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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하나 양제윤의 비망록(備忘錄)

이지연 기자 기자2013.03.05 오후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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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이대로 포기하지 않아”
가난에도 접을 수 없었던 열일곱 소녀의 꿈

매서운 겨울바람이 불던 2009년 12월. 열일곱 살 소녀는 눈이 퉁퉁 부을 정도로 밤새 펑펑 울었다. 소녀의 이름은 양제윤. 2006년 주니어 상비군에 발탁된 이후 상비군을 거쳐 2009년 꿈에 그리던 국가대표가 됐지만 어려워진 가정 형편 때문에 태극마크를 스스로 반납하기로 한 소녀의 뺨에는 끝없이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것은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그 이듬해 광저우 아시안게임의 국가대표로 출전하게 되면 금메달을 목에 걸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슴 한쪽이 더 아프고 먹먹했다.
“속상한 마음에 정말 많이 울었어요.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한국 남녀 국가대표팀이 개인전과 단체전을 휩쓸었을 때는 마음이 복잡했고요. 친하게 지내던 선수들이 금메달을 목에 건 모습을 보면서 기쁘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나도 저 자리에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아쉬움도 있었죠.”
그러나 양제윤은 주저앉지 않았다. 그를 일으켜 세운 건 골프에 대한 열정과 가족에 대한 사랑이었다. 어려운 고비를 숱하게 극복해온 그는 또래보다 일찍 철이 들었다.
“제가 태어나기 전에는 집안 형편이 나쁘지 않았대요. 하지만 아버지 사업이 기울면서 골프를 하는 내내 힘들었어요. 골프를 그만두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많았죠. 하지만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골프를 그만두고 싶지는 않았어요. 주위 분들의 격려와 도움을 저버릴 수 없다고 생각했고요. 그래서 이를 악물었어요.”



둘. “제발 한 번만 우승하게 해주세요”
절박한 심정으로 대회에 나서다

2010년 6월, 열여덟의 나이로 프로가 된 양제윤은 동시에 집안을 책임지는 소녀 가장이 됐다. 그러나 생각만큼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다. 그해 KLPGA 2부 투어에서 활동한 그는 상금 랭킹 17위에 머물렀다. 기대 이하의 성적 때문에 또 고민이 깊어졌다.
양제윤은 “너무 생각이 많았다. 복잡한 조건을 다 떨쳐내고 골프에만 집중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스스로도 실망스러운 결과였다”고 당시의 상황을 말했다.
그해 말 시드전에서 23위에 올라 2011년 정규 투어에 데뷔했지만 상황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17개 대회에 출전해 한 차례 3위를 차지한 것이 최고 성적이었고 톱 10에 진입한 것이 3번, 상금 랭킹은 44위에 그쳤다. 렌트카를 타고 대회장으로 이동하는 고단한 생활이 이어졌다.
“상금으로는 대회 경비조차 충당할 수 없었어요. ‘이렇게 힘들게 여기까지 왔는데 이제 골프를 그만둬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죠. 그런 상황에서 2012년 시즌이 시작되면서 절박한 마음이 들었어요. 올해가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공을 쳤어요. 제발 한 번만 우승하게 해달라는 간절한 기도가 저절로 나오더라고요.”



