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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준 칼럼-박성현에게 캐디 보다 중요한 것

성호준 기자2016.11.14 오전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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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라 크리머와 캐디 콜린 칸. 크리머가 프로에 데뷔할 때부터 현재까지 칸이 보필하고 있다. 칸은 소렌스탐과 박세리의 가방도 오래 멨다.

2005년 일이다. LPGA 투어의 베테랑 줄리 잉크스터는 시즌 중 캐디 그렉 존스턴으로부터 “프로가 되는 미셸 위와 함께 일하게 되어 그만 두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잉크스터는 캐디에게 “11년 동안 가족처럼 지냈는데 헤어지게 돼 아쉽지만 잘 지내기를 빈다”고 했다.

그 말이 잉크스터의 속마음은 아니었다. 일 년이 채 되지 않아 존스턴이 미셸 위 캠프에서 해고된 후 잉크스터가 다시 입을 열었다.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는 존스턴이 (부진한) 나를 떠난 것을 비난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캐디를 데려갈 때 미셸 위의 가족이 전화라도 한 통 해줬어야 했다. 그들은 시즌 중 캐디를 훔쳐갔다”고 말했다. ‘훔쳐갔다’는 표현을 썼다. 선수들끼리는 웬만하면 공개석상에서 비난하지 않는다. 캐디를 빼앗길 때 잉크스터의 감정이 많이 상했던 것 같다.

미셸 위는 기대만큼 성적이 나지 않았다. 잉크스터의 감정이 미셸 위의 경기력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크다. LPGA 투어의 동료들은 미셸 위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다. 실력에 비해 과도한 대우를 받는다는 질시도 했을 테고 아직 어린 선수가 레전드급인 잉크스터와 소렌스탐에 무례했다고 반감도 가졌다. 미셸 위는 주류 선수들의 반감 속에서 경기했다.

미국 진출을 선언한 박성현의 매니지먼트사인 세마가 유능한 캐디를 구했다. 안니카 소렌스탐, 박지은, 박세리, 폴라 크리머의 가방을 멘 콜린 칸이다. 함께 한 선수들의 화려한 이름에서 칸의 이력을 볼 수 있다. 박성현을 LPGA 최고로 만들기 위해 세마가 어렵게 칸을 모셨을 것이다.

칸은 장점이 많다. 다소 다혈질인 크리머를 안정되게 이끌었다. 칸은 수십 번 가본 골프장에도 아침 일찍 나가 코스 상태를 점검한다고 한다. 2001년 비바람이 싫어 영국에 안가겠다는 박세리를 설득해 브리티시여자오픈에서 우승을 시키기도 했다. 콜린 칸이 LPGA 투어에서 최고 선수들과 20년 넘게 쌓은 경험은 박성현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잡음이 없이 데려왔다면 그렇다. 칸은 아직 크리머와 계약 기간이 끝나지 않았다. 시즌을 마칠 때까지 비밀을 유지하기로 했단다. 세마는 박성현의 캐디가 누가 될 것인지를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몇 몇 매체에 정보가 샜고 보도됐다. 이 소식이 미국 선수들에게까지 알려졌다.


사진 출처 : ⓒGettyImages (Copyright ⓒ이매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해 LPGA 투어 메이저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낸 박성현은 내년 본격 LPGA에 진출한다.


크리머와 칸은 유난히 사이가 좋았다. 11년 우정을 이어왔다. 그런 칸이 시즌 중 박성현에게 가기로 했다는 얘기가 흘러나왔으니 크리머 기분이 언짢을 거다. 세마에 의하면 칸은 난처한 상황이라고 한다. 세마는 “콜린 칸이 강력히 항의하고 있어 계약이 원래대로 진행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투어에서 캐디 스카웃은 흔히 있는 일이다. 뛰어난 선수는 최고의 캐디를 곁에 두고 싶어 한다. 유능한 캐디는 돈을 많이 벌어줄 수 있는 정상급 선수와 함께 일하고 싶어 한다. 선수가 무능한 캐디를 해고하듯 캐디가 성적이 부진한 선수를 떠나는 일은 부지기수다.

그러는 과정에서 선수끼리 감정이 상할 수 있다. 캐디를 빼앗길 때 선수가 슬럼프일 때가 많다. 공이 잘 맞지 않아 가뜩이나 기분 나쁜데 캐디가 배신한다고 생각하면 자존심이 상한다. 캐디 쟁탈전 와중에 선수끼리 원수가 되는 경우도 더러 있다.

크리머는 미국의 간판선수다. 최근 성적이 좋지 않지만 따르는 선수가 많아 여론을 주도하는 스타다. 그런 거물 선수의 캐디를 데려오려면 잡음이 나지 않게 매끄럽게 일처리를 했어야 했다. 참고로 칸은 2005년 크리머의 가방을 메기 직전 박세리의 캐디였다. 당시 박세리가 슬럼프였다. 크리머가 프로에 데뷔하면서 콜린 칸을 데려갔다. 박세리는 불쾌해했다. 박세리의 매니지먼트를 맡은 세마도 이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콜린 칸이 박성현의 가방을 챙기느냐의 여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칸이 잘 하지만 캐디가 공을 치는 것은 아니다. 캐디는 보조자일 뿐이다. 더 중요한 것은 박성현과 동료들과의 관계다. 골프는 매우 예민한 경기다. 반감을 가진 동반자와 경기하면서 좋은 성적을 내기가 쉽지 않다. 한국 선수들은 LPGA 투어에서 아직은 이방인이다.

세계 최고의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박성현에겐 영어 선생님도, 좋은 캐디도 필요하다. 이 보다는 좋은 샷을 치고, 우승을 했을 때 동료들로부터 박수 받을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먼저다. 그게 최고의 지원이다.

성호준 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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