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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준 칼럼-레드베터와 한국 골프 대디

성호준 기자2016.12.12 오후 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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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베터와 리디아 고. 레드베터는 1996년 박세리부터 한국 혹은 한국계 선수를 여럿 지도했다. 골프 대디들과 갈등도 있었다.

천하의 박세리가 면접 보고 들어간 곳이 있다. 미국 진출(1997년)을 앞두고 당시 스폰서인 삼성의 세리팀이 현지 코치로 데이비드 레드베터를 선정했을 때다. 레드베터는 박세리를 넙죽 받지 않았다. 선수를 보고 나서 대성할 자질이 있으면 받겠다고 했다. 박세리는 레드베터 앞에서 테스트를 받아야 했다. 레드베터는 현장에서 즉각 합격, 불합격을 알려주지 않았다. 며칠 뜸을 들이고서야 답을 줬다.

당시 박세리는 미국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반면 레드베터는 닉 팔도와 그렉 노먼, 닉 프라이스 등을 제자로 뒀다. 주도권은 레드베터에게 있었다. 그렇더라도 96년 한국 투어에서 각종 기록을 다 깨뜨린 박세리가 그런 대접을 받을 수준은 아니었다. 삼성이 적지 않은 레슨비도 챙겨줬을 테니 레드베터는 손해 볼 것도 없는데 그랬다.

박세리를 키운 골프 대디 박준철씨는 기분이 상했다고 한다. 이 때부터 레드베터는 한국 골프 대디와 악연이 생겼다.

그러나 박세리가 98년 US여자오픈에서 우승하고 난 후엔 상황은 바뀌었다. 센세이션을 일으킨 박세리를 두고 타이거 우즈의 선생님 부치 하먼과 레드베터가 신경전을 벌였다. 또 레드베터는 박세리 때문에 남자 세계 랭킹 1위를 했던 닉 팔도와 갈라섰다. 레드베터가 박세리를 위해 브리티시 여자 오픈 대회장에 몰래 갔는데 팔도에게 들켰기 때문이다.

박세리를 통한 유무형의 경제적 이익이 적지 않았음을 레드베터가 깨달았음을 알 수 있다. 레드베터는 한국을 새로운 시장으로 생각했다. 한국에 아카데미를 냈고 박세리를 지렛대 삼아 많은 한국(계) 선수들을 가르쳤다. 길게 보면 미셸 위와 리디아 고도 그 중 하나다.

레드베터가 최근 리디아 고와 헤어진 후 부모를 비난했다. ‘부모의 간섭으로 리디아 고가 코스에서도 정확한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아버지가 레슨 코치의 영역을 넘어 간섭하고 나쁜 스윙을 가르친다’는 것이다. 레드베터는 미디어를 통해 리디아 고에게 “인생의 주인이 되라”고 충고했다.

레드베터의 스윙 이론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레드베터는 자신이 개발한 변칙 스윙인 A스윙 덕에 리디아 고가 랭킹 1위가 됐다고 생각한다. 반면 리디아 고 측에서는 A스윙이 아니더라도 랭킹 1위에 오를 선수였으며 오히려 이 스윙 때문에 고전한 측면이 있다고 여긴다.
(참조 : 성호준 칼럼-리디아 고의 A+퍼트, A스윙)

레드베터는 많은 한국(계) 선수를 가르치면서 골프 대디와 접촉했다. 박세리와 헤어질 때도 한국 골프 대디의 문제를 얘기한 바 있다. 이번에 레드베터가 비난한 대상은 리디아 고의 부모였지만 그래서 한국 골프 대디 전체를 부정하는 뉘앙스로도 들린다.

한국의 골프 대디는 공과가 있다. 일부 부모의 글로벌 에티켓이 부족했다. 아이들을 강압적으로 다뤄 인권침해 논란도 낳았다. 초창기 한국 골프 대디를 보고 경악한 서양 사람이 적지 않았다. 분명히 잘 못된 부분이 많았다. 그러나 수많은 지적을 받으면서 개선됐다. 지난 몇 년 간 골프 대디는 코스에서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 자식을 돕기 위해 먼발치에서 조용히 지켜보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폴라 크리머와 그의 아버지 폴 크리머. 폴 크리머도 한국 선수 못지않은 열성 골프 대디다. [게티이미지]

한국의 골프 대디가 더 이상 손가락질 받을 수준은 아니다. 기자가 현장에서 본 리디아 고의 아버지도 공개적으로 비난 받을 행동을 할 사람은 아니었다. 레드베터도 이 변화를 실감했을 것이다. 레드베터가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동서양 가족 문화 차이가 아닐까 한다.

한국 골프 대디의 공은 매우 크다. 한국 골프 성장의 가장 큰 동력은 골프 대디였다. 박세리도, 박인비도, 신지애도, 이보미도, 리디아 고도 헌신적인 아버지의 도움으로 정상급 선수가 됐다. 레슨 코치가 아니라 골프 대디가 챔피언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윙이론은 좀 부족할지도 모르지만 자식에 대해서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부모다. 자식의 골프에 대해서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 게다가 리디아 고는 아직 10대다.

골프 대디를 통해 이익을 본 사람 중 하나는 레드베터다. 한국의 열성 골프 대디가 없었다면 그는 박세리도, 리디아 고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레드베터는 리디아 고에게 “만약 올해의 선수상을 탔거나 US오픈에서 우승했더라도 이런(해고) 얘기를 했을 것 같은가”라고 물었다고 한다. 리디아 고는 “성적이 모든 것은 아니다”라고 답했다. 성적보다 중요한 가족의 가치가 있다는 말이다.

레드베터는 이를 몰랐던 것 같다. 20년간 한국 선수를 가르치고도 동양의 가족 문화를 몰랐다. 그렇다면 선생님으로서 커뮤니케이션 능력 부족이다. 레드베터가 골프 대디 뿐만 아니라 한국 골프, 한국 문화 자체를 비난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

성호준 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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