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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필드의 우영우’ 이승민 “우영우처럼 유명해져서 좋아요”

김현서 기자2022.11.29 오전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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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맑은 미소를 짓고 있는 이승민.

올해 가장 큰 화제를 모았던 드라마를 꼽으라면 단연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다.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주인공 우영우가 세상의 편견을 이겨내고 변호사로서 성장하는 모습을 그려내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런데 드라마 속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 현실에서 일어났다. 그것도 골프계에서.

“제 이름은 똑바로 읽어도 거꾸로 읽어도 우영우입니다”라는 대사를 내뱉진 않지만 “하루하루 꿈을 가지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면 꿈은 이루어질 수 있다”며 희망의 메시지를 던지는, 발달장애 프로골퍼 이승민이 ‘현실판 우영우’로 불리는 주인공이다.

이승민이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이야기를 써내려 가고 있다. 이승민의 필드 생존기는 인기리에 종영된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못지않게 유쾌한 웃음, 따뜻한 감동, 특별한 설렘을 선사한다.

이 투더 승 투더 민! “우영우처럼 유명해져서 좋아요”

서울 강남 압구정의 한 지하 스튜디오가 푸른 하늘처럼 밝아졌다. 올 한 해 누구보다 바쁜 나날을 보낸 이승민이 11월 어느 날 생애 첫 매거진 촬영을 위해 스튜디오를 찾았다. 기자와 처음 만난 이승민은 봄날의 햇살 같은 미소로 반가움을 표했다. 이승민에게 가장 먼저 ‘골프계 우영우’ 별명을 아느냐고 물었다. 그는 수줍게 미소를 짓고는 기자를 바라보며 차근차근 속삭이듯 말을 이어갔다. “우영우라는 드라마가 많은 인기를 끈 상태에서 제가 우승을 해서 저에게 골프계 우영우라는 별명이 생겼어요. 저도 같이 유명해질 수 있게 돼서 기분이 좋아요.”

우영우에 관한 이야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승민은 우영우 역을 맡았던 배우 박은빈과의 웃픈(?) 에피소드도 공개했다. “박은빈 배우님에게 고마움을 전하기 위해 DM을 보냈는데 아직까지 답장이 없으세요. 많이 바쁘시다고 들었는데 휴~ 답.. 답이 없어요.” 이승민은 귀여운 푸념을 늘어놓더니 이내 자신의 휴대폰을 한참 바라봤다. 잠깐 사이 박은빈에게 답장이 오진 않았을까?하며 기대하는 눈치였다. 박은빈이 이 기사를 볼 수도 있으니 한마디를 하라고 하자 “앞으로 더 훌륭한 배우가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더 훌륭한 선수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라며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이어갔다. 언젠가 박은빈을 꼭 만나고 싶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이승민은 지난 7월 미국골프협회(USGA)에서 주관한 제1회 US어댑티브오픈에서 우승하며 한국 팬들은 물론 전 세계인들에게 희망과 감동을 안겼다. 우승 소감을 묻자 이승민의 눈은 어느새 초롱초롱 빛났고 입가엔 미소가 가득했다. “우승 영상을 백 번, 천 번 다시 돌려볼 정도로 너무너무 좋았어요. 다시 봐도 감동이에요. 올해는 제가 이루어야 할 일을 다 잘 마친 거 같아요.”



초등학교 때까지 아이스하키를 했던 이승민은 단체 생활에 점점 어려움을 느껴 중학교 2학년 때부터 골프 클럽을 잡고 골프 선수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가 골프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생각보다 더 단순했다. 이승민은 “공이 푸른 잔디 위로 슝~ 날아가는 게 신기했어요”라고 했다. 호기심에서 시작한 골프가 그의 인생을 바꿔놓은 것이다. 발달장애 2급이었던 이승민은 골프를 시작하면서 소통 능력과 사회성이 향상돼 발달장애 3급으로 개선됐다. 물론 그 뒤에는 이승민의 피땀 어린 노력이 있었다. 해병대 출신인 캐디 윤슬기 씨와 연습하다 힘들어서 도망친 적이 수십 번일 정도로 적잖은 고생을 했다고 한다.

이승민은 2017년 발달 장애인 최초로 한국프로골프(KPGA) 정회원 자격을 따냈다. 초청받아 출전한 KPGA 코리안투어 대회에서 두 번이나 컷 통과했다. 올해는 SK텔레콤오픈에서 본선 진출에 성공하면서 코리안투어 QT 예선전을 면제받기도 했다. 처음으로 QT 파이널 스테이지에 출전한 이승민은 공동 83위로 마쳐 내년 투어 시드권을 잡는 데 실패했지만 크게 아쉬워하지 않았다. “파이널 무대에 선 것은 처음이라 심장이 터질 듯 떨렸지만 행복했어요. 다음에는 꼭 통과할 수 있도록 만들고 싶어요.” 그는 처음 받아보는 대기 번호 ‘83’에 한껏 들뜬 모습이었다.



