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뉴스

[고진영 인터뷰] 괜찮아, 지금처럼 하면 돼!

고형승 기자2022.10.07 오후 3:02

폰트축소 폰트확대

뉴스이미지

BMW레이디스챔피언십 출전 의사를 밝힌 고진영[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

1위의 무게에 관해 물어보면 흔히 그 무게와 부담을 오롯이 감당해내야 그 자리에 어울린다고 답한다. 하지만 현재 이 행성에서 가장 골프를 잘하는 스물일곱 살의 고진영은 매 순간 자신이 만족할 만한 경기를 하기 위해 노력할 뿐이라고 통달한 듯 말한다.

세계 랭킹 1위 고진영은 고질적인 왼쪽 손목 통증으로 병원을 찾았다. 딱히 다른 진단 결과가 나오는 것도 아니다. 그냥 늘 듣던 소리를 의사의 입을 통해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과정일 뿐이다. 이번에도 ‘피로 누적에 의한 염증’으로, 당장 치료해야 하는 특별한 증상이 있는 건 아니었다. 휴식이 최고의 치료임은 고진영 자신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마냥 쉴 수 없다는 것 역시 잘 알고 있다. 고진영은 현재진행형 ‘넘버원’이니까.

고진영은 흔히 욕심 많은 골퍼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욕심 없는 프로 선수가 있을까! 우리는 욕심을 드러내는 것보다 드러내지 않는 것을 ‘더 프로답다’고 평가한다. 누가 만든 평가 기준인지도 모른 채 말이다. 욕심을 드러낸다는 건 자신감의 발현이기도 하다. 7년(2013~2019년) 동안 고진영의 에이전트 역할을 한 구철 갤럭시아SM 이사의 말이다.

“2012년 KB금융그룹배여자아마추어골프선수권대회에서 고진영 선수를 처음 만났습니다. 까만 얼굴에 다부진 체격 그리고 또렷한 눈빛을 가진 선수였어요. 첫인상은 대단히 근성이 있는 선수라고 느꼈습니다. 대부분 그 또래 선수들은 수줍어하는 면이 있지만 고진영 선수는 달랐습니다. 어린 선수와 악수한 건 그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손을 꽉 잡으며 눈을 피하지 않고 인사하는 모습을 보며 ‘이 선수, 보통이 아니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고진영은 두꺼운 가면을 쓰지 않는다. 굳이 자신이 그 가면 속에 숨어 표정을 철저히 숨겨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아주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그러면서도 당당하게 상대를 대한다. 그것이 그의 장점이자 단점으로 거론되기도 한다. 누군가는 그런 모습을 불편하게 느낀다. 그것이 결코 버릇없거나 당돌하게 행동하는 것이 아님에도 가끔 사람들은 오해를 한다. 그런 점이 고진영은 답답하다.

과거 고진영을 옆에서 오랜 시간 지켜본 멘털 전문가와 코치는 공통으로 이렇게 말한다. “그는 차원이 다른 승리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극한 상황에서 오히려 마음을 비워내며 스스로 적정선을 찾아가는, 다른 프로 선수와 비교해 수준이 전혀 다른 레벨의 승리욕이 있어요. 어린 나이에 우승해야 한다는 강박을 내려놓고 오히려 경기 도중 자신의 감정과 감각에 집중하는 컨트롤 능력은 차원이 다르다고 봐야 합니다.”



내가 정말 세계 1위인가?

고진영은 최근 본지와 인터뷰를 통해 자신이 세계 랭킹 1위라는 자리에서 그동안 느낀 바를 자세히 털어놓았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는 올해 스물일곱 살이다. 고진영의 말이다.

“2019년에 처음 세계 랭킹 1위에 올랐을 때만 해도 일단 믿기지 않았어요. 얼떨떨하기도 하고. 그런 거 있잖아요.‘내가 정말 세계 랭킹 1위인가?’, ‘세계에서 가장 골프를 잘하는 선수가 나라는 뜻인가?’ 이런 생각이 머릿속을 계속 어지럽혔죠. 그건 당연히 부담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어요. 대회에 나갈 때마다 우승해야 기대에 부응하는 것으로 생각했죠.”

1위에 쏠리는 관심이 부담되는 건 아주 당연한 일이고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팬들은 늘 자신이 응원하는 선수가 우승하길 기대한다. 하지만 진정한 팬을 자처하는 이들은 꼭 그런 건 아니다. 우승도 좋지만 선수가 필드에서 플레이하며 밝게 웃는 모습을 더 보고 싶어 한다. 고진영은 팬들의 그런 마음을 이미 간파한 것으로 보인다. 계속해서 그의 말이다.

“세계 랭킹 1위에 오르고 약 한 달 동안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플레이하는 것처럼 경기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했어요. 사람들의 시선도 의식하게 되고 스윙도 어색하고 심지어 걸음걸이까지 내가 아닌 것처럼 느껴졌어요. 그러다가 2위로 세계 랭킹이 떨어지니 비로소 인간 고진영이 보이기 시작하더라고요. 사람들 앞에서 어색하게 웃으며 행동하는 어색한 고진영의 모습이요. 결국 마음을 비우고 자신을 내려놓지 않으면 그 무게에 짓눌려 더는 버틸 수 없다는 걸 깨닫게 됐어요. 그리고 다시 1위를 탈환했을 때 처음만큼 두렵거나 부담스럽게 느껴지지 않았어요. 그때부터는 무게를 감당해내야겠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옆에 있는 선수와 전혀 다를 바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그때부터 나 자신이 만족할 만한 경기를 하기 위해 집중했어요.”

