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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PGA투어 경쟁력 5] 결이 달라도 너무 다른 LPGA와 KLPGA

고형승 기자2023.02.17 오전 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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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3월 마이크 완 당시 LPGA 커미셔너가 새로운 브랜드 포지셔닝을 위한 캐치프레이즈 드라이브 온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여성의 권익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단체와 여자 프로 골퍼의 기량 증가와 국위선양을 목적으로 하는 단체가 있다.

애초 두 단체가 지향하는 목표와 목적이 다르게 설정되어 있다 보니 그것에 도달하기 위한 과정에서의 자세나 생각이 사뭇 다르다.

전자는 미국여자프로골프협회(LPGA)이고 후자는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이다.

이것은 맞고 틀림의 문제가 아니다. 다름의 문제다. 하지만 목적이 이렇게 다르기 때문에 두 단체의 직원이나 나아가 이들을 이끄는 수장의 마인드 차이가 극명하게 비교될 수밖에 없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맞고 틀림은 없다. 다만 어느 것이 더 나은 투어 환경을 만들고 더 선진화된 행정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는지는 가늠해볼 수 있다.

1950년 설립된 LPGA가 밝히고 있는 궁극적인 목표는 골프를 통해 여성 권익을 보호하고 신장하는 것이다. 또 미래 골프 환경을 지속 확대하기 위해 주니어 육성을 통한 풀뿌리 스포츠를 강화하고 활성화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 특히 여성을 골프라는 스포츠에 참여시키면 LPGA라는 플랫폼, 나아가 골프라는 플랫폼이 넓어진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만큼 골프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진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모인 힘은 세상을 향해 긍정적이고 영향력 있는 메시지를 강력하게 던지는 데 쓰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

반면 KLPGA의 경우 정관 제1장 3조에 명기된 단체의 목적을 살펴보면 선수의 기량 증가와 국위선양이라는 말에 힘이 실려 있다. 국가 위상을 드높일 실력을 갖춘 프로 골퍼를 배양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엘리트 스포츠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편승한 목적 설정이었겠지만 2019년 개정된 협회 정관의 목적치곤 꽤 진부하다.

단순히 우수한 선수를 양성하고 그 선수가 세계에 나가서 우수한 성적을 거둠으로써 국가 이미지를 좋게 하는 게 목적이라면 LPGA와 결이 아주 다르다고 봐도 무방하다.

결국 조직을 통해 궁극적으로 무엇을 이루고 싶은 건지 두 단체가 극명하게 비교된다. 같은 골프 협회임에도 불구하고 출발선과 방향이 전혀 다르다. 출발선상에서 마인드가 다르다 보니 사업의 기조나 톤 앤드 매너가 다르다. 이는 스폰서나 선수를 대하는 태도나 방식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마이크 완 LPGA 전임 커미셔너의 체질 개선 노력

2010년 1월, 미국여자프로골프협회(LPGA) 여덟 번째 커미셔너로 부임해 11년간 근무한 마이크 완(Mike Whan)은 협회 발전에 지대한 공을 세운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마이크 완은 과거 스포츠용품사(윌슨) 마케팅 부서에서 팀장으로 근무하며 경력을 쌓았고 테일러메이드 마케팅 부문(북미 지역 총괄) 이사를 거쳐 미션아이테크하키(하키 장비 제조 업체)의 CEO를 역임했다.

그런 그가 LPGA 커미셔너가 된 것은 미국 여자 골프로서는 행운이었다. 커미셔너는 기업으로 따지면 전문 경영인이다. 그만큼 커미셔너의 기조나 행정(경영) 철학이 투어 발전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다.

대회장에서 마이크 완은 항상 혼자 다녔다. 그에겐 공식적인 비서가 있었지만 비서는 늘 사무실을 벗어나지 않았다. 대회장을 돌아다니던 완에게 LPGA 직원이 다가와 의전을 하려고 하자 그는 단호하게 “나는 내 일을 하러 가는 것뿐이니 당신은 당신의 일을 해요. 나를 따라다니는 게 이 골프장에 있는 이유가 아니잖아요”라고 말하곤 했다.

우르르 몰려다니면서 세력을 과시하려는 겉치레 따위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미국이나 유럽이라고 오너나 전문 경영인이 혼자 다니는 게 당연한 것은 아니다. 경호원부터 비서까지 밀착 마크해 따라다니는 모양새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비슷하다. 이것은 마이크 완이 현장에서 보여주는 마음가짐을 드러낸다. 대우받으며 돌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일을 하기 위해 뛰어다니는 것이다.

평소 마이크 완은 ‘역지사지’를 강조했다.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 먼저 파악하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 상대방 입장에서 충분히 생각하라고 강조했다.

