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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준 칼럼-장하나와 치치의 세리머니 2

성호준 기자2016.03.09 오전 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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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열린 LPGA 투어 HSBC 챔피언스에서 장하나는 우승했고 전인지는 대회에 참가할 수 없었다. [골프파일]

지난 주 열린 LPGA 투어 HSBC 챔피언스의 가장 유력한 우승후보는 리디아 고와 박인비였다. 또 직전 대회 우승자인 렉시 톰슨과 상금랭킹 1위 장하나, 평균타수 1위 전인지도 다크호스였다. 그 중 장하나는 우승했고 전인지는 대회에 참가할 수 없었다.

알려진 대로, 또 얄궂게도 전인지가 대회에 나가지 못한 이유는 장하나 가족 때문에 다쳐서다. 경기장 밖에서, 경쟁자 측에 의해 우승 후보 선수가 다친 매우 희귀한, 또 이목을 집중하는 사건이었다.

1994년 미국 피겨 스케이팅 선수인 토냐 하딩이 올림픽 국가대표 경쟁자인 낸시 캐리건을 다치게 한 사건이 있다. 당시 두 선수의 숙소에 몇 주 동안 방송사 중계차들이 진을 쳤다. 두 선수의 국가대표 선발전의 시청률은 48.5%로 경이적이었다. 미국 최고 인기 스포츠 이벤트인 슈퍼볼도 딱 2번만 이 시청률을 넘겼다.

하딩-캐리건 사건과 장하나-전인지 사건의 본질은 완전히 다르다. 하딩은 폭행을 사주했지만 장하나 측은 단순 실수였을 것이다. 그래도 경쟁자간에 일어난 이 사건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은 매우 컸고 장하나가 우승하면서 관심은 더 커졌다.

당사자가 골프 선수들이니 골프라는 스포츠 내에서 이 사건의 핵심을 보자. 골프에서 타구 사고가 났을 때 책임 공방이 일어난다. 중요한 건 “포어(fore)”를 외쳤나 여부다. 한국에서는 “뽈(볼)”이라고 외치지만 원래 말은 포어가 맞다. 만약 이 경고를 하지 않고 사람을 맞히면 안전의 의무를 지키지 않은 것으로 여겨진다.

fore는 앞을 조심하라는 look out before에서 look out be를 뺀 줄임말이다. 포병부대에서 포를 쏠 때 전방의 아군 보병에게 주의하고 몸을 숨기라고 쓴 말이 골프에 흘러왔다는 설이 유력하다. 아군에게 포탄이 날아간다는 것을 알리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사람이 앞에 있는데 가방이 미끄러져 내려간다면 알려서 부상을 방지해야 했다.

역시 장하나 측에서 일부러 경고를 안 한 것은 아닐 것이다.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서 당황했든지 무슨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포어를 외치지는 않았다. 전인지 측에서 서운해 하는 점이다.

사과를 했느냐 여부는 양쪽 주장이 엇갈린다. 양쪽 다 감정이 격앙된 상태다. 같은 말에 대해서도 표정, 억양 등에 따라 다르게 해석된다. 그러나 만약 전인지 측에서 사과 받기를 거부했다 해도 가해자는 계속 사과해야 한다. 피해자가 넙죽 사과를 받는 경우는 별로 없다.

결과적으로 전인지 부상에 대한 장하나 측의 책임이 작지 않다. 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해보면 쉽다. 만약 경쟁자의 가족 때문에 장하나가 다쳤다. 사건 당시 위험하니 피하라고 얘기해 주지 않았다. 장하나의 기분은 매우 나쁠 것이다.

두 선수는 7월 열리는 여자 골프 국가대항전 인터내셔널 크라운에서 팀워크를 맞추고 올림픽에도 같이 나갈 가능성이 큰 선수들이다. 서로 존중하면서 세계최고를 향해 함께 달리는 젊은 선수들이다. 빨리 문제를 해결하고 화해해야 한다. 팬들을 위해서라도 그렇다.

한 달 전 ‘치치와 장하나의 세리머니’라는 제목의 칼럼을 썼다. 내용은 이런 거였다.

‘치치 로드리게스는 버디를 잡으면 그린에서 탱고를 췄다. 팬들은 즐거워했지만 동료들은 싫어했다. 그래서 치치 로드리게스는 동료의 기분 등 주위 상황을 고려해 세리머니를 했다. 장하나가 코츠 챔피언십에서 우승하고 한 ‘사무라이’ 세리머니 발언은 국민 정서상 적절하지 않았다. 치치처럼 상황에 맞는 적절한 세리머니를 해야 한다.’


[게티이미지]

치치가 탱고를 출 때 프로 골퍼들 먹고 살기 힘든 때였다. 어중간한 프로들은 상금이 여행 경비에 미치지 못했다. 돈을 빌리고, 집을 팔고, 차를 팔면서 투어 생활을 했다.

그런 투어프로들이 컷 탈락으로 집에 한 푼도 못 가져가는데 동반자가 버디를 잡았다고 춤을 추면 기분이 좋을 리 없다. 치치의 탱고는 규칙상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타인의 불행을 안타깝게 여기는 마음, 즉 측은지심으로 세리머니를 바꿨다.

측은지심은 상대에 대한 배려다. 골프에서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에티켓이다.

딱 4주 만에 장하나가 다시 우승했고 미국 유명 가수 비욘세의 춤을 췄다. 장하나의 춤이 나쁜 건 아니다. 치치의 세리머니처럼 골프라는 다소 고루한 스포츠를 풍성하게 해주는 멋진 퍼포먼스다. 게다가 장하나처럼 멋지게 춤을 출 수 있는 선수는 거의 없다.

그러나 춤을 추려 했다면 최종라운드 전날 열린 공식 기자회견에서 혹은 공식 시상식장에서 전인지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했으면 어땠을까 한다. 누가 묻지 않아도, 전인지 측에서 거부했다 해도 말하는 것이 어땠을까. 그랬다면 장하나의 그 춤이 더 멋졌을 것 같다.

성호준 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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