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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준 칼럼-스테이시 루이스에 대해

성호준 기자2015.06.30 오전 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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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가 지난해 아칸소 챔피언십 트로피를 들고 있다. 그의 마지막 우승이다. 올해 루이는 이 대회에서 다시 우승경쟁을 했지만 최나연에 잡혔다. [골프파일]

스테이시 루이스를 처음 알게 된 것은 2011년 나비스코 챔피언십에서였다. 볼이 빨갛고 털털한 반바지를 입은 무명 선수가 ‘골리앗’ 청야니와 챔피언조에서 경기하게 됐다.

한국 선수를 따라다니느라 그 둘의 경기를 많이 보지는 못했다. 그러나 경기 직전의 선명한 기억이 하나 있다.

청야니는 당시 우승을 확신했는지 1번 홀 티잉 그라운드에 전시되어 있던 우승 트로피를 번쩍 들어 사진 기자들에게 포즈를 취했다. 이 동작은 지금 돌아보면 지나쳤지만 당시에는 별로 이상하지 않았다.

청야니가 2위 선수에 2배 정도의 언더파 스코어로 우승할 때였고 전년도 챔피언이었으며 메이저대회에서 유난히 강했기 때문이다. 청야니가 트로피를 든 모습 보다 무명 루이스가 손톱을 물어뜯으며 청야니의 사전 우승 세리머니를 보는 장면이 선명하다. 가슴이 아프겠다고 생각했다.

루이스는 두 타 뒤에서 시작했는데 골리앗 청야니에 3타차로 우승했다. 첫 우승을 메이저로 채운 것이다. 혹시 운이 좋았나 했는데 아니었다. 이듬해 올해의 선수가 됐고 2013년 청야니를 제치고 랭킹 1위에 올랐다.

그가 1위에 오르게 된 대회는 2013년 파운더스컵이었다. 당시 루이스는 캐디의 실수로 2벌타를 받았다. 3라운드 16번 홀에서 캐디가 발로 벙커의 상태를 테스트했기 때문이다. 그러고도 루이스는 다음날 미야자토 아이에 역전 우승을 차지했다.

바로 다음 대회인 기아 클래식에서 루이스를 만나 물었다. “어떤 선수는 자기가 실수해도 캐디에게 화풀이하고 해고하기까지 한다.”

루이스는 이렇게 답했다. “벌타를 받은 카드에 사인을 하고 미디어센터에 갔다 왔더니 연습 그린에서 트레비스(캐디)가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도 못하고 있더라. 그래서 내가 박수를 치면서 ‘우리는 이 대회에서 우승할 건데 왜 그래?’라고 했다. 나는 침착했고 오히려 2타를 손해 봐서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4년 반 동안 함께 한 나의 유일한 캐디다. 우리는 성격이 잘 맞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 말을 들을 때 루이스의 빨간 볼이 더욱 멋져 보였고 털털한 반바지도 패셔너블해 보였다. 척추에 철심을 박고도, 캐디의 실수 때문에 벌타를 받고도 우승을 차지하고 세계 랭킹 1위에 오르는 선수가 있을까 생각하게 됐다.

우리는 너무나 많은 불평 속에서 사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핸디캡을 자신이 더 위대하게 만드는 데 쓰는 것 같다고 물었다. 루이스는 이렇게 답했다. “내가 겪은 일은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다른 사람들이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나는 그걸 이겨 내는 과정을 통해 인내심과 노력을 배웠다. 경기 중 나를 보고 어떤 사람이 ‘몸에 막대기 하나랑 나사 다섯 개가 들어가 있는 사람이 최고가 될지 누가 알았겠느냐’고 하는 말을 우연히 듣게 됐다. 무슨 일이든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줘서 기쁘게 생각한다.”

-철심을 낀 허리는 안 아픈가.
“아프지 않다. 이제 허리엔 문제가 없다.”
-코스 내에서는 더러 불같이 화를 낸다. 코스 밖에서는 매너가 좋은 선수로 통한다.
“경기 중 화가 났을 때 풀어야 한다. 그냥 가지고 있으면 계속 이어지게 된다. 나는 클럽으로 캐디백에 화풀이를 하고 잊어버린다. 팬들과 미디어, 스폰서뿐 아니라 주위 사람들에게 잘해야 한다. 그게 선수들의 의무다.”


