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뉴스

김인경, 가족 사랑의 힘으로 다시 들어올린 우승컵

이지연 기자2017.06.06 오전 12:37

폰트축소 폰트확대

뉴스이미지

한 달여의 휴식 기간 동안 펜싱을 새롭게 접한 김인경. 식중독 증세와 꼬리뼈 부상으로 힘든 시간을 보낸 김인경은 휴식과 재활을 하면서 몸과 마음을 다스렸다.[사진 김인경 제공]

미국여자프로골프협회(LPGA)투어 숍라이트 클래식 최종 3라운드가 열린 5일 미국 뉴저지주 갤러웨이의 스톡턴 시뷰호텔 골프장. 합계 11언더파로 우승을 확정지은 김인경(29·한화)은 환하게 웃으며 TV카메라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 “아빠, 안녕! 잘 지내세요?"

아버지 김철진(64)씨는 그 시각 경기도 용인의 집에서 딸이 인사하는 장면을 TV를 통해 지켜봤다. 지구 반대편에 있어도 아버지와 딸은 그렇게 우승의 기쁨을 함께 했다.

김인경은 김씨의 무남독녀 외동딸이다. 아버지 김씨는 요즘 허리와 발목이 좋지 않다. 그래서 딸은 한국의 아버지에게 메신저나 소셜미디어로 안부를 전한다. 이날 우승 순간에도 가장 먼저 떠올린 건 아버지였다. 김씨는 “인경이가 이번에는 정말 여유롭게 경기를 즐긴 것 같다. 그동안 마음을 졸이며 경기를 지켜봤는데 이젠 한 시름 덜어도 될 것 같다”며 기뻐했다.

2007년 LPGA투어에 데뷔한 김인경은 2008년부터 3년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우승했다. 그러다 2012년 시즌 첫 메이저대회였던 크래프트 나비스코 챔피언십 마지막 날 골프 역사에 남을 만한 큰 사고(?)를 쳤다. 1타차 선두를 달리다 마지막 18번홀에서 30㎝ 짜리 퍼트를 넣지 못해 우승을 놓친 장면은 지금도 골프팬들의 기억에 또렷하게 남아있다. 우승을 놓친 뒤 김인경은 지독한 슬럼프에 빠졌다. 그 이후 유럽여자투어에선 두 차례 우승했지만 LPGA투어에선 중하위권을 맴돌았다. 김인경은 “강박감이 심한 탓에 퍼트가 더 안됐다. 퍼트만 누가 대신 해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고 말했다.

김인경의 악몽은 지난해 10월 중국에서 열린 LPGA투어 레인우드 클래식에서 우승하면서 끝나는 듯했다. 그러나 불운이 또다시 김인경을 덮쳤다. 지난해 11월 로레나오초아 인비테이셔널을 앞두곤 식중독 증세로 병원 신세까지 졌다. 이어 지난해 12월에는 봉사활동을 갔다가 계단에서 넘어져 꼬리뼈와 왼쪽 팔을 다쳤다.

재활훈련을 하며 겨울을 보낸 김인경은 올해 3월이 되서야 뒤늦게 투어에 합류했다. 그러나 올해 출전한 5개 대회 중 롯데 챔피언십 공동 16위가 최고 성적이었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는 한 달 넘게 대회를 건너뛰기로 결단을 내렸다. 체력훈련을 하면서 피아노·기타 연주 등 취미 생활을 즐기며 안정을 찾았다. 호기심 많은 성격인 그는 펜싱과 양궁 등도 접했다. 투어 동료인 카린 이셰르(38·프랑스)의 소개로 새 캐디(악섹 배탕)도 영입했다. 김인경은 “부상을 당한 뒤 몸 관리의 중요성을 깨닫게 됐다. 재활훈련을 열심히 한 덕분에 상체근력이 더 좋아졌다”고 말했다.

김인경은 이번 대회에서 첫 날 5언더파, 둘째 날 4언더파를 치며 공동선두를 달렸다. 강풍이 불던 마지막날엔 대회 3연패에 도전하는 안나 노르드크비스트(30·스웨덴)가 11번 홀까지 3타를 줄이며 무섭게 쫓아왔다. 그러나 김인경은 17번 홀까지 2타를 줄이며 노르드크비스트를 2타차로 앞서갔다. 마지막 18번 홀(파5)에선 티샷을 벙커에 빠뜨렸지만 침착하게 3온을 시킨 뒤 1m 남짓한 파 퍼트를 집어 넣어 자신의 다섯 번째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최종일 퍼트 수는 27개. 김인경이 나비스코 챔피언십의 악몽을 극복했다는 증거였다. 그는 “최종일 경기를 앞두고 ‘포기의 축복’이라는 말을 떠올렸다. 바람이 많이 불어도 재미있게 치려고 했더니 정말 웃을 일이 생겼다”고 말했다.

김인경은 우승한 날 저녁 숙소에 돌아오자마자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는 늘 그랬던 것처럼 “골프는 될 때도, 안 될 때도 있으니 마음을 비워라. 허허실실의 자세로 골프를 즐기라”고 딸에게 조언했다.

김인경의 카카오톡 창에는 ‘즐거운 나의 집(Home sweet home)’이란 글귀가 적혀 있다. 그는 “나에게서 골프를 빼면 남는 건 가족과 친구뿐이다. 그들 덕분에 힘든 상황을 이겨내고 다시 웃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지연 기자 easygolf@joongang.co.kr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