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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준 칼럼-변화의 실체

성호준 기자2016.04.05 오전 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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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첫 메이저대회에 커다란 퍼트를 들고 나온 렉시 톰슨.

렉시 톰슨은 시즌 첫 메이저대회인 ANA 인스피레이션에 대형 헤드의 퍼터를 가지고 왔다. 검정색인데다 매우 커서 때론 붓글씨 쓸 때 쓰는 벼루처럼 보이기도 했다. 효과가 있었다.

톰슨은 1라운드 27, 2라운드 29개의 퍼트를 하면서 단독 선두에 올랐다. 톰슨은 “퍼터 때문에 드라마틱한 변화가 생겼다. 정말 편하고 자신감도 생겼다”고 말했다. 톰슨은 벼루 퍼터를 발판으로 우승 경쟁에 나섰다.

미셸 위는 새로운 퍼트 자세를 선보였다. 짧은 거리에서 미셸 위는 좁게 선 채 무릎을 굽히고, 모으고, 상체는 웅크리고 퍼트를 했다. 메이저 최다승을 기록한 잭 니클러스에게서 영감을 받은 퍼트라고 했다. 효과가 있었다.

미셸 위는 1라운드에서 웅크린 자세로 버디 퍼트를 몇 개 넣어 2언더파를 기록했다. 점점 좋아졌다. 첫 라운드 퍼트 수가 30개였는데 2라운드에서는 28, 3라운드에서는 26개였다. 올 해 미셸 위 최고의 퍼트를 했다. 미셸 위도 우승 경쟁에 나섰다.


짧은 거리에서 무릎을 모으고 굽힌 채 퍼트를 하는 미셸 위가 짧은 퍼트를 놓친 후 아쉬워하고 있다. [Gettyimages]

오래 가진 않았다.

톰슨의 벼루 퍼터는 3라운드에 힘을 잃었고 4라운드에서도 말을 듣지 않았다. LPGA 투어에서 가장 멀리 치는 톰슨은 최종라운드 17번 홀까지 버디를 하나도 잡지 못했다. 결국 퍼트를 잘 하는 리디아 고에게 역전패했다.

미셸 위도 최종라운드에서는 새 퍼트 자세가 통하지 않았다. 퍼트 수는 31개로 늘었다. 그린 적중률이 낮았는데 퍼트 때문에 파 세이브를 거의 못해 보기 5개에 더블 보기 1개를 했다. 짧은 거리에서 불안해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77타를 쳤다.

낮선 퍼터로 재미를 본 선수는 흔하다.

2007년 PGA 투어 포즈 챔피언십에서 마크 캘커베키아는 첫날 4오버파를 치고 컷탈락을 예상해 짐을 쌌다. 그러나 시험 삼아 새로 산 퍼터가 마술을 부려 우승했다. 첫날 36개였던 퍼트 수가 2라운드에서 23개로 줄었다. 굴리면 들어가는 퍼트 덕에 3라운드에서는 62타를 쳤다. 100만 달러 가까운 우승상금을 벌었다.

허미정은 ANA 인스피레이션 3라운드에 연습도 제대로 못한 새 퍼터를 가지고 나갔다. 불안해서 기존 것을 포함, 퍼터 두 개를 들고 나갔다고 한다. 그는 롱게임이 아주 좋지는 않았는데 새 퍼터로 멀리서도 쑥쑥 잘 넣었고 6언더파를 쳤다.

심지어 웨지로 퍼트를 해서 잘 되는 경우도 있다. 2011년 카타르 마스터스에서 미겔 앙헬 히메네스는 말을 안 듣는 퍼터를 부러뜨린 후 로브웨지로 세 홀 연속 버디를 잡고 2위로 대회를 마쳤다.

스테이시 루이스도 지난 달 열린 기아클래식 2라운드에서 연속 보기를 한 후 퍼터 대신 아이언으로 퍼트를 해 연속 버디를 잡았다. 루이스는 아이언으로 퍼트를 한 5개 홀에서는 2언더파, 퍼터로 퍼트를 한 13개 홀에서는 1오버파를 쳤다.

그러나 역시 오래 가지 않는다. 웨지가 그린 위에서 퍼터만큼 일을 잘 할 수는 없다.

퍼트가 안 되면 별 방법이 다 나온다. 눈 감고 하는 퍼트도 그렇다. 렉시 톰슨은 올 시즌 초 눈을 감고 퍼트를 하면서 혼다 타일랜드에서 우승했다. 수잔 페테르센도 2013년 한동안 눈을 감고 퍼트를 하면서 재미를 봤다. 그는 앞으로 그린 위에서 절대 눈을 뜨지 않을 것처럼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페테르센도 톰슨도 눈을 뜨고 퍼트한다.

골프 뿐 아니라 다른 스포츠, 또 일상에서도 변화가 먹힐 때가 많다. 이를 설명할 이론도 있다. 뇌는 익숙한 환경에서는 에너지를 아낀다. 낮선 곳으로 여행을 가면 뇌는 최대한 많은 정보를 얻고 분석하려 한다. 그러나 익숙한 곳에서는 뇌가 활발히 활동하지 않는다.

오랫동안 쓴 퍼터는 일상처럼 편하다. 감각이 무뎌질 수 있다. 새 클럽을 쓰면, 특히 톰슨의 벼루 퍼터처럼 모양이 확 차이가 나는 클럽을 쓰면 이에 적응하기 위해 뇌가 부지런히 움직인다. 집중력이 높아진다. 단기 충격의 일종의 최면효과다. 그러나 그게 지속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새 클럽이나 새로운 자세도 일단 익숙해지게 되면 뇌는 활발하게 작동하지 않는다. 변화의 유효기간이 지나고 나서 무엇이 더 좋은지 다시 살펴봐야 한다.

새 퍼터를 가지고 나가면 한 두 라운드 좋은 퍼포먼스를 낼 수 있다. 변화가 필요할 때 단기적으로 효과를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게 평생 갈 거라는 기대는 너무 많이 하지 말자. 기존 퍼터를 버리지도 말자. 일반적으로 오래된 친구가 좋은 친구다.

성호준 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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