셋. “세리 언니에게서 에너지 얻었죠”
꿈은 이루어진다

그런 양제윤에게 지난해 8월 꿈만 같은 일이 벌어졌다. 프로 데뷔 후 24번째 참가한 대회였던 넵스 마스터피스에서 마침내 그토록 기다리던 우승컵을 들어 올린 것. 그동안 몇 차례나 우승 기회를 잡았지만 심리적 압박감을 이기지 못하고 마지막에 무너진 경험이 있었기에 감격은 더 컸다. 넵스 마스터피스에서도 위기는 있었다. 6홀을 남기고 5타 차 선두를 달리다가 13번홀(파3) 더블보기와 14번홀(파4) 보기로 순식간에 3타를 잃었기 때문. 그러나 15번홀(파3)에서 3.5m짜리 버디로 추격자들을 따돌리고 1억2천만원의 상금을 손에 쥐었다.
양제윤은 “또 우승을 놓치나 걱정되는 순간 더 잃을 게 없다는 생각으로 이를 악물고 쳤다”고 했다.
3개월 뒤에는 시즌 마지막 대회인 ADT캡스 챔피언십에서 김자영을 상대로 역전승을 거두면서 올해의 선수상(대상)까지 그의 몫이 됐다.
양제윤은 “작년 10월 하나외환 챔피언십 2라운드 때 (박)세리 언니와 동반 플레이를 하면서 많은 걸 배웠다. 쉬운 홀에서는 반드시 버디를 잡고 어려운 홀에서는 파 세이브를 하는 코스 매니지먼트와 집중력, 노련미에 놀랐다. 그날의 라운드 경험이 한 해를 잘 마무리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대전 출신인 양제윤은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2001년 박세리를 보고 골프를 시작했다. TV를 통해 박세리의 우승 장면을 보고 ‘골프를 하게 해달라’고 부모님을 졸라 클럽을 잡은 게 계기가 됐다.
“부모님이 골프에 문외한이세요. 게다가 내성적인 성격에 어려서부터 치마만 입고 다녔기 때문에 운동을 하게 될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어요. 어느 날 TV로 세리 언니의 모습을 본 뒤 운명처럼 골프에 끌려 여기까지 오게 됐죠. 하지만 아직 멀었어요. 지난해에 2승을 했지만 경기 내용 면에서는 부족한 점이 많았기 때문에 60점 정도의 한 해를 보낸 것 같아요.”



넷. “꾸준한 선수가 되고 싶어요”
돈보다는 명예가 중요한 스물한 살 골퍼

양제윤은 지난겨울 여느 프로와는 다른 자신만의 동계훈련을 소화했다. 다른 선수들처럼 동계훈련을 하러 따뜻한 외국으로 가는 대신 집 근처 헬스센터와 연습장을 오가며 구슬땀을 흘렸다.
“지난해 시즌을 보내면서 체력의 중요성을 절감했어요. 체력이 떨어질수록 집중력과 샷이 흔들렸기 때문에 체력에 집중 투자하자는 생각을 했죠. 처음엔 2kg짜리 아령도 몇 번 못 들고 쩔쩔 맸는데 지금은 3kg짜리 아령을 수십 번 드는 동작을 몇 세트는 거뜬히 해내요. 몸이 완전 근육 덩어리가 됐어요.(웃음)”
올해 21살. 한창 외모를 꾸미는 데 관심을 가질 나이지만 양제윤은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다. 골프를 잘하기 위해서는 더 근육을 키우고 몸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170cm의 신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평균 270야드에 육박하는 시원스러운 장타가 장기인 양제윤은 지난겨울 체력을 기른 덕분에 비거리가 더 늘어났다고 했다. 하지만 숏게임이나 퍼트는 아직도 부족하다고 느낀다.
“최종 목표인 일본이나 미국 투어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아직 보완해야 할 게 많아요. 그래서 만족할 수 없고 욕심을 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끊임없이 노력하고 꾸준한 선수라는 평가를 듣고 싶어요.”
지난해 상금 랭킹 4위(4억639만원)에 오르는 맹활약으로 최근 소속사인 LIG와 재계약을 마친 그는 그 어느 해보다 여유로운 마음으로 시즌이 개막되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상금과 계약금으로 최근 집도 넓은 곳으로 이사한 그는 “그동안 고생하신 부모님께 효도한 것 같아 기쁘다”고 했다. 올 시즌 목표는 올해의 선수상 2연패. 양제윤은 “프로는 돈으로 평가받는다고 하지만 난 명예가 더 중요하다. 상금왕보다는 올해의 선수상을 또 받고 싶다”며 활짝 웃었다.

이지연 기자 easygolf@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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