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뉴스

'빨간 바지 공포' 김세영, 이유있는 성공

이지연 기자2015.03.12 오전 8:12

폰트축소 폰트확대

뉴스이미지

지난해 말 안정적인 국내 투어를 뒤로 하고 미국 무대에 도전한 김세영. 바하마 퓨어실크 클래식에서 우승한 김세영은 "우연한 성공은 있어도 우연한 실패는 없다"고 했다. 그의 시선은 세계랭킹 1위와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메달을 향해 있다. [사진 고성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시즌 두 번째 대회인 퓨어실크 바하마 클래식에서 우승한 김세영. 270야드가 넘는 장타와 화끈한 공격적인 플레이, 마음먹은 것은 해내고야 마는 김세영의 골프는 색깔로 치자면 ‘열정의 레드’다. 안정적인 국내 투어를 뒤로 하고 미국 무대에 도전해 두 대회 만에 우승한 김세영의 시선은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국가대표와 세계랭킹 1위를 향해 있다.
‘우연한 성공은 있어도 우연한 실패는 없다’는 이야기처럼 세계 최고의 무대를 꿈꾸며 달려왔고, 열정을 불태우고 있는 김세영의 성공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다.

행운을 부르는 마인드

지난 2월 초 끝난 LPGA 투어 개막전 코츠 골프 챔피언십. LPGA 투어 데뷔전을 치른 김세영은 2라운드까지 8오버파로 컷 탈락했다. 컷 통과 기준인 4오버파에 한참 못 미쳤고, 100위 밖으로 밀려난 참담한 성적표였다. 김세영은 “준비를 많이 한 만큼 기대가 컸던 것이 사실이다. 원래 고민을 많이 하거나 후회를 하는 성격이 아니지만 그 때는 ‘미국 투어에 잘 맞지 않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고 말했다.

충격적인 컷 탈락은 정신을 번쩍 차리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 퍼트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김세영은 일주일 동안 퍼트 연습에만 매달렸다. 하루 5시간 넘게 그린에 머물며 볼을 굴리고 또 굴렸다.

절박한 마음은 퓨어실크 바하마 클래식에서 김세영을 더 집중하게 만들었다. 3라운드까지 선두 박인비에게 2타 차 공동 6위. 최종 라운드 15번홀까지 유선영에게 1타 차 2위였던 김세영은 마지막 홀 버디로 연장에 합류한 뒤 연장 첫 홀 버디로 우승해 일주일 만에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김세영은 “우승하는 경기에서는 운이 다른 것 같다. 경기가 안 풀릴 때는 볼이 벙커에 빠져도 나쁜 위치에 놓여있을 때가 많다. 하지만 이번에는 볼이 벙커에 빠져도 좋은 위치에 놓여 있었다. 운이 많이 따랐다”고 했다.
 
김세영은 친구들 사이에서 ‘대박이’, ‘김로또’로 불린다. 김세영은 2013년 4월 롯데마트 여자오픈 18번홀에서 239야드를 남겨놓고 3번 우드 샷으로 이글을 만들어내며 극적인 역전 우승을 했다. 다섯 달 뒤 열린 한화금융 클래식에서는 유소연에게 6타 차까지 뒤졌다가 샷 이글과 홀인원으로 역전 우승했다. 한 주 뒤 열린 메트라이프-한국경제 KLPGA 선수권에서도 3타 차 열세를 뒤집고 역전 우승, 2주간 8억원이 넘는 돈을 벌면서 ‘대박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러나 김세영은 항상 운이 따르는 선수는 아니었다. 아마추어였던 2009년 출전한 김영주여자오픈에선 6홀을 남기고 2타 차 선두를 달리다 잘 맞은 티샷이 페어웨이를 가로지르는 카트 도로에 맞고 아웃오브바운스(OB)가 나면서 우승을 놓쳤다. 이후 지독한 드라이버 입스(Yips·불안증)에 걸려 고생했고 벗어나는 데만 3년이 걸렸다. 김세영은 “그 일을 겪은 뒤 공짜는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늘 대가를 치른 뒤 무언가가 온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실패도 많이 했지만 그 때마다 포기하지 않으려 했다. 그랬기 때문에 내게도 행운이 온 것 같다”고 말했다.