이는 그의 이전 직장에서 경험한 바와 관련이 있다. 윌슨이나 테일러메이드에서 일할 때 협회와 일할 기회가 있었다. 당시 협회 직원들은 스폰서가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러니 정작 돈을 쓰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다.

마이크 완이 커미셔너로 취임한 이후 가장 먼저 협회 직원들에게 강조한 것이 바로 ‘상대를 먼저 생각하라’는 것이었다.

그의 기조가 잘 드러나는 대목은 또 있다. LPGA 직원들이 파트너를 대하는 원칙인데 이는 지금도 잘 지켜지고 있다. 다만 그 파트너가 눈치채지 못할 뿐이다. 그 원칙은 ‘모두가 만족하지만 양자 모두가 협상 테이블 위에 무언가 아쉬움을 남기고 오는 것’이다.

LPGA는 누군가에게 일방적으로 좋은 결과를 안겨주는 건 그리 좋은 협상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모두가 만족하지만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다는 건 다시 만나 대화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둔다는 뜻으로, 계속해서 관계를 이어가고 새로운 것을 도모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파트너를 대하는 이런 태도 때문에 LPGA에게 계약서는 단지 기본이며 시작일 뿐이다. LPGA는 늘 계약서에 명기된 사항을 토대로 무언가 만들 여지가 더 있는지를 연구한다. 그리고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곧바로 실행에 옮긴다.

계약서에 있는 것만 이행한다면 계약이 끝나는 시점에 그 관계는 그대로 끝난다고 생각한다. 같은 내용의 계약을 위해 거액을 다시 투자할 파트너는 없기 때문이다. 계약을 토대로 더 나은 발전 방향을 제시할 때 스폰서는 기꺼이 투자하고 이전보다 더 나은 조건에서 관계를 연장할 수 있다. 이것 역시 역지사지의 마인드에서 비롯된 것이다.

마이크 완이 등장한 이후로 협회는 부단히 체질 개선을 이어갔다. 그리고 10년이 지나자 LPGA는 유기적이고 능동적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LPGA

지금으로부터 13년 전인 2010년 마이크 완이 처음 커미셔너가 되면서 이전 협회의 구태의연한 행정과 차별화하기 위해 캐치프레이즈를 하나 만들었다.

“See Why Its Different Out Here!”

골프 팬과 파트너에게 ‘기존의 LPGA와 무엇이 다르고 왜 다른지 직접 경험하고 느껴보라’는 자신감에서 발현된 캐치프레이즈다.

마이크 완은 이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우며 협회 체질 개선에 돌입했다. 그리고 어떻게 변화하는지 전 세계에 보여주고 대회 수 증가나 치솟는 시청률로 그 방향이 옳았음을 입증해냈다.

미국에 국한하지 않은 유럽과 아시아 지역까지 범위를 확대하며 글로벌 투어로 몸집을 불렸다. 그 결과 시즌 초반과 막바지에는 아시아 지역을 돌며 경기가 열리는 이른바 ‘아시안 스윙’이 몇 년 전부터 정착됐고 이는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 됐다. 덩달아 여자 골프의 인기도 전 세계적으로 올라가며 인기 콘텐트로 자리매김했다.

그는 체질 개선을 마친 협회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었다. 그러면서 또 한 번 캐치프레이즈를 바꿨다. 짧지만 강력한 메시지를 선택했다.

“Drive On”

지금도 사용하고 있는 캐치프레이즈는 복합적 의미가 있다. 골프에서 사용하는 드라이브의 의미도 있지만 ‘우리가 앞장서서 나아가며 사회에 만연한 부조리와 불합리한 편견 그리고 불편한 시선 등을 대신 깨부술 테니 너희도 우리와 함께하면서 다음 세대를 위해 이제부터는 너희가 싸워야 해’라는 강력한 의미가 숨어 있다.

남녀 스포츠의 상금 불균형을 지적하며 사회적 인식 개선을 독려했고 어릴 때부터 소외당하거나 놀림을 받던 아이들을 힘껏 끌어안았다. 이는 골프를 통한 여권 신장과 우리의 미래를 책임질 주니어에 관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협회 목적과 맞닿아 있다.

LPGA는 영상을 만들어 이 강력한 메시지를 전파했다.

“누구에게 놀림당한 적이 있니? 외모나 체형이 적합하지 않다고 누가 놀려? 인종이나 성격으로 차별하니? 우리와 함께하자. 우리가 다 깨부숴줄게. 그럼 너희는 너희의 다음 세대를 위해 싸워 주렴.”