“승민이 옆에서 오래오래 있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행복해요”

촬영장에는 이승민의 분신 같은 존재인 엄마 박지애 씨도 함께했다. 박지애 씨는 좌충우돌 이승민을 애지중지 키운 그야말로 ‘아들 바보’다. 때로는 친구, 때로는 스타 골퍼를 케어하는 매니저 역할까지 모두 해내고 있다. 이승민의 관심사를 묻자 기다렸다는 듯 ‘불개미 에피소드’를 꺼내며 그렇게 한참을 개미 이야기로 채웠다.

“우영우에게 고래가 있다면 승민이에게는 개미가 있어요. 그것도 불개미! 따뜻한 나라에 있는 골프장에 가면 페어웨이에 불개미 집들이 많이 있어요. 승민이가 경기 도중 발견이라도 하면 그날은 비상사태예요. 공은 쳐다도 안 보고 불개미만 관찰하니까요. 그래서 불개미 집이 보인다 싶으면 승민이가 보기 전에 지긋이 밟아서 없애버려요.”

또 이승민의 관종기에 대해서도 처음으로 공개했다. “어제(11월 19일) 승민이가 프로농구 경기장에 (클럽을 이용한) 시타를 하러 갔는데 사람들이 알아보니까 엄청 좋아하더라고요. 약간 연예인 같은 그런 면들이 있어요. SNS도 열심히 하고요. 관종같다고 해야 하나? 가끔 웃길 때가 있다니까요 하하” 이후에도 박지애 씨는 이승민에 관한 이런저런 에피소드를 유쾌하게 늘어놓았다.

박지애 씨는 대학 졸업 후 호텔 매니지먼트를 공부하기 위해 유학길에 올랐고 그곳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그리고 아들 승민이가 찾아오면서 ‘박지애’가 아닌 오롯이 ‘승민이의 엄마’로만 살아가는 중이다. 누군가의 엄마이기 전에 한 사람으로서 지금 상황이 많이 버겁지 않을까.

돌아오는 답은 이랬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다고 하잖아요. 승민이가 행복하다면 그것만으로 만족해요. 승민이 옆에서 오래오래 지켜줄 수 있다면 더 바라는 건 없어요.” 이야기를 듣다 보니 순간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위대하다는 말이 떠올랐다.

박지애 씨는 세상의 모든 승민이와 그의 가족에게 따뜻한 위로의 말을 전하기도 했다. “자폐아를 둔 부모로 살아간다는 건 너무 힘든 일이에요. 저 역시도 그랬고요. 혹시 이 글을 보는 자폐아의 부모가 있다면 그래도 절대 포기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그냥 오늘보다 내일이 조금은 나아지겠지, 내일보다는 모레가 더 나아지겠지’라는 작은 희망으로 하루하루 버티셨으면 해요. 그러다 보면 좋은 일들이 조금씩 생길 거라고 믿어요. 우리 승민이처럼요.”

우리는 자폐인에게 공감 능력이 결여됐다고 말해왔다. 드라마 우영우에서도 그 부분이 적나라하게 그려졌다. 그런데 이승민은 화보 촬영 후 진행된 인터뷰에서 기자에게 이런 말을 전했다. “제가 여러 가지 장애가 있어서 좀 힘들었는데 엄마는 저를 포기하지 않고 골프 선수로 살 수 있게끔 저의 새 인생을 열어준 사람이에요. 지금까지 저를 지켜 주신 엄마, 아빠에게 감사드려요. 또 윤슬기 캐디 형한테도 감사합니다. 형 덕분에 우승할 수 있었어요.” 고마운 사람들을 향한 진심이 담긴 메시지였다. 작은 노력이 모여 큰 기적을 이뤄낸다는 게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이승민의 내년 목표는 US어댑티브오픈 2연패를 달성하는 것과 KPGA 코리안투어에서 컷 통과 2번, 최종 성적 40위 이내 드는 것이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16부작을 끝으로 막을 내렸지만 이승민이 만들어내는 좌충우돌 필드 생존기는 이제 시작이다.

EDITOR 김현서
PHOTO 조병규(BK스튜디오)
HAIR 정유진(에이라빛)
MAKEUP 원지현(에이라빛)

※ 해당 콘텐트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12월호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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