도를 보면 그 캐디는 앞뒤가 안 맞는 말을 하는 앨런비를 보호하려 애쓰는 인상이었다. 그런데 경기 중간에 쫓겨났다.

멋지게 헤어진 경우도 많다. 최경주는 2011년, 8년간 함께 한 캐디 앤디 프로저를 자신의 재단 자선행사에 초청해서 포옹하며 “나의 가족이자 형님이었다”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

둘 사이의 관계가 항상 100점짜리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골프는 마음대로 될때가 10%도 되지 않는다. 스트레스가 많이 쌓이는 경기를 하다 보면 서로 많이 답답할 것이다. 그러나 최경주-프로저는 헤어질 때 감동적으로 멋있게 끝냈다.

신지애는 2012년 킹스밀부터 함께 한 캐디와 최근 헤어졌다. 역시 프랑스에 있는 가족과 함께 있기 위해 돌아간다는 이유였다. 캐디와의 마지막 대회에서 우승했다. 그 동안 둘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잘 알 수 없다. 3년 가까이 지내며 갈등도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함께 한 첫 대회와 마지막 대회에서 우승을 하면서 진한 추억을 만들었다.

톰 왓슨이 선수를 시작하면서 함께 한 캐디 브루스 에드워즈의 이별이 가장 감동적이다. 왓슨이 나이가 들어 성적이 부진하자 에드워즈를 당시 최고 선수인 그레그 노먼이 불렀다. 에드워즈는 가고 싶어 했다. 왓슨은 “최고 캐디는 최고 선수와 함께 있어야 빛을 발한다”면서 보내줬다.

그러나 에드워즈는 돌아왔다. “자신의 샷에 대해 이런저런 핑계를 대는 보스를 모실 수 없다”면서다. 에드워즈는 얼마 후 루게릭병에 걸렸다. 부진하던 왓슨은 갑자기 멋진 샷을 날리기 시작했다. 그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서라고 했다. 에드워즈는 2004년 마스터스 기간 중 세상을 떠났다. 왓슨은 눈물을 흘리면서 샷을 했고 관련 재단을 세우기도 했다.


최운정과 그의 아버지 최지연씨. [성호준]


7년 만에 우승한 최운정이 캐디인 아버지와 헤어질까 말까 고민하고 있다. 아버지 최지연씨는 딸이 우승하면 캐디를 그만두겠다고 여러 차례 얘기했다. 그러나 최운정과 아버지 모두 아쉬움이 남는 것 같다.

최지연씨는 투어에서 가장 열심히 코스를 연구하고 그린의 미세한 경사까지 다 찾아내 딸에게 주려하던 사람이었다. 최씨는 “적어도 내가 캐디를 하면서 딸에게 대충 감으로 치게 하고 싶지는 않다. 모든 데이터를 다 찾아줄 것이다”라고 했다. 그는 여러 번 가본 골프장도 대회를 앞두고는 또 4~5번씩 답사를 하며 꼼꼼히 챙겼다. 최운정으로서는 아버지만한 캐디를 구하기는 힘들다. 대체 인력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세상으로 가기 위해 낯익은 것들과 작별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본다. 애니메이션 토이스토리의 주인공 앤디가 어릴 적 함께 놀던 낡은 카우보이 인형 우디, 대만제 로보트 버즈, 돼지 저금통 햄, 미스터 포테이토 등 장난감들과 헤어져야 하는 것처럼, 아이가 때가 되면 부모와 떨어져야 하는 것처럼 또 새로운 세상으로 가기 위해 움직이는 것도 순리다.


토이스토리 [디즈니 홈페이지 캡쳐]

LPGA 중계 화면에 최지연씨가 나올 때마다 “2부 투어 뛸 때 딸이 연습장에서 훈련하는 동안 차에서 멸치 한 박스를 머리 떼고 똥 따고 해서 조림을 해 주면 운정이가 아주 잘 먹더라. 그 때 아주 기분 좋더라”고 말하던 그의 표정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낡은 카우보이 장난감 우디는 어디 있든 영원히 앤디를 응원할 것이다.

성호준 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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