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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준 칼럼-전인지의 게임플랜

성호준 기자2016.09.19 오후 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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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비앙 챔피언십에서 21언더파로 우승한 전인지

LPGA 투어 에비앙 챔피언십에서 남녀 통틀어 메이저 대회 언더파 기준 최소타인 21언더파로 우승한 전인지는 4라운드 내내 공식 인터뷰에서 “경쟁자와 스코어를 신경 안 쓰고 게임플랜대로 경기하겠다”고 말했다.

전인지는 지난해 이 대회에서 컷탈락했다. US여자오픈 등 8승을 한 최고의 시즌임을 감안하면 매우 실망스러운 성적이었다. 지난 해 유일한 컷탈락이기도 했다. 전인지 캠프에서는 16번 홀 짧은 거리에서 4퍼트를 하는 등 실수가 많았다는 판단을 했다. 그래서 이번 대회는 보다 철저히 준비했다. 코스 구석구석을 뒤지며 계획을 짰다.

그 중 하나는 서쪽으로 향하는 홀들의 대비였다. 에비앙 리조트 골프장은 뒤가 알프스 산이고 앞은 레만호인 산악코스다. 한국의 산에 세운 골프장처럼 좁고 티샷이 어렵다. 서쪽으로 향하는 홀들이 더 위험하다. 왼쪽이 언덕, 오른쪽이 계곡인데 슬라이스가 나는 것이 무서워 왼쪽으로 당겨치기 쉽다. 진짜 대형사고는 두 번째 샷에서 나온다. 티샷이 왼쪽으로 가면 러프인데다 발끝 내리막이 된다. 지형상 슬라이스가 날 가능성이 크다. 오른쪽 계곡 깊이 들어가기 쉽다.

파 5인 9번 홀과 18번 홀이 대표적이다. 전인지의 코치인 박원 JTBC골프 해설위원은 “9번홀과 18번홀에서 티샷이 왼쪽으로 가면 무조건 웨지로 레이업을 하기로 계획을 짰다”고 말했다.

거의 완벽한 샷을 치던 전인지는 3라운드 9번 홀에서 티샷이 왼쪽으로 갔다. 계획대로라면 레이업해야 했는데 웨지가 아니라 5번 아이언을 들었다. 전인지가 처음으로 게임플랜을 어기고 욕심을 낸 장면이었다.

우려한대로 공은 오른쪽으로 휘어 계곡으로 내려갔다. 계곡에서 한 번 더 욕심을 낼 수 있었다. 그 곳에서 치거나 근처에 드롭을 했다면 거리상으로는 유리하다.

전인지는 그러나 실수를 반복하지는 않았다. 그는 원래 친 자리로 돌아와 원래 계획대로 웨지로 레이업했다. 5온 2퍼트로 더블보기를 했으나 여기서 사고를 마무리했다. 다시 원래 게임플랜으로 돌아온 것이 의미가 컸다. 전인지는 4타 차로 3라운드를 마칠 수 있었다.

4라운드 18번 홀에서도 티샷이 왼쪽으로 갔다. 우승은 확정적이었지만 최저타 기록이 걸려 있어 전인지는 다시 욕심을 내려 했다. 하이브리드를 꺼내 들었다. 그는 경기 후 공식 인터뷰에서 “러프지만 라이가 좋아 하이브리드를 치면 그린에 올라갈 것 같았는데 캐디가 말렸다”고 했다. 전인지는 50도 웨지로 꺼내 홀에 붙여 파를 잡아 최저타 기록을 세웠다. 박원 JTBC골프 해설위원은 “대부분의 선수가 그 곳에서 그린에 올리려다 물에 공을 빠뜨렸다. 만약 쳤다면 슬라이스가 나 물에 빠질 확률이 90% 이상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인지는 결국 실수를 한 9번 홀에서 우승하고 18번홀에서 최저타 기록을 세운 것으로 볼 수 있다.

전인지는 클럽 구성도 바꿨다. 코스가 워낙 좁아 티샷이 중요하기 때문에 안전하게 티샷을 할 수 있는 하이브리드를 더 넣고 바운스각이 큰 웨지를 뺐다. 대신 준비를 했다. 바운스가 큰 웨지로 하던 중거리 그린사이드 벙커샷 자체가 나오지 않도록 샷 계획을 짰다. 또 러프에 공이 떠 있을 경우 바운스각이 큰 웨지로 샷을 했는데 이를 대비해 바운스가 작은 웨지로 떠 있는 공을 치는 샷을 집중 연습했다.

전인지는 부상 예방을 위해 오리털 조끼를 입고 경기를 했다. [게티이미지]

오리털 조끼를 입고 경기한 것도 눈에 띄었다. 4라운드는 비가 안 올 때는 별로 춥지 않아 다른 선수들은 긴팔 셔츠 정도를 입고 경기했다. 전인지는 인터뷰에서 “선수 생활하면서 생긴 이런 저런 부상 때문에 날이 추우면 컨디션이 떨어진다. US오픈이나 올림픽에서도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 따뜻하게 입고 허리에 핫팩을 몇 개나 붙였다”고 말했다.

전인지의 완벽한 준비 중 하나는 인터뷰다. 중계를 유심히 본 골프팬들은 전인지가 경기 중 혼자 걸을 때 중얼거리는 모습을 가끔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전인지는 라운드 후 나올 예상 질문에 대한 답을 써 놓고 이를 외우면서 경기했다고 한다. 박원 위원은 “외국어 인터뷰에서 말을 잘 하기 위한 것도 있지만 경기 중 너무 많은 생각 때문에 흔들릴 수 있는데 이를 예방하기 위한 작전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전인지는 완벽히 준비했고 아무도 못 가본 메이저대회 21언더파라는 고지에 올라갔다.

성호준 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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