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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 골퍼들의 루틴 같은 '억지미소'

김두용 기자2016.06.23 오후 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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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야 쭈타누깐(왼쪽)은 결정적인 샷을 앞두고 미소를 짓는다. 전인지는 샷 결과에 상관없이 미소를 띠는 경우가 많다.

지난 KPMG 위민스 PGA 챔피언십 최종 라운드 18번 홀. 선두와 1타 차 우승 경쟁을 하고 있던 에리야 쭈타누깐(태국)은 마지막 버디 퍼트를 앞두고 어드레스 동작을 취하는 도중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결정적인 순간에 미소를 띠는 모습은 낯설었다. 8m 거리의 버디 퍼트가 들어가지 않아 쭈타누깐은 1타가 부족해 연장전에 들어가지 못했다. 그럼에도 파 퍼트를 성공시킨 쭈타누깐은 마음의 짐을 벗은 듯 잇몸을 드러내며 활짝 웃었다.

쭈타누깐의 최근 경기를 보면 결정적인 순간에 미소 짓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골퍼들이 샷을 한 이후에 미소로 갤러리의 박수에 화답하는 풍경은 자주 볼 수 있지만 샷 이전에 얼굴에 표정을 드러내는 건 흔치 않다. 쭈타누깐의 미소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을까.

올 시즌 3개 대회 연속 우승을 하기 전까지 쭈타누깐은 공포증이 있었다. 우승 경쟁을 하다가 최종 라운드 막바지에 자주 무너졌다. 이 트라우마를 벗어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올해 봄 쭈타누깐은 ‘골프 여제’ 안니카 소렌스탐의 옛 멘털 코치들에게 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이런 심리 상담이 ‘준우승 악몽’을 털어내는 데 도움을 줬다는 게 쭈타누깐 매니지먼트사의 설명이다.

박인비와 손연재, 박태환의 멘털 코치로 잘 알려진 조수경 스포츠심리연구소 박사도 ‘쭈타누깐 미소’에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미소가 루틴에 포함되면 경기력 향상을 위해 의도적인 행위다. 하지만 간헐적으로 나오면 성격의 영향일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시각에 따라 쭈타누깐의 표정은 ‘억지웃음’으로 보이기도 한다. 일반 대회와 무게감이 다른 메이저 대회에서 쭈타누깐의 미소는 압박감을 털어내기 위한 수단일 가능성이 크다. 중요한 샷을 앞두고 종종 쭈타누깐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쭈타누깐은 메이저 대회 우승 경험이 없다.

골프는 개인 종목이다. 보통 100명 넘는 선수들과 우승 경쟁을 벌이지만 자신과의 싸움이 가장 중요한 스포츠다. 자신과의 고독한 싸움에서 승리해야만 우승도 할 수 있다. 마인드 컨트롤을 통해 하루 18홀을 견디고 나흘간 72홀을 인내해야만 승리할 수 있는 멘털 스포츠다. 혼자서 모든 짐을 짊어지고 가야 하는 종목이라 감정 통제가 매우 중요하다. 순간적인 감정에 일희일비하면 경기력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조수경 박사는 자신만의 ‘긍정적 에너지 표출 방법’을 갖는 것을 제안한다. 그는 “사람마다 긍정 에너지를 표현하는 방법이 다르다. 자신의 성격과 성향에 맞는 자신만의 방법을 갖는 게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웃음도 긍정적 에너지를 유발할 수 있는 좋은 표현 방법 중 하나다. 마음속으로 ‘나는 최고다’, ‘내 선택은 최선이다’라고 주문을 외우며 긍정 에너지를 쌓는 선수도 있다.

대개 골프 선수들의 표정은 딱딱하다. 감정을 숨기는 ‘포커페이스’들이 많다. 박인비의 경우 극단적인 포커페이스 유형이다. 김효주도 표정이 다소 경직된 포커페이스다. 하지만 세계랭킹 1, 2위인 리디아 고(뉴질랜드)와 브룩 헨더슨(캐나다)은 표정 변화가 많은 편이다. 쭈타누깐도 평소 유쾌한 성격이라 표정이 그리 딱딱하진 않다.

골프는 감정 컨트롤이 중요한 종목이지만 포커페이스만이 정답은 아니다. 조수경 박사는 “부모님들이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게 마인드 컨트롤을 잘 하는 것’이라고 어릴 때부터 주입시키기 때문에 한국 선수들의 경우 포커페이스들이 많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성격에 맞게 감정도 표출해야 경기력 향상에 도움을 준다고 말한다. 골프는 상대를 이겨야 승리하는 1대1 종목이 아니기에 억지로 감정을 숨긴다고 해서 경기력에 도움이 되진 않는다는 뜻이다.

전인지는 버디를 잡든 파를 적든 보기를 하든 홀아웃 후 항상 미소를 잃지 않는다. 자신만의 감정 컨트롤 방법이다. 생각이 많고 신중한 전인지는 이전 상황을 빨리 잊고 매홀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가짐을 가지려 노력한다.

골프에서도 ‘긍정의 힘’은 매우 중요하다. 타이거 우즈는 “실수할 것이라 생각하지 마라. 그것들은 너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홀과 멀어지게 할 것”이라며 샷 앞둔 상황에서 부정적인 생각을 경계했다. 샷 이전에 실수부터 먼저 생각한다면 최상의 샷을 구사할 수 없다는 의미다.

미국 심리학회 회장을 역임했던 마틴 샐리그먼은 ‘긍정 심리학’의 거장이다. 그는 “머피의 법칙과 샐리의 법칙은 각자 마음속에서 결정된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에겐 긍정적 반응들이 기다리고,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에겐 부정적 반응들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김두용 기자 enjoygolf@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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