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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준 칼럼-88년생에 거는 또 한번의 기대

성호준 기자2016.12.06 오전 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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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LPGA 투어 HSBC챔피언스에서 함께 포즈를 취한 88용띠 선수들. 왼쪽부터 오지영, 최나연, 박인비, 신지애, 김송희, 김인경.

한국에서 배출한 여자 골프 세계랭킹 1위는 두 명이다. 박인비와 신지애로 모두 1988년생이다. 한국에서 LPGA 상금왕을 한 선수는 세 명인데 박인비, 신지애, 최나연이다. 최나연은 나중에 87년으로 호적을 바꿨지만 88년생으로 자랐다. 88년생들과 친구다.

골프 명예의 전당에 들어갔거나 입회가 확정된 두 사람(박세리, 박인비) 중 한 명이 88년생이다. 유일한 여자 골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도 88년생이다. 88년생인 이보미는 텃세 심한 일본에서 최고 스타가 됐다.

여자골프에서 한국의 88년생 용띠의 업적은 엄청나다. 앞으로 다시 나오기 힘든 황금세대다.

98년 한국을 들썩인 박세리의 US오픈 우승 때 88년생들은 초등학교 4학년이었다. 엘리트 스포츠를 시작하기에 가장 좋은 나이였다. 또한 88년 서울 올림픽을 보면서 아이를 얻은 88둥이의 부모들은 스포츠에 대한 열린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운동을 시작한 아이들의 숫자가 많았다. 그래서 경쟁도 심했다.

박인비, 이보미, 신지애 이외에도 김인경, 김하늘, 이일희, 오지영, 이정은, 김송희, 김현지, 민나온, 안젤라 박 등이 88년생이다. 88년생들이 박세리 키즈의 주류를 이뤘다.

골프 역사에서 가장 눈에 띄는 선수들을 배출한 해는 1912년이다. 벤 호건, 바이런 넬슨, 샘 스니드다. 역대 PGA 투어 최다승 1, 4, 6위가 한 해에 태어났다. PGA 투어 최다승 2, 3, 5위는 타이거 우즈, 잭 니클러스, 아널드 파머다. 이 세 명에 버금가는 선수들이 한 해에 태어났다고 볼 수도 있다.

이들 동갑내기가 대단한 기록을 낸 이유는 치열한 경쟁과 긴 선수생활이다. 그들은 한국의 88년생 골퍼들처럼 어릴때부터 경쟁자를 이기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했다. 오랫동안 전성기를 유지하기도 했다. 벤 호건은 과거 선수로는 매우 늦은 40대에도 메이저대회에서 우승했다. 샘 스니드는 29년 동안 우승을 했다. 전성기가 아주 길었다.

얼마전부터 한국의 88년생들은 하락세가 엿보였다. 어린 선수들에게 주도권을 넘겨줬고 의욕도 예전만 못했다. 카리 웹은 “한국 선수들이 10대 초반부터 사실상의 프로생활을 하는 것을 감안하면 일찍 지치는 것이 이해가 된다”고 평했다.

그렇다 해도 너무 일찍 물러나는 감이 든다. 안니카 소렌스탐의 전성기는 30대였다. LPGA 투어 72승 중 54승을 30세 이후에 했다. 메이저 10승 중 8승을 30대에 했다. 우리의 88년 용띠들은 아직 28세다. 소렌스탐이 본격적으로 발동을 걸던 나이였다.

허리 3번, 무릎 4번의 수술로 몸이 만신창이가 된 타이거 우즈도 40대에 다시 돌아왔다. 우즈는 지난해 이맘 때 침대에서 혼자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몸이 좋지 않았는데도 결국 재활에 성공했다. 우즈는 “이번 재활은 내 인생의 고통 중 가장 힘들었다”라고 말했다.

여자골프도 마찬가지다. 경기력의 상당부분은 의지의 문제다.

1988년생 용띠가 다시 꿈틀대고 있다. 올해 박인비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다. 일본 투어에서도 역시 용띠인 이보미, 신지애, 김하늘이 상금랭킹 1, 2, 4위를 차지했다. 한동안 조용하던 김인경이 LPGA 투어에서 다시 우승하면서 부활했다. 이정은은 스물여덟의 나이에 LPGA 투어 Q스쿨에 합격했다.

요즘 선수들이 일찍 꽃을 피웠다가 일찍 지는 추세여서 특히 이정은의 Q스쿨 합격 소식이 반갑다. 이정은의 프로 초창기 모습이 기억난다. 경기 중 캐디를 맡은 어머니를 도와 카트를 밀고 끌며 언덕을 올라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 때 이정은은 “실력을 잘 키워서 다른 친구들처럼 LPGA 투어에 꼭 가겠다”고 말했다. 화려한 동기들에 비해 돋보이지 않았지만 그 당찬 표정은 예뻤다. 십년이 걸려서 이정은은 꿈을 이뤘다.

이정은은 합격 후 “간절하면 이루어지긴 하나보다”라고 말했다. LPGA에 갔다고 해서 이정은에게 비단길이 열린 것은 아니다. 한국에 있을 때보다 훨씬 힘들 것이다. 이정은도 그걸 안다.

그래도 잘 할 것으로 기대한다. 이정은이 도전의 즐거움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십년 동안 꿈을 버리지 않고 버틸 수 있었다. 그 도전의 즐거움을 다른 88용띠들에게도 알려줬으면 좋겠다. 여자 골프에 다시 나올 수 없는 천재 세대 88년 용띠들의 롱런을 빈다.

성호준 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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