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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다섯 신지애의 꿈과 골프

이지연 기자 기자2013.05.29 오후 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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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었지만 우승을 축하한다. 올 시즌 미국여자프골프(LPGA) 투어 시즌 개막전인 호주여자오픈 우승으로 기분 좋은 출발을 끊었는 데.
만족스러운 동계훈련을 했는데 이렇게 성과가 빨리 나와 기쁘다. 스스로에 대한 기대
치가 높아졌고 더 많은 우승컵을 들어 올릴 수 있을 것 같다.

오랜만에 파이널 퀸의 면모를 다시 보여줬다(웃음).
지난 몇 해 간 너무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은 대회를 소화하면서 부상을 당했고 경기력도 떨어졌다. 열정은 있는데 몸이 따라주지 않는 것처럼 속상한 게 없었다. 그래서 지난 겨울에 샷 연습이 아닌 체력 훈련을 열심히 했다. 예전보다는 최종 라운드 때 경기력이 조금 부족해졌다는 생각은 드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수술 뒤 열심히 체력 훈련을 하면서 전체적인 경기력은 예전보다 좋아졌다고 생각한다. 특히 14번 홀(파4)에서 나온 로브 샷은 지금 생각해도 환상적이었다. 광고판에 가려 홀이 보이지 않았는데 60도 웨지로 높이 띄워 프린지에 떨어뜨리기만 한다는 것이 홀로 쏙 빨려 들어갔다. 다시 쳐도 나오기 힘들것 같다(웃음).

현재 몸 상태는 어떤가?
괜찮다. 부상을 당해 고생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체력 안배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어떻게 효과적으로 피로를 풀면서 컨디션을 유지해야 할 지 관심이 많다. 예전에는 골프 연습 밖에 안했지만 요즘에는 무리하지 않으려고 한다. 4월초 끝난 크래프트 나비스코 챔피언십 뒤에 허리 통증이 좀 있어서 2주간 쉬면서 컨디션을 조절했다.



“골프는 나의 바탕, 최정상일 때 내려오고 싶다”

어느덧 프로 8년차가 됐다.
시간이 참 빠르다. 처음 프로 대회에 나가서 티샷 할 때 심장이 귀 옆에 있다고
생각될 만큼 ‘쿵쾅’거리는 느낌을 받은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국 투어까지 포
함해 8년이라는 시간을 투어 프로로 살았다. 물론 아직 나이로는 어리지만 전
체적인 골프 인생에서는 중반기를 조금 넘어섰다고 생각한다. 언니들이 20대
중반이 넘으면 1, 2년이 다를 거라고 했는데 요즘 그런 것을 조금씩 느낀다.


나이가 들면서 골프관이 달라졌다고 생각하나.
많이 바뀌었다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는 위에만 바라보고 뛰었다면 지금은 위
뿐만 아니라 그 이후에 일들을 훨씬 더 많이 생각하고 있다. 물론 아직까지 큰
목표가 있고 열정을 가지고 노력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로는
어떻게 잘 마무리를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많다. 한 3년 쯤 전부터 10년만
짧고 굵게 하고 싶다고 이야기했었는데 지금도 그 생각은 여전하다.

프로가 된 뒤 가장 큰 변화를 꼽는다면?
주니어 때는 볼 1천개, 타이어 때리기 400개, 퍼팅 7시간을 했던 적도 있지만 요
즘엔 시합이 워낙 많아 연습할 시간이 별로 없다. 그래서 가끔은 주니어 골퍼들
이 부럽다. 연습 시간이 짧은 만큼 연습은 철저히 효율을 위주로 하려 한다. 어
떤 선수들은 샷이 안 될 때 연습장에 가는데 나는 반대다. 기분이 안 좋은 상황
에서 스윙을 하면 안 좋은 기분과 리듬을 가져가게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안 될 때 재충전할 수 있는 시간을 갖고 포기할 줄 아는 게 과감함인 것 같다.

투어 생활 중에 생기는 스트레스나 긴장도 즐길 수 있게 됐나?
긴장할 때 푸는 방법은 없다. 긴장을 한다는 것은 내 목표치에 그만큼 다가온 거
라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긴장이나 부담은 푸는 게 아니라 그걸 잘 느낄 줄 알아
야 된다. 물론 긴장감을 느낄 때 어떻게 실수를 하지 않느냐의 문제는 중요하
다. 하지만 그동안 반복적인 연습을 통해서 내 몸에 스윙이 익숙해져 있기 때문
에 감각을 믿고 자신 있게 샷을 하려 한다.

징크스 같은 것도 없나?
예전엔 사소한 거 하나하나까지도 징크스였던 적이 있다. 물을 마시고 보기를
한 뒤 ‘물을 마시면 보기하게 되는구나’라고 생각하면 그게 바로 징크스로 이
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어느 날 ‘내가 18홀 내내 보기 할 실력은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음 날 18홀 내내 티샷을 앞두고 물을 마셨다. 물론 초
반에는 실수가 나왔지만 계속 마시다보니 파도 하고 버디도 했다. 징크스는
어떻게 판단하고 부딪히는가에 달린 것 같다.



골프는 어떤 의미인가.
예전에 누군가로부터 그런 질문을 받고 골프는 내 인생의 40퍼센트쯤 된다고 말했던 적이 있다. 그러나 인터뷰가 끝난 뒤 후회스런 마음이 들었다. 골프는 몇 퍼센트로 따질 수 없는 것 같다. 골프가 있었기에 꿈을 꿨고 그 꿈을 이뤘으며 지금도 꿈을 꾸고 있다. 때문에 골프는 나의 바탕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전부는 아니다.

