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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GA-DP월드투어 협약에 독소 조항 담겨

남화영 기자2023.05.09 오전 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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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코리아챔피언십을 마치고 구자철 KPGA회장(왼쪽)과 벤 코웬 DP월드 부사장이 협약식을 맺었다 [사진=KPGA]

한국프로골프(KPGA)가 최근 DP월드(구 유러피언)투어와 전략적 업무협약을 체결하면서 독소 조항을 선수들 모르게 집어넣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일 KPGA 임시이사회에서 남영우 아시안투어 이사는 구자철 KPGA 회장이 체결한 DP월드투어와의 협약서를 처음 보고 깜짝 놀랐다. 협약에 따르면 ‘한국에서 KPGA가 해외 투어와 공동 주관(코생션) 대회를 열 때는 DP월드의 승인(approval)을 받아야 한다’는 조항이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문구대로 해석하면 리브골프와 연계된 아시안투어가 한국에 KPGA와 공동 주관 대회를 열 때 유럽투어의 승인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얘기가 된다. 미국프로골프(PGA)투어와 사우디 오일머니가 후원하는 리브(LIV)골프와의 대립이 심하다 해도 골프 주권에 해당되는 일을 선수들의 동의없이 결정했다는 사실에 남 이사는 참담했다.

남영우 KPGA 부회장 겸 아시안투어 이사

이는 다음날 조민탄 아시안투어 최고경영자(CEO)에게도 알려졌다. 대한골프협회(KGA)와 공동 주관하는 대회인 GS칼텍스매경오픈 현장에 온 조 CEO는 “코리안투어와는 30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갑자기 이 같은 조치는 받아들이기 힘들다”면서 말했다.

“아시안투어에서 풀 시드를 가지고 활동하는 한국 선수가 33명이다. 정치는 골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전까지 자유롭게 대회를 출전하던 선수들이 앞으로 다른 투어의 제재나 승인을 받는다는 건 스포츠 발전을 저해한다.”

코리안투어와 아시안투어는 1960년대부터 아시아서킷이란 이름으로 긴밀하게 교류해왔다. 1980년대 창설된 매경오픈, 신한동해오픈은 모두 이같은 투어간 협력으로 발전했다.

특히 KPGA투어 주관 신한동해오픈은 2016년에 원아시아투어에서 아시안투어로 가장 먼저 복귀했던 전례가 있다. 따라서 KPGA집행부와 DP월드투어와의 협약은 스폰서들의 반발까지 초래할 수 있다.

10년만에 열린 DP월드 코리아챔피언십 [사진=KPGA]

KPGA의 유러피언투어와의 교류는 지난 2008년 발렌타인챔피언십으로 6년간 개최가 처음이었다. 그 뒤로 10년만인 올해 PGA투어-DP월드가 아시아에서 리브골프의 영향력 확산을 견제하기 위해 급히 만든 게 코리아챔피언십이다. DP월드투어로서는 대회 하나를 만들어주는 대가로 한국 땅에서의 코생션 승인권이라는 큰 성과를 챙긴 것이다.

남 이사는 “기업인 출신 회장님이 오셔서 대회를 늘리는 건 좋지만 왜 상의도 않고 선수들의 미래를 결정할 중요한 사안을 사무국 몇몇이 결정했는가”라면서 “얻은 것보다 잃은 게 더 많은 협약”이라고 평가했다. 이밖에 협약 조항 곳곳에 한국 선수의 아시안투어 출전을 제약하는 조항이 숨겨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협약 전부터 이미 제네시스 포인트 대상자 한 명은 DP월드 출전권을 받아 김영수가 유럽무대를 뛰고 있다. 이번에 카테고리 17번에 최고 3명까지 유럽투어를 뛴다는 건 유럽의 상금 적은 대회에 나갈 수 있는 것이긴 하지만 Q스쿨 합격자가 받는 것보다도 낮은 혜택이고 Q스쿨 최종전 출전권도 참가할 선수가 얼마나 있을지 모른다.”

문제의 핵심은 결정 과정에 선수 입장이 얼마나 반영되었나에 있다. 선수 중심으로 운영되는 아시안투어는 중요 사안을 결정할 때 선수의 의사를 가장 중시한다. 지난해 리브 골프와 손잡은 것도 선수들의 자발적인 의사와 판단에 따랐다.

매경오픈 시상식에서 조민탄 아시안투어 CEO(오른쪽 두번째)와 구자철 KPGA회장 [사진=아시안투어]

남 이사는 “아시안투어에서는 작은 결정도 12명의 이사회 의견을 듣는데 지금 KPGA는 마치 개인 회사처럼 운영된다”면서 “향후 아시안투어가 한국에서 대회를 열 때 DP월드투어의 승인이 필요하다면 어떤 스폰서가 좋아할까”라고 말했다.

KPGA는 DP월드투어와의 공동 주관 대회 코리아챔피언십을 2025년까지 개최하는 것을 성과로 내세운다. 하지만 그 성과가 우호적으로 유지된 30년 이웃의 등에 칼을 꽂는 형태라면 누가 반길 수 있을지 의문이다.

DP월드투어와 KPGA의 협약에 대해 선수 대부분은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독소 조항이 숨겨져 있지만 ‘KPGA가 유럽 대회를 만들었다’고 반기는 의견도 있다. 실제 협약 과정에서 내부의 반대 의견도 있었으나 연임과 성과에 목마른 구자철 회장과 KPGA 집행부에 의해 무시된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 대회보다도 아시안투어 대회에서 국가 면제, Q스쿨 면제권 등의 혜택으로 많이 출전해온 한국 남자 선수들에게는 직간접적인 피해가 갈 수 있다. 지난해 8월에 열렸던 아시안투어 인터내셔널시리즈 코리아 대회도 올해 열리지 않는다.

KPGA 집행부의 파행 운영 및 구자철 회장과 관련한 심층 취재는 오는 15일 밤 9시 JTBC골프 토크프로그램 ‘클럽하우스’에서 상세히 다뤄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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