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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준 칼럼-리우의 전설 일군 박인비의 용기

성호준 기자2016.08.20 오전 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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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비는 박세리의 맨발의 투혼에 필적하는 리우의 전설을 쓰고 있다.

리우의 전설 일군 박인비의 용기

올해 시작이 좋지 않았다. 첫 라운드 80타였다. 댓글에는 “내가 쳐도 그 정도 친다” 같은 조소가 나왔다.
박인비는 80타로 첫 라운드를 한 후 허리가 아파 기권했다. 한 달을 쉬고 나간 두 번째와 세 번째 대회에서는 똑같이 공동 30등을 했다. 60여명이 한 경기여서 그리 좋은 성적은 아니었다.

JTBC 파운더스컵에서는 컷탈락을 했다. 잠깐 반짝 한 적은 있다. 기아 클래식에서 2위, ANA 인스피레이션에서 공동 6위를 했다.

이후 손가락 부상이 생기고 또 급추락했다. 롯데 챔피언십에서 5오버파로 68등을 했다. 킹스밀 챔피언십에서는 3오버파를 치고 기권, 볼빅 챔피언십에서는 12오버파를 치고 나서 기권했다. 여자 PGA 챔피언십에서는 9오버파로 컷탈락했다. 몸은 최악인데 명예의 전당 가입을 위해 대회 수를 억지로 채웠다.

그게 6월이었다. LPGA는 그 대회가 마지막이었다. 두 달을 쉬었다. 올해 명예의 전당에 필요한 10개 대회에만 나갔다. 박인비는 국가대항전인 인터내셔널 크라운에도 나가지 않았다. 2014년 박인비가 “골프 선수를 하면서 처음으로 우정과 조국애를 느꼈다”면서 감동의 눈물을 흘린 대회다. 그 대회에 나가지 못할 정도로 좋지 않았다.

쉽게 말해 박인비의 2016년은 최악이었다. 평균 타수는 지난해 1위에서 올해 79위로 밀렸다. 그린적중률은 6위에서 96위로 추락했다. 최근 3개 대회 평균 타수는 77.25타다. 이런 상태에서 대회에 나가는 것을 “도살장에 가는 심정”이라고 표현하는 선수도 있다.

박인비가 올림픽에 나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지카 바이러스를 옮기는 모기는 아무 것도 아니다. 그 부담감이 어땠을까. 계속 오버파를 치고 기권을 하는 컨디션으로 온 국민의 관심이 집중된 올림픽에 나가는 것이 얼마나 두려웠을까. 성적을 내지 못하면 죄인 취급하는 사회, 인신공격을 쏟아내는 악플의 세상, 진짜 돌멩이 보다 아픈 그 악플의 돌팔매질 속으로 나가기가 얼마나 두려웠을까.

박인비는 손가락 통증이 줄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낼 자신이 있었을까. 그래서 나간 것일까. 아닐 것이다. 골프는 아무 것도 약속해 주지 않는다. 그래서 골프 실력은 소유한 것이 아니라 빌린 것이라고들 한다. 타이거 우즈를 보라. 골프 세계에서 갑자기 사라진 수많은 골프천재들을 보라.

골프는 고독한 싸움이다. 축구와 농구 같은 단체 스포츠에서는 결과가 좋지 않으면 잘못된 작전을 지시한 감독을, 패스를 해주지 않은 동료를, 불리한 판정을 한 심판을 욕할 수 있다. 그러나 골프는 모든 것을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 자기 자신 외에는 아무도 비난할 수 없는(No one to blame) 스포츠다. 그게 골프의 매력이고 골프의 잔인함 점이다. 박인비는 그 걸 다 짊어져야 했다.

올림픽을 앞두고 박인비에게는 아무 것도 없는 상태였다. 그러나 박인비는 출사표를 던졌고 리우 벌판에 나갔다. 박인비가 그 동안의 부진을 깨고 이번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낸 것은 놀랍다. 기자는 그 보다는 올림픽에 나가겠다는 용기가 더 의미 있다고 본다.

박인비가 2013년 메이저 3연속 우승을 했을 때 기자는 다른 선수들은 따라올 수 없는 퍼트감각이라는 재능을 가진 선수라고 생각했다. 이듬해 퍼트감이 좀 무뎌졌을 때는 뛰어난 샷과 강한 멘탈도 겸비한 선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강한 바람이 부는 리우 벌판에서 흔들리지 않고 꿋꿋이 퍼트를 하는 박인비를 보고, 벙커에서도 긴장하지 않고 평소와 똑같은 샷을 해내는 박인비를 보고 그의 힘은 용기라는 것을 느꼈다. 박인비의 강점은 퍼트나 포커페이스나 강철 멘탈이 아니라 어디서든 물러서지 않겠다는 용기였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지구 반대편 바람 부는 리우 골프장에 우뚝 선 박인비를 보고 또 느꼈다. 저 장면은 전설이 될 거라고. 1998년 US오픈에서 박세리가 만든 맨발의 투혼에 필적하는 한국 골프의 전설이 될 거라고.

마지막 라운드의 결과와 관계없이 말이다.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메달 색깔이 무엇이든 박인비가 승자다. 그는 용기를 보여줬다.

성호준 기자
sung.hojun@joongn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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