지금은 어떤 꿈을 꾸고 있는가?
미국 투어에서 많은 한국 선수들이 좋은 성적을 냈지만 아직까지 올해의 선수상을 탄 선수는 없었다. 그동안 목표 같은 것을 밝힌 적이 없었지만 올해는 올해의 선수상이라는 확실한 목표를 가지고 준비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명예의 전당 회원이 된 뒤 정상에서 모든 것을 내려놓는 것이 최종 목표다.

목표 달성을 위해 넘어서야 할 라이벌을 꼽는다면?
훌륭한 선수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곳이 LPGA 투어다. 지난 해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던 스테이시 루이스(미국)는 올해도 좋은 경쟁자가 될 것 같다. 미야자토
아이(일본)와 박인비도 잘 친다. 내 경우 경기 중 다른 선수들의 스윙을 전혀 안
보이는데 이 두 선수만은 예외다. 두 선수 모두 쇼트 게임이 좋고 특히 박인비의
퍼팅은 환상적이다. 그런 점들이 자극제가 된다.

호주여자오픈에서 우승을 다퉜던 리디아 고 같은 10대 소녀들의 돌풍이 여자 골프계에 불어 닥치고 있다.
10대 소녀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

리디아 고의 별명이 ‘리틀 신지애’라고 하던데 기분이 좋았다. 리디아 고는 나랑
정말 플레이 스타일이 비슷한 것 같다. 어리지만 경기력이 놀라울 만큼 좋다. 하
이브리드나 페어웨이우드를 누구보다 잘 친다고 생각했는데 리디아 고는 나보
다 더 잘 친다는 생각이 들었다(웃음). 리디아 고를 보면서 고등학교 3학년 때 프
로가 됐던 내 모습이 떠오르기도 했다. 리디아 고는 기본기가 탄탄한 선수이기
때문에 잘 관리하면 좋은 선수가 될 것 같다. 그러나 아직 10대이기 때문에 지나
친 경쟁보다는 좋은 경험을 쌓는데 중점을 두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한, 두
대회의 결과로 자만심이 생기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말해주고 싶다.

스물다섯 자연인의 삶은 이제부터 시작

어느 새 스물다섯살이 됐다.
어른으로서 책임 기고 아직은 실수해도 받아줄 수 있는 좋은 나이인 것 같다(웃음).

골프 선수가 아닌 자연인 신지애의 삶은 어떤가.
10대 때부터 늘 나이 같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나를 생각할 때는 운동
선수라는 특별한 위치 때문에 좋은 점도 있고 안쓰러운 면도 있는 것 같다. 그래
서 스물다섯살의 삶을 즐기려고 노력하고 있다.

드라이빙, 음악, 독서 같은 취미 활동을 하면서 말인가?
혼자 운전하는 것을 좋아하고 질주 본능도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질주 본능을 제
대로 느껴본 적은 없다. 기껏 해야 급발진, 급브레이크 정도다(웃음). 음악은 사
람의 흥을 돋아주는 자극제같다. 기분을 마음껏 누리고 싶을 때 흥겨운 음악은
그 기분을 두 배로 만들어주고 슬플 때는 음악을 듣다 보면 스스로를 다스릴 수
있게 된다. 때로는 말로 하는 커뮤니케이션보다 음악이 전하는 멜로디와 가사
한 줄이 가슴에 더 와닿을 때가 있는 것 같다. 책은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읽기 시
작했는데 성격책부터 스릴러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고 읽는다. 꼼꼼히 정독하는
편인데 장면 하나하나를 생각하면서 읽기 때문이다.

이성 교제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질 나이인데.
이성 친구와의 교제는 골프에 매진하고 쉼없이 달려야 하는 나에게 오아시스 같
은 의미인 것 같다. 그러나 늘 대회장을 떠돌아야 하는 삶이 이어지니 제대로 사람
을 만나기가 힘들다. 그래서 30대 초반에는 결혼하고 편안한 가정을 꾸리고 살고
싶다. 선수 신지애가 아니라 여자 신지애로 사랑받고 위로받고 싶다.

가족 사랑이 남다른 것으로 유명하다.
중학교 3학년 때 엄마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뒤 ‘아빠와 두 동생들을 위해 골프
를 더 열심히 해서 성공해야 겠다’고 다짐했다. 엄마가 돌아가신 뒤 4개월 만에
처음으로 전국대회 우승을 했는데 엄마가 도와주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래서 가족들에게 더 잘 하려고 노력한다.

10년 뒤의 모습을 상상한다면?
코스 디자이너를 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다. 골프 선수는 늘 만들어진 코스에 맞
춰서 살아야 하는데 코스 디자이너가 되면 코스를 내 마음대로 그릴 수 있어서
좋을 것 같다. 여동생 지원이와 카페나 레스토랑, 갤러리 운영을 해보고 싶기도
하다. 하고 싶은 게 너무 많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
44사이즈로 다이어트(웃음)? 골프가 너무 좋고 골프를 했기 때문에 내 인생을 잘
만들었다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로는 또래처럼 할 수 없는 일도 많았다. 스물다섯
살 골프 선수 신지애는 어느 정도 이뤄놓은 게 많지만 인간 신지애는 아직 시작
도 안했다. 그래서 매일 계속 꿈을 꿀 생각이다.

이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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