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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 감성 STORY> 솔직한 나의 고백, 나는 왜 내기 골프를 하려하지 않나

기자2022.08.12 오후 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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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이종현]

어릴 적 골목길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장면이 있다. 엿치기다. 구멍이 크거나 많으면 이기는 거다. 지는 사람은 엿 값을 치러야 한다. 지금 생각해 보니 굶주리고 궁핍한 세상에서 잠시 나마 시련을 잊고 웃어보려는 행위였다. 그 엿 값으로 인해 망하거나 절연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고 보니 우리 국민은 참 내기를 좋아한다. 툭하면 “내기할까?”를 통해 자신의 주장과 논리를 인정받거나 승리하려 한다.

반드시 이기고 승리하려는 스포츠 중의 하나가 골프다. 타 스포츠에 비해 많은 내기 방법과 이기고자 하는 결심이 가장 많이 엿보이는 종목중의 하나다. 나도 그랬다. 골프에 대한 욕심 뒤엔 항상, 승리가 있어야 했다. 이기지 못하면 다시 날을 잡아서 반드시 이기려 했다. 골프장 밖에서는 서로가 밥값을 술값을 내려 했다. 그런데 골프장에서는 1만원만 잃어도 분해하고 쉽게 잊지를 못한다. 돈의 가치 때문이 아니라 승리하지 못하고 패배했기 때문이다. 내기 골프의 후유증은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상대를 미워하게 되고 헐뜯고 비방하면서까지 내 자신을 합리화 시키려 한다. 그래서 내기 골프를 자세한다. 꼭 필요하다면 간단한 식사와 커피 내기 정도다.

내기 골프를 버리고 나니 마음이 편해지고 안보이던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골프장 페어웨이 잔디 아래 서로 부둥켜안고 단단해 지는 하얀 속살의 뿌리가 보였다. 우린 잔디 위의 푸른 잎만 본다. 하지만 잔디 박사들은 푸른 잔디 잎 아래 뿌리가 튼튼한지를 보고 잔디의 내일을 이야기 한다. 승리에 집착했기에 애증을 품었고 그래서 자연을 간과했던 것 같다. 이 푸른 자연에서 스코어에 연연하지 않고 불어오는 바람과 녹색 잎들의 흔들림에 행복이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상대가 잘못 친 볼이 오비가 나거나 해저드 심지어는 디보트에 빠졌을 때, 말로는 안타까워했지만 즐거움 또한 숨길 수 없다. 어릴 적부터 우린 이겨야했고 어떻게 해서든지 좋은 성적을 내야한다는 것부터 배웠다. 싸우다 지면 비열한 방법으로라도 이겨서 돌아오라고 어른들은 가르쳤다. 그래서일까. 골프에서 남을 속이고 이기는 방법은 쉬웠다. 책상에서 커닝을 하는 것은 어렵지만 골프장에서 죽은 볼을 살리는 것은 좀 더 쉬웠다. 발로 슬그머니 차거나 클럽으로 볼을 터치하거나 손으로 슬쩍 좋은 라이를 형성해 놓으면 된다. 넓은 자연이기에 잘 보이지가 않는다. 감독자가 없으니 더 쉽다. 오비 난 볼을 살리고 남의 공을 내공으로 살려내는 것 역시 슬쩍 스스로 눈만 감으면 된다.

하지만 뒤 돌아 보자. 그 순간 정말 마음 한 편에 죄책감이나 두려움이 없었는지. 혹시 누군가의 예리한 눈에 의해 목격되지 않았나하는 불안감도. 그 순간 볼은 그리 잘 맞을 수는 없다. 물론 자주 그러다보면 별 죄의식 없이 볼을 잘 맞추는 강심장은 존재한다. 그래도 저변에 깔린 자기만의 양심을 속일 수 는 없다.


[사진 이종현]

그래서 내기 골프를 잘 안 한다. 숨길 수 없는 경험 속에서 나를 속인 스스로에 대해 집으로 돌아오면서 너무도 길게 여운이 남는다. 그리고 내기를 안 하다 보니, 보이기 시작하는 것들이 있다. 상대방의 맑은 눈망울과 입가의 웃음이 보인다. 동반 플레이어에게 진정한 ‘굿샷!’과 ‘파이팅’을 진심을 담아 말해 줄 수 있다. 무엇보다도 천천히 걸어가면서 볼 만 좆던 그때와 달리 지는 꽃 뒤에 영그는 열매들이 보인다. 페어웨이 주변 열심히 꽃 안에서 꿀을 만드는 벌들도 보인다. 늘 푸른색이어서 나뭇잎이려니 했지만 자세히 보니 그 안에는 탐스러운 모과 열매가 나뭇잎과 함께 몽글몽글하게 살을 찌우고 있는 것도 보였다.

삶이라는 건 모두 내 위주의 생각과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알았다. 그러나 뒤 돌아 보면 우리가 플레이하고 온 뒤의 풍경과 골프 코스가 더 아름다웠다. 그런데 왜 우린 그 걸어온 길을 뒤돌아보며 생각하지 않는 것인가. 되돌아보지 않는다는 것만큼 우리의 진정한 삶의 깊이를 놓치고 있는 것이다.

작고하신 아버지가 초등학교 시절 했던 질문을 지금도 기억한다. 일제강점기에 철도를 놓는데 시기를 앞당기기 위해서 하루 500미터 작업을 먼저 마치는 사람은 그 만큼의 휴식을 주었다고 한다. 이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 하느냐는 것이다. 어린 나는 빨리 해놓고 쉬면 좋지 않으냐고 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어린 나에게 이로 인해서 불만과 갈등이 생긴다고 하셨다. 쉬는 사람과 못 쉬는 사람간의 갈등이 생긴다는 것이었다. 그 것을 아주 나중에서야 깨달았다.먼저 골인 선에 들어오는 것이 반드시 이기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삶의 방법은 다양한데 정답을 미리 정해놓는 것만큼 위험한 일은 없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 이후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말한 “잘 보낸 하루가 행복한 잠을 가져오듯이, 잘 쓰인 인생은 행복한 죽음을 가져 온다”는 말을 깊이 새기고 있다. 골프에서 반드시 이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아름답게 지는 방법이 우선이라는 것을 말이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모과나무 안에 숨어 있는 영글어가는 모과 열매를 본 것만으로도 그날 라운드는 성공한 것이다.


⚫이종현 시인은…
골프전문기자 겸 칼럼니스트.
‘매혹, 골프라는’ 외에 골프 서적 10여권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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