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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개국 국가대항전 결과 이미 예견된 시나리오

고형승 기자2023.05.10 오전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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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골프 신흥 강국으로 떠오른 태국 국가대표팀이 한화 라이프플러스 인터내셔널 크라운에서 우승한 후 자축하며 사진을 찍고 있다

“한국 여자 골프가 예전만 못하다.”

최근 미국에서 끝난 국가대항전인 한화 라이프플러스 인터내셔널 크라운에서 한국 대표팀이 2승 4패로 조별리그 예선에서 탈락하자 국내 골프 팬 사이에서 터져 나온 우려의 목소리다.

하지만 이것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는 게 국내외 골프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그들이 지적하는 것은 크게 3가지다.

첫 번째는 동기 부여가 예전과 같지 않다는 점이다. 국내 투어가 커지면서 선수들은 굳이 말도 통하지 않고 음식도 맞지 않고 투어 경비도 많이 드는 해외 무대로 선뜻 옮기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국내에서도 충분히 돈을 벌고 인기를 누릴 수 있다는 게 대부분 선수와 부모의 생각이다. 지난해 상금 순위 84위인 이정민까지 연간 1억 원의 상금을 넘긴 것만 봐도 그 이유를 쉽게 가늠해볼 수 있다.

일본에서 가끔 한국 대회 취재를 위해 방문하는 다치카와 마사키(太刀川正樹) 골프 전문 기자 역시 ‘헝그리 정신’의 부재를 한국 여자 선수들의 경쟁력 약화의 주요 원인으로 꼽는다. 예전처럼 자기가 집안을 일으켜야 한다는 책임감과 사명감으로 똘똘 중무장한 선수의 수는 줄고 이미 풍족한 환경에서 골프를 시작한 10대 후반 ~ 20대 초반의 선수가 기업과 억대 후원 계약을 맺고 2~3억 원 이상의 연간 상금을 벌어들인다면 헝그리 정신은 아주 고리타분한 옛말이 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주니어 골프의 붕괴를 지적하는 이도 있다. 지난 2016년 말 이른바 ‘정유라 사건’으로 대한민국은 무척 시끄러웠다. 최서원(최순실)의 딸 정유라가 승마 선수로 이화여대에 부정 입학하고 재학 중에도 여러 특혜를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입학이 취소된 일이다. 이로 인해 체육 특기자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주를 이뤘고 결국 교육부는 2017년 4월, 체육 특기자는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운동과 학업을 병행해야 한다는 취지의 ‘학습권 보장을 위한 체육 특기자 제도 개선 방안’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이 제도는 쉽게 말해 체육 특기자라고 해도 대회 참가를 이유로 일정한 수업 일수를 지키지 않으면 졸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체육 특기자의 수는 줄었고 특히 주중에 경기가 열리는 골프 종목 선수의 수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2012년 전국 주니어(중고등학교) 골프 선수의 수가 2156명에서 2022년에는 1423명으로 약 34% 감소했다. 이런 현상을 단순히 출산율 감소와 결부하는 이도 있지만 방송통신고등학교로 진학하는 주니어 골퍼의 수를 살펴보면 이것이 어불성설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방통고에 진학한 골프 선수 숫자를 보면 2012년에는 37명에 불과했지만 2017년에 59명, 2020년에 173명 그리고 2022년에 249명으로 그 수가 오히려 늘었다.

결국 주니어 선수층부터 실력 있는 선수들이 성장하고 세계에 진출할 수 있는 환경이 전혀 만들어지고 있지 않다는 점이 문제다.


마지막 원인으로 한국여자프로골프투어(KLPGT)의 아집을 지적하는 이도 많다. 얼마 전 국내 한 언론 매체의 보도를 보면 그 이유를 확실히 알 수 있다. 그 매체 기자는 대회 기간 중 중국에서 온 기자에게 ‘최근 중국 선수들이 잘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자 ‘중국은 LPGA투어 대회가 3개나 열리지 않느냐’고 답했다고 한다.

그동안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가 해외에서 열릴 때는 개최국의 선수가 일부 참가할 수 있는 특별 규정이 있어 세계적인 투어를 미리 경험해볼 수 있었다. 과거 국내에서 열린 LPGA투어 대회에서 우승해 해외로 진출한 사례도 많았다. 안시현을 비롯해 이지영, 홍진주, 백규정, 고진영에 이르기까지 모두 이런 루트를 밟아 해외 무대로 진출했다.

하지만 더는 그런 모습을 볼 수 없다. 10월에 국내에서 열리는 LPGA투어 대회인 BMW 레이디스 챔피언십에는 국내 선수들이 참가할 수 없기 때문이다. KLPGT는 같은 기간 국내 대회를 유치해 BMW 레이디스 챔피언십을 출전하는 선수에게 벌금을 부과하겠다며 견제하고 있다. 지난해도 그랬고 올해도 마찬가지다.

KLPGT의 이런 억압적인 규정에 관해 지난해 치러진 국정감사에서 이미 한 차례 지적을 받은 바 있었다. 이후 진행된 문화체육관광부 사무검사를 통해 지난 3월, ‘현재 소속 선수들의 해외 투어 출전을 1년에 3회만 허용하는 부분을 개선하라’고 권고했다.

당시 문체부 관계자는 “선수가 더 큰 무대에서 활약하고 싶은 마음이 있을 텐데 이를 1년에 3회로 제한하는 것은 선수 권익에 관련된 문제”라면서 “국내에서 KLPGA투어 대회와 LPGA투어 대회가 동시에 열릴 때 국내 투어 소속 선수의 LPGA투어 대회 출전을 금지하는 것도 선수 권익 차원에서 재검토할 사안”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이에 따라 KLPGT는 해외 투어 출전 횟수 제한을 없앴다. 하지만 KLPGA투어 메이저 대회를 우선적으로 출전해야 하며 해외 투어가 국내에서 개최될 경우 ‘별도 공인 규정’을 따라야 한다고 조건을 달았다.

JTBC골프는 지난 3월, 이와 관련한 협회 입장을 듣기 위해 공문을 보냈지만 지금껏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특히 BMW 레이디스 챔피언십에 국내 선수 출전 제한과 관련해서는 문체부의 권고 조치가 나오기 이전에 발표된 일정이라 크게 문제가 될 건 없다는 입장으로 보인다. 올해는 그 주간에 상상인·한국경제TV 오픈을 개최한다.

국내 여자 선수들의 국제 경쟁력이 약화된 주요한 원인으로 이렇게 3가지를 지적하는 것은 이 모든 것을 관통하는 1가지 중요한 사실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전 세계를 무대로 활약할 우리나라 선수층이 빈약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주니어 선수가 많지 않으니 프로로 전향하는 수가 예전보다 줄었고 프로가 된 후에도 협회가 나서서 해외 대회에 참가할 기회를 막고 우물 안 개구리처럼 현재 투어에 만족하는 삶을 사는 프로 선수들이 늘면서 결국 1등 자리를 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 선수들에게 내어주고 있는 게 현실이다.

한국 여자 골프가 다시 세계 무대를 호령하고 최강국의 면모를 보이는 날이 오길 기대한다면 이런 근본적인 시스템의 문제가 없는지 지금부터라도 하나씩 살펴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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