세계 랭킹 1위에 연연하지 않으려는 그의 노력은 인터뷰 곳곳에서 드러난다. 고진영은 과거 국내 언론과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LPGA투어에는 좋은 선수가 많고 1위도 영원할 수는 없어요. 누구나 1위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자리에 신경 쓰거나 부담을 갖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고진영 스스로는 1위에 연연하지 않는다고 밝혔지만 150주가량 1위를 했다는 건 함께 투어 생활을 하는 선수들이 보기에도 대단한 기록임이 틀림없다.

특히 그의 성격처럼 시원시원하면서도 거침없는 샷과 안정감 있는 쇼트 게임은 선수들 사이에서 이미 유명하다.



약점이 없는 올라운더

LPGA투어 6승을 기록 중인 하타오카 나사는 일본 선수 중 세계 랭킹이 가장 높다(현재 9위). 하타오카 나사는 17세인 2016년에 이미 아마추어 선수로 일본여자오픈에서 우승하며 ‘천재 소녀’로 불렸다. 나사는 “고진영은 확실히 세계 최고의 선수입니다”라면서 “모든 플레이를 잘하고 약점 없는 ‘올라운더’입니다. 그를 보면서 쇼트 게임, 특히 100야드 안쪽의 샷을 더 연습해야겠다고 느낍니다”라고 말했다.

고진영과 세계 랭킹 1위를 놓고 경쟁하는 넬리 코르다(미국) 역시 그의 플레이를 놓고 ‘고진영 쇼’라고 표현하곤 한다. 코르다는 한국 기업의 후원을 받고 떡볶이를 사랑하는 친한파 골퍼로 유명하다. 그만큼 한국 선수들을 속속들이 잘 알고 있다. 넬리 코르다는 “고진영의 플레이는 솔직히 정말 멋있어요. 그의 완벽한 샷을 뒤에서 온종일 구경만 한 적도 있습니다”라며 경외의 표현을 쏟아냈다.

고진영이 세계 랭킹 1위를 지키는 힘은 기술적인 부분도 있지만 대부분의 선수는 그의 됨됨이에 관해 먼저 언급하곤 한다. 고진영은 한국 선수뿐 아니라 외국인 선수들과 두루 친하다.

특히 고진영과 잘 어울려 지내는 멕시코의 가비 로페스는 고진영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로페스는 “(경쟁자인) 내게 기꺼이 치핑과 퍼트를 알려주곤 합니다. 그와 가까이 지낸다는 것은 정말 행운이고 고마운 일입니다. 그는 내가 진심으로 존경하는 선수입니다. 나도 언젠가 고진영과 같은 선수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라며 애정을 한껏 드러냈다.

소피아 슈버트(미국) 역시 고진영에게 존경의 메시지를 전했다. 슈버트의 말이다. “개인적으로 고진영 선수를 존경합니다. 연습 라운드를 함께 한 적이 있어요. 정말 친절했습니다. 언젠가는 대회에서도 그와 플레이해보고 싶어요. 그는 티 샷부터 퍼팅까지 꾸준하고 탄탄한 실력을 갖추고 있어요. 아주 놀라운 선수이고 내가 만약 누군가를 닮고 싶다면 그건 바로 고진영이 아닐까 합니다.”



BMW레이디스챔피언십에 대한 애정

고진영 역시 자신을 계속 필드에 서 있게 만드는 힘을 주는 이들로 동료 선수들과 자신을 응원해주는 팬 그리고 가족과 후원사 식구들을 언급했다.

그는 본지와 인터뷰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늘 그들에게 힘을 얻습니다. 내가 있는 이 자리가 흔들림 없이 견고할 수 있는 원동력이죠. 그들이 보내는 따뜻한 눈빛과 말 한마디가 나에게는 큰 힘이 됩니다. 그래서 항상 고맙습니다.”

디펜딩 챔피언으로서 곧 국내 팬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고진영의 현재 상태가 궁금했다. BMW레이디스챔피언십이 1년 전 자신을 다시 세계 랭킹 1위로 올라가게 해준 대회이므로 애정 또한 남다르다. 고진영의 말이다.

“다른 대회와 마음가짐이 같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하지만 ‘디펜딩 챔피언이니까 올해도 꼭 우승해서 타이틀 방어에 성공해야지’ 이런 생각은 최대한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역시 그의 신념이 드러나는 대목이었다. 압박이 느껴지는 상황에선 최대한 자신을 내려놓고 승리욕을 절제하면서 스스로 컨트롤하려는 고진영만의 우승 프로세스를 벌써 가동 중이다.

계속 그는 출전 소감을 담담하게 전했다. “나를 제외한 어떤 선수도 우승할 수 있고 그들 역시 이번 BMW레이디스챔피언십에 우승하기 위해 출전할 겁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최대한 집중하면서 또 한 번 재미있는 경기를 치르고 올 생각입니다. 지난해 연장 승부 끝에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우승이라는 결과물보다 연장전을 치르면서 다음 단계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건 없어요. 올해 대회를 통해서도 무언가를 배우고 느끼고 한 번 더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으면 좋겠습니다.”

그의 각오를 전해 들으며 10여 년 전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빤히 상대를 쳐다보던 아직은 앳된 소녀의 얼굴이 오버랩됐다. 항상 언니들로부터 ‘고 선배(아무리 어려도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정확하게 전달하면서 붙은 별명)’라 불리던 그 시절 말이다. 지난 10년간 자신을 짓눌러온 무게를 어떻게 버텨냈을까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러면서 고진영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생각이 났다.

“고 선배, 잘하고 있어. 괜찮아. 딱 좋아. 지금까지 잘해왔고, 지금처럼만 하면 돼!”

※ 해당 콘텐트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10월호에서 볼 수 있습니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