김세영은 2013년 말 LPGA 투어 직행 티켓을 거의 손에 쥐었다가 놓친 적이 있다. 10월 국내에서 열린 LPGA 투어 하나·외환 챔피언십에서 1타 차 선두였다가 18번홀의 두 번째 샷이 그린 앞 스프링클러에 맞아 깊은 러프에 빠지는 바람에 보기를 했고 우승을 놓쳤다. 김세영은 “운이 따르지 않았지만 내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오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편했다. 길게 보면 운은 공평한 것 같다. 행운만 따른다면 인생이 재미없을 것이다.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묵묵히 노력하다 보면 행운이 찾아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골프에 대한 뜨거운 열정

김세영은 태권도인 출신인 아버지(김정일씨)의 영향으로 아장아장 걷기 시작할 무렵부터 태권도장을 놀이터 삼아 자랐다. 어린 시절부터 또래에 비해 남다른 운동 신경을 자랑하는 딸을 지켜봤던 아버지는 김세영이 초등학교 4학년이 되자 태권도 대신 골프를 가르쳤다. 김세영은 “기억이 잘 나지 않을 만큼 아주 어렸을 때부터 오빠와 태권도장에 다녔는데 남자 아이처럼 아주 개구쟁이였다. 하지만 아무래도 딸이니까 거친 운동보다는 골프가 낫겠다고 판단하셔서 골프를 시작했다”고 했다.

김세영의 골프는 색깔로 치자면 ‘빨강’이다. 아버지 김씨는 “세영이가 주위가 좀 산만하고 거친 편이다. 어렸을 때는 더 그랬다”며 “하지만 골프 클럽만 쥐어주면 무섭게 집중력을 발휘했다. 골프 외에 것에는 크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데 신기하게도 골프를 할 때만큼은 열정적으로 몰입했다. 골프를 너무 좋아해 연습을 하라고 말해 본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했다.

김세영의 골프는 불같이 화끈하다. 특유의 보이시한 성격에 태권도를 하면서 남다른 배짱과 뚝심을 기르게 된 그는 늘 공격적으로 플레이를 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돌아가는 법이 없고 핀을 보고 샷을 한다. 김세영은 “돌아가는 플레이를 해 본 적도 있는데 오히려 결과가 좋지 않았다. 자신 있게 공격적으로 칠 때 결과가 좋았다”고 했다. 퓨어실크 바하마클래식 16번홀(파4)에서 두 번째 샷을 덤블 위로 보낸 뒤 기적같은 파 세이브를 할 수 있었던 것도 핀을 보고 공격적으로 샷을 했기 때문이었다.

‘트레이드 마크’가 된 김세영의 빨간 바지는 아버지의 아이디어였다. 아버지 김씨는 사주를 보러 갔다가 김세영의 불같은 성격을 눌러 주는 데는 빨간색이 잘 맞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김씨는 “골프는 심리적인 면이 크게 좌우하는 스포츠다. 빨간 색이 세영이의 생체 리듬과 잘 맞는다고 들었다. 그래서 빨간 옷을 입도록 조언했다”고 말했다.

빨간 바지는 김세영에게 행운의 상징이 됐다. 김세영은 2013년 4월 롯데마트 여자오픈에서 역전승을 시작으로 국내에서 거둔 5승을 모두 빨간 바지를 입고 달성했다. 퓨어실크 바하마 클래식에서도 그 빨간 바지를 입었다. 김세영은 “‘수영 황제’ 마이클 펠프스는 경기를 앞두고 주먹을 쥐었다 펴면서 긴장을 푸는 자기 암시를 걸었다. 나에게는 빨간 바지가 그런 역할을 한다. 빨간 바지를 입으면 심리적으로 안정이 되고 기운이 샘솟는다. 그래서 마지막 날엔 무조건 빨간 바지를 입는다”고 말했다.