루이스의 가장 빛나는 순간은 2013년 브리티시 여자 오픈이었다. 박인비의 그랜드슬램이 깨진 후에야 루이스가 다시 메이저 챔피언이 될 수 있었다. [골프파일]


한국 선수들은 루이스를 조금 부담스러워 한다. 경기 중 화를 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종차별이나 외국인을 박대하는 선수는 아니라고 본다. 루이스가 아시아계 소녀들에게 공을 주는 모습을 많이 봤다. 발음이 안 좋은 아시아 기자들의 질문에도 성심성의껏 답한다. 한국 선수에게 지고서도 한국 방송 스텝의 인터뷰에 응하는 것도 봤다.

루이스는 1위가 된지 얼마 지나지 않은 나비스코 챔피언십 이후 박인비에게 1위를 빼앗겼다. 기자는 박인비의 퍼트를 보면서 루이스가 아니라 타이거 우즈라도 저렇게 퍼트를 잘 하는 선수에게 이기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타이거의 시대를 함께 산 필 미켈슨이나 어니 엘스처럼 루이스가 좀 불운하다고 봤다.

29일 끝난 아칸소 챔피언십은 루이스의 홈이나 다름없다. 루이스는 아칸소 대학을 5년 다녔다. 허리가 아파서 1년을 쉬었기 때문이다. 아칸소 대학의 상징인 멧돼지를 헤드커버로 쓴다. 그 대학 코치와 스포츠 담당 직원에게 많은 도움도 줬다. 루이스는 지난해 아칸소 챔피언십에서 우승했다.

올해 아칸소 챔피언십에서 우승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최나연이 우승했다. 최나연은 2라운드를 파, 버디, 이글로 끝내더니 최종 3라운드를 이글, 버디, 파로 끝냈다. 특히 16번 홀 샷 이글은 짜릿한 럭키 스트라이크였다. 당시 선두였던 루이스는 여기에 맞아 떨어졌다. 미국 골프 채널은 루이스의 파티에서 최나연이 케이크를 가져갔다라고 썼다.

루이스는 지난해 아칸소 챔피언십 이후 우승이 없다. 기회는 있었지만 다 놓쳤다. 유난히 한국 선수에게 많이 당했다. 루이스는 HSBC 위민스 챔피언스에서는 박인비에게 져 3위를 했고, 혼다 타일랜드에서는 양희영에게 무릎을 꿇고 공동 2위에 머물렀다. 3월 JTBC 파운더스컵에서는 김효주와 우승경쟁을 하다 패해 2위에 그쳤다.

특히 김효주와의 파운더스컵은 눈부신 명승부였다. 직전 세계랭킹 1위와 미래의 랭킹 1위의 대결이었다. 청야니를 무너뜨린, 박인비와 버텨 싸운, 자신 척추에 들어간 철심과의 사투에서 이긴 루이스의 경기는 눈이 부셨다. 기자는 강한 상대가 최고의 기량을 보일 때 더 강해지는 김효주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해 에비앙에서 자신의 A게임을 하는 카리 웹을 마지막 홀에서 잡은 김효주는 역시 최고의 게임을 한 루이스에게도 이겼다. 김효주는 타이거나 잭 니클라우스의 멘털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그래도 루이스를 위한 얘기도 한 마디 전해주고 싶다. 그는 4라운드에서 디봇에 볼이 세 번이나 들어갔다.

루이스는 올해 한국 선수에게 적어도 펀치 4방을 맞았다. 캔버스에 벌러덩 누울 큰 펀치들이었다. 그러나 다시 일어설 것이다. 그는 스테이시 루이스니까. 여자 골프의 벤 호건이니까.

루이스가 올해 파운더스컵에서 김효주에게 패하고 한 말이 생각난다. "(패배가) 익숙해질수록 더 (극복하기가) 쉬워진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지 않느냐"

p.s.
파운더스컵 직후 루이스가 마지막 홀에서 김효주에게 챔피언 퍼트를 양보하지 않고 먼저 하라고 한 것이 비매너인가에 대한 메일이 많이 왔다. 기자 생각은 전혀 비매너는 아니라고 본다. 골프 결과는 장갑 벗어봐야 안다고 하는데 동의하지 않는다.

장갑 벗고 맨손으로 퍼트하는 그린에서 가장 많은 드라마가 일어난다. 김효주의 이른바 ‘챔피언 퍼트’는 2.5m의 훅퍼트였다. 거기서는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다. 박인비도 1m에서 3퍼트를 할 수 있는 것이 골프다. 챔피언 퍼트의 손떨림을 이겨낼 수 있는지를 시험하는 것이 골프다.

루이스는 한 타 뒤지고 있었고 버디 퍼트가 아니라 파 퍼트여서 실제 2타차라고 봐야하지만 2.5m 퍼트에 포기한다면 야구에서 4-2로 지고 있다고 9회 공격을 안 하는 것과 같다.

성호준 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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