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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영-켈리 손, 철학과 새똥이 맺어준 특별한 우정

김두용 기자2015.06.11 오후 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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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영과 켈리 손에게 포즈를 주문하자 서로 목을 조르며 주먹을 내보이는 익살스러운 장면을 연출했다. [사진 김두용 기자]


퀴즈 하나. 김세영과 켈리 손(손우정)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만 22세 또래고,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루키라는 공통분모를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렇지만 자라온 환경이 너무도 다르고 저마다의 색깔이 강한 둘은 겉으로는 썩 잘 어울리는 조합은 아니다. 그럼에도 김세영은 미국무대에 진출한 뒤 가장 친해진 선수로 켈리 손을 꼽았다. 그래서 의외였다. 이들이 가까워진 계기가 ‘철학’이라는 얘기에 더더욱 놀랐다.

김세영과 켈리 손은 11일(현지시간) 개막하는 KPMG 여자 PGA 챔피언십에 나란히 출전한다. 대회가 열리는 미국 뉴욕주 해리슨의 웨스트체스터 골프장에서 만난 둘은 만나자마자 티격태격했다. 김세영이 “축구를 저보다는 못하지만 잘하는 편”이라고 하자 켈리 손은 피식 웃으며 “얘는 태권도는 잘하지만 영어를 못한다”라고 맞받아친다. 둘은 축구공을 가지고 놀고, 농구를 함께 하기도 한단다. 태권도 유단자인 김세영과 축구공을 차에 들고 다니는 켈리 손은 LPGA 투어에서도 손에 꼽히는 운동마니아라는 연결고리가 있다.

김세영은 4차원적인 매력이 있다. 또래와는 달리 SNS 등을 잘 하지 않지만 자신만의 세계가 확고하다. 자신만의 가치관과 철학이 뚜렷하고 색깔이 무척 강하다. 미국 동부의 명문 프린스턴대를 졸업한 켈리 손은 사회학을 전공했지만 철학에도 큰 관심이 있었다고 한다. 김세영은 “켈리와는 철학적인 얘기를 한다. 그냥 삶과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고민”이라며 “저는 딱히 철학을 공부한 건 아니지만 저만의 철학을 가지고 얘기한다”라고 털어놓았다. 켈리는 “세영이와 얘기가 잘 통하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언어장벽 때문에 더 깊숙이 들어가고 싶어도 그게 안 된다”라고 씩 웃었다. 심오한 철학을 논하기에 김세영은 영어 표현 능력이 아직 부족하고 켈리도 한국어가 조금은 서툴다.

켈리는 때론 김세영의 영어선생님이 되기도 한다. 김세영이 영어로 메시지를 보내면 켈리가 철자와 표현을 바르게 정정해서 다시 보내준단다. 켈리가 “거의 다 틀리는 편인데 어쩌다 정확한 표현을 보내와서 깜짝 놀랄 때가 있다”고 웃으면서 얘기하자 김세영은 장난스럽게 눈을 흘기며 옆구리를 콕 찌른다.

재밌는 일화도 있다. 롯데 챔피언십을 앞두고 둘은 하와이의 해변가에 앉아 한참을 얘기했다. 이때 새똥이 김세영의 이마에 떨어졌다. 켈리가 이것을 보고 알려줄 때까지 김세영은 자신이 새똥을 맞았는지 몰랐다고 한다. 새똥은 좋은 징조였다. 김세영은 롯데 챔피언십에서 극적인 칩샷 인에 이어 연장전 샷 이글로 시즌 두 번째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운이 좋은 김세영은 켈리를 바라보며 “너도 새똥을 맞아야 우승할 수 있다”고 얘기하자 켈리는 “요즘 새를 찾아다니면서 드러눕는다”고 유쾌하게 받아 쳤다.

항상 장난기가 가득하지만 필드에서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는 공통점이 서로를 끌어당긴다. 켈리는 “강한 근성을 가지고 있는 것을 배우고 싶고 세영이처럼 우승하고 싶다”라고 치켜세웠다. 김세영도 “켈리도 강한 승부 근성과 해야 하는 건 하고 마는 그런 게 있는 것 같다”라며 진지하게 설명했다.

이번 대회를 임하는 마음가짐은 조금 다르다. 김세영은 “매 시합마다 잘 하자는 목표가 있었는데 최근 성적이 그렇게 좋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 대회는 메이저 대회라 포커스를 많이 맞췄다”라고 각오를 드러냈다. 2승을 챙겼던 김세영은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서 긴장감을 주려 한다. 그는 “우승 후 경기 임하는 자세가 달라진 것 같다. 조금 긴장을 하고 압박감을 줘야 잘 하는 스타일인데 우승 뒤에는 그러지 못했다. 그래서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마음으로 이번 대회도 준비했다”고 고백했다.

켈리 손은 아직 우승은 없지만 숍라이트 클래식에서 공동 3위를 차지하는 등 순조롭게 LPGA 투어에 적응하고 있다. 그는 “지금까지 제 점수를 준다면 80점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아무래도 메이저 대회라 갤러리도 더 많고 집중도가 높아 더 신나는 것 같다”며 “제가 뉴욕 출신이라 이 대회를 더 잘하고 싶은 욕심도 있다. 올해 안에 꼭 우승을 해보고 싶다”라고 다부진 각오를 드러냈다.

강렬한 레드처럼 너무나도 강한 두 선수가 앞으로 LPGA 투어에 어떤 색깔을 입힐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해리슨(뉴욕주)=김두용 기자 enjoygolf@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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