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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경, '블랙버드'처럼 해피엔딩&비장의 무기

김두용 기자2017.08.07 오후 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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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경이 2012년 악몽을 떨쳐내고 메이저 첫 승을 거뒀다.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비틀즈의 노래 블랙버드 가삿말처럼 김인경은 부러진 날개를 붙잡고 힘차게 날아올랐다.

‘부러진 날개로 나는 법을 배워요(Take these broken wings and learn to fly).’

‘작은 거인’ 김인경(29·한화)이 가장 좋아하는 비틀즈의 노래 ‘블랙버드(blackbird)’의 한 구절이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노랫말이기도 하다.

부러진 날개로 파닥거리며 날갯짓을 하는 블랙버드처럼 김인경도 ‘2012년 30cm 악몽’ 뒤 날개가 꺾였다. 2012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시즌 첫 메이저 대회였던 크래프트 나비스코 챔피언십 최종일 18번홀에서 30cm 파 퍼트를 놓치는 바람에 연장전에 끌려 나갔고 결국 역전패를 당했다.

메이저 첫 우승 기회를 어이없이 놓쳐버린 김인경은 깊은 슬럼프에 빠졌다. ‘퍼트 입스(공포증)’까지 생겼다. 김인경이 다시 메이저 우승 기회를 잡기까지 5년 넘는 시간이 걸렸다. ‘다시 날아오를 이 순간을 기다려왔다(You were only waiting for this moment to arise)’는 블랙버드의 가사처럼 김인경은 악몽을 훌훌 털어내고 메이저 첫 승을 챙겼다. 김인경의 시련도 블랙버드처럼 해피엔딩이다.

김인경은 7일(한국시간) 스코틀랜드 파이프주 킹스반스 골프 링크스에서 열린 LPGA 투어 시즌 네 번째 메이저 대회인 브리티시 여자오픈에서 최종 합계 18언더파로 우승했다. 46번째 메이저 대회 출전 끝에 마침내 ‘메이저 퀸’으로 우뚝 섰다. 우승 상금으로 50만4821달러(약 5억7000만원)를 챙긴 그는 올 시즌 상금 108만5893달러(약 12억2000만원)를 기록했다.

또 올 시즌 LPGA투어 선수 중 가장 먼저 3승 고지를 밟았다. 2007년 LPGA 투어 데뷔 뒤 통산 7승째다. 전날 대회 54홀 최저타(17언더파 199타) 기록을 세웠던 김인경은 최종일 버디 2개와 보기 1개로 1타를 줄이는데 그쳤다. 2004년 카렌 스터플스(잉글랜드)가 세운 대회 72홀 최저타 기록(19언더파 269타)에 1타 부족했지만 김인경은 ‘지키는 골프’의 진수를 보여주며 전성시대를 활짝 열었다.

160cm으로 체격이 작은 김인경은 드라이브샷 거리가 짧다. 최종일 챔피언 조 동반자였던 모리야 쭈타누깐(태국)도 155cm의 단신 선수다. 프로필상 김인경이 더 컸지만 신장은 엇비슷했다. 하지만 쭈타누깐이 김인경보다 더 멀리 보냈다. 이날 김인경의 드라이브샷 거리는 평균 214.5야드로 쭈타누깐(239야드)보다 25야드나 짧았다.


티샷이 20~30야드 차이 났지만 김인경은 긴 클럽으로 볼을 더 정교하게 핀에 붙이며 쭈타누깐의 기를 눌렀다. 비장의 무기는 5번 우드. 김인경은 이번 대회를 앞두고 처음으로 5번 우드를 골프백에 넣었다.

이날 킹스반스 링크스는 전장 6755야드로 긴데다 비까지 내려 더 길게 플레이됐다. 이로 인해 김인경은 170~200야드를 남겨두고 세컨드 샷을 해야 하는 경우가 빈번했다. 5번 우드와 하이브리드는 긴 클럽으로 자주 그린을 공략해야 했던 김인경에게 큰 도움이 됐다.

특히 승부처였던 17번홀(파4)에서 선보인 환상적인 5번 우드 샷은 우승의 밑거름이 됐다.

리더보드를 힐끔 봤던 김인경은 경기를 마친 조디 유워트 셰도프(잉글랜드)가 최종 합계 16언더파로 2타 차까지 추격한 사실을 알고 긴장감을 늦추지 않았다. 17번홀 티샷 뒤 그린까지 167야드, 핀까지 197야드가 남았다. 자신의 5번 우드 거리가 190야드였던 김인경은 자신 있게 클럽을 잡았다. 바스락거리는 새의 날갯짓 소리를 들은 김인경은 어드레스를 풀고 다시 에이밍을 했다. 마치 블랙버드가 날아간 것처럼 김인경의 세컨드 샷은 절묘하게 페이드 궤도를 형성하며 그린에 떨어졌다.


17번홀은 평균 4.415타로 킹스반스 링크스에서 가장 어렵게 플레이되는 홀이었다. 세컨드 샷이 짧아 그린 앞 개울 인근에 볼을 떨어뜨린 쭈타누깐은 더블 보기를 범했다. 그러나 김인경은 2퍼트로 가볍게 파 세이브에 성공하며 사실상 우승에 쐐기를 박았다. 마지막 홀에서도 그린을 놓치지 않은 김인경은 챔피언 퍼트를 성공시키며 비로소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거리 핸디캡이 있었지만 긴 클럽을 잘 다룬 김인경은 이번 대회에서 그린 적중률 90%를 기록하며 우승의 발판을 마련했다.

오랫동안 가슴을 짓눌렀던 ‘30cm 퍼트 악몽’을 털어낸 그는 우승의 기쁨을 온몸으로 표현했다. 그가 요즘 가장 즐겨듣고 자신의 상황을 잘 표현한 노래에 맞춰 화끈한 ‘댄스 세리머니’를 선보였다. 영국의 록밴드 골드플레이와 체인 스모커스가 함께 작업한 ‘썸싱 저스트 라이크 디스(Something Just Like This)’라는 곡이다.

‘나는 초인적인 힘을 가진 누군가를 찾는 게 아니야. 어떤 슈퍼 히어로도/단지 내가 의지할 수 있고, 키스할 수 있는 누군가를 원하는 거야. 난 그저 이런 것을 원해….'

김인경의 표정은 창공을 힘차게 날으는 새처럼 평온해 보였다.

김두용 기자 enjoygolf@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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