LPGA투어 선수들은 이후 자발적으로 나서 ‘드라이브 온 리플렉션(Drive On Reflections)’이란 영상에 등장했다. 그들은 어릴 때 받은 차별과 놀림 그리고 코치에게 받은 성추행 등을 공개하면서 ‘나는 당당히 맞서 싸웠고 너희도 할 수 있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모두 드라이브 온이라는 강력한 캐치프레이즈에서 시작된 것이다.

스포츠를 통해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 해당 스포츠 발전에 도움이 되고 단체의 목적에도 부합한다는 것을 직접 보여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기조는 제9대 커미셔너인 몰리 마르쿠스 사마안에 이르기까지 이어지고 있다. 사마안은 ‘사람’과 ‘파트너십’을 강조하고 있다.

LPGA라는 플랫폼을 확장하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사람과 파트너십이라고 그는 믿는다. 파트너와 긴밀하게 협력하고 협조하면서 LPGA라는 플랫폼을 넓힐 수 있으면 자연스럽게 투어는 발전하고 사람은 모일 것이라는 믿음이 바탕에 깔려 있고 이는 마이크 완의 ‘역지사지’ 행정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진 것이다.


KLPGA는 어떤 행정을 펼치는가

KLPGA는 한국여자프로골프투어(KLPGT)라는 주식회사를 만들어 기존 비영리 단체인 사단법인이 아닌 영리 단체로 체질을 개선했다. 수익 사업을 해보겠다는 방식으로 체질이 개선된 것이다.

그리고 주식회사의 대표이사 자리에는 전문 경영인이 아닌 프로 출신의 골퍼가 앉아 진두지휘하고 있다. 그럼 사단법인의 수장 자리에는 누가 앉아 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비영리 단체인 KLPGA의 회장은 기업인 출신 경영인이 앉아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포지션이 바뀐 게 아닌가’라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그림이 이상하다. KLPGA는 회원 복지와 권익 보호를 위해 존재하는 단체이며 그 내용은 프로 출신 인사가 더 잘 알고 행정을 펼칠 수 있다. 그런데 프로 출신도 아닌 기업인 그것도 금융업 출신 경영인이 맡아서 하고 있다.

정작 돈을 벌어야 할 주식회사 대표 자리에는 프로 골퍼 출신이 수년째 경영을 이어가고 있다. 그동안 해외 투어에서 활약한 선수들 덕분에 한국 골프가 성장했고 그 덕으로 여자 골프가 집중 조명을 받으며 여기까지 성장해온 것은 거부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럼 국내 투어 발전을 위해 수년간 대회를 지원해온 스폰서를 위해 KLPGT는 어떤 지원을 하고 있을까. 단순히 어르신들끼리 만나 ‘올해도 대회 열어야지’라는 한마디면 끝나는 형식적이고도 의례적인 소통이 전부인 대회도 많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니 점점 특색 있는 대회를 만들려는 노력은 온데간데없고 어떻게든 예산을 줄이려는 스폰서와 어떻게든 대회만 유치하면 된다는 대행사 그리고 그 사이에서 팔짱만 낀 채 ‘안전하게 대회만 끝나라’라는 식으로 방관하는 KLPGT만 존재할 뿐이다.

KLPGT의 경영 방식은 의외로 간단하다. ‘대회를 열기 위해서는 일정 금액(대회 공인료)을 내라’, ‘대회를 더 홍보하고 실시간으로 골프 팬에게 다가가려는 노력은 알아서 해라’, ‘대회장에 선수와 협회(임직원과 경기위원 등)를 위한 편의 시설을 만들어야 하므로 돈을 좀 내라’, ‘KLPGA와 함께하고 싶다면 돈을 내면 된다’는 식의 경영이다.

스폰서가 대회를 열어주는데 거기에 도움을 주려는 방법을 연구하는 것은 고사하고 ‘어떻게 하면 KLPGT 통장에 들어 있는 돈은 최대한 쓰지 않으며 투어 규모를 키울 수 있을까’만을 연구하고 있다. 그러니 앞에서는 웃으며 ‘KLPGA 최고’라고 엄지손가락을 세워 보이지만 뒤에서는 ‘갑질도 이런 갑질이 없다’면서 혀를 내두르는 스폰서 관계자가 많은 이유다.

이렇듯 목적과 목표 자체가 LPGA와 결이 다르니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행정이나 경영 방식도 차이가 있다. KLPGA 역시 글로벌투어로 나아가겠다고 공헌했지만 스폰서 입장에서 LPGA의 마인드를 선호하겠는가 아니면 KLPGT의 마인드를 선호하겠는가.

체중은 올리지 않으면서 서너 단계 위 체급에 있는 사람에게 호기롭게 도전장을 내미는 무모한 이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KLPGT는 이제부터라도 무대에 올라 경기 시작 5초 만에 녹다운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떤 목적을 가지고 어떤 행정을 펼쳐야 하는지 다시금 돌아봐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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