물론 빨간 바지를 입고 늘 우승만 했던 것은 아니다. LPGA 투어 첫 대회(코츠 챔피언십)에서는 빨간 바지를 입고 예선 탈락을 했다. 김세영은 “전성기 시절의 타이거 우즈가 보여준 빨간 셔츠 공포처럼 필드에서 더 강력한 카리스마를 보여주는 선수가 되고 싶다. 그러려면 더 많은 우승을 하고 고른 성적을 내야 한다. 빨간 바지의 공포로 통하고 싶다”고 웃었다.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

김세영의 장타는 큰 매력이다. 김세영은 신장 163cm로 골프 선수치고는 큰 편이 아니지만 태권도로 단련된 단단한 하체로 주니어 시절부터 꼬마 장사로 통했다. 중학교 2학년 때였던 2006년 한국 여자 아마추어선수권대회에서 최연소 우승을 했다. 몇 달 뒤 메이저 대회인 익성배에서도 주니어 최장타자 이정민을 꺾고 또 우승했다.

프로 무대에 와서도 김세영 만큼 멀리 날리는 선수는 많지 않았다. 2011년 국내 투어에 데뷔한 김세영은 2013년 장타 부문 1위(266.9야드)에 올랐다. 지난해에도 드라이브 샷 부문 1위(264.7야드)에 올라 2년 연속 장타왕을 차지했다.

장타만 김세영의 무기는 아니다. 장타자가 그린 주변의 쇼트 게임이나 퍼팅에 약점을 보이는 것과 달리 김세영은 쇼트 게임도 잘 한다. 김세영은 “미국에 가면서 나보다 더 멀리 날리는 선수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드라이버에 비하면 쇼트 게임에 자신이 없었고, 단점을 없애기 위해 보이지 않게 노력했다”고 말했다.

LPGA 투어 데뷔 2개 대회 만에 우승을 한 김세영은 “자신의 결정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 무엇보다 기쁘다”고 했다. 김세영은 “안정적인 한국 투어를 접고 미국에 가서 왜 고생을 하느냐는 이야기를 들었다. ‘내 인생이니 내버려 두세요’라고 했지만 한편으로는 신경이 쓰인 것도 사실이다”라며 “한국에서 5승을 했지만 미국에서 첫 승은 느낌이 많이 다르다. 뭔가 큰일을 해낸 것 같고 그 순간만큼은 (김)효주도 부럽지 않았다”고 했다.

김세영은 우승 뒤 혼다 LPGA 타일랜드 공동 5위, HSBC 챔피언스 공동 16위 등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신인왕 랭킹 1위, 상금랭킹 4위, 세계랭킹 22위다. 그러나 그의 목표는 신인상이 아니다. 김세영은 “세계랭킹 1위가 되고 싶고, 골프가 올림픽에 복귀하는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 가서 메달을 따고 싶다.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꿈을 이루기 위해 미국에 온 것”이라고 말했다.

‘우연한 성공은 있어도 우연한 실패는 없다’는 이야기가 있다. 골프를 시작할 때부터 세계 최고의 무대를 꿈꾸고 달려왔고, 세계 최고의 위치에 오르기 위해 열정을 불태우고 있는 김세영의 성공 스토리는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었다.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을 것이다.

이지연기자 easygolf@joongang.co.kr

김세영 Profile
생년월일 1993년 1월 21일
신장 163cm
가족 관계 아버지, 어머니, 오빠, 여동생
학력 세화여자중학교-대원외고-고려대학교
프로 전향 2010년
존경하는 선수 박세리
취미 스키, 스노보드, TV 시청(요리 프로그램)
좋아하는 음식 순대국, 김치
이상형 사려 깊은 남자
특이사항 태권도 공인 3단
주요 경력 아마추어-2007, 2009년 국가대표
2009년 전국체전 2관왕(개인전, 단체전)
프로-KLPGA 투어 통산 5승
2013년 KLPGA 투어 다승왕(3승)
2014년 LPGA 투어 Q스쿨 공동 6위
2015년 퓨어실크 바하마클래식 우승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