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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만 달러 잭팟… “‘미쳤다’라는 말밖에 표현 못해”

김두용 기자2017.07.18 오전 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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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여자오픈에서 우승한 박성현

“'미쳤다.' 이 말밖에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없네요.”

박성현(24·하나금융그룹)이 올 시즌 세 번째 메이저 대회로 미국의 내셔널타이틀인 제72회 US여자오픈 우승의 기쁨을 이렇게 표현했다. 그는 여자 골프의 세계 최대 축제인 US여자오픈에서 화끈한 역전승으로 미국여자프로골프협회(LPGA)투어 첫 승을 메이저로 장식하며 새로운 골프 연대기의 서막을 열었다.

특히 박성현은 1998년 메이저인 맥도널드 LPGA챔피언십(현 KPMG 여자 PGA챔피언십)에서 첫 승을 거뒀던 박세리(40)처럼 자신의 첫 우승을 US여자오픈에서 챙기며 미국 무대 데뷔 첫해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17일(한국시간) 미국 뉴저지주 베드민스터 트럼프 내셔널 골프클럽에서 열린 대회 최종 4라운드. 선두에 3타 뒤진 채 4위로 출발한 박성현은 이날 무려 5타(버디 6개, 보기 1개)를 줄이는 ‘닥공 골프’를 선보이며 최종 합계 11언더파로 역전 우승에 성공했다.

박성현은 이로써 우승 상금 90만 달러(약 10억2000만원) 잭팟을 터뜨렸다. 올 시즌 145만 달러(약 16억4000만원)를 벌어들이고 있는 박성현은 단숨에 유소연(170만 달러)에 이어 LPGA투어 상금 순위 2위로 뛰어올랐다. 또 한국 선수로는 통산 8번째로 US여자오픈을 정복했다. 이 때문에 한국은 최근 10년간 7차례나 US여자오픈 정상에 오르며 여자 골프 최강국다운 면모를 뽐냈다.

지난해 국내 무대에서 7승을 수확했던 박성현은 생각보다 늦어지고 있던 첫 승 달성에 애가 탔다. 올 시즌 여러 차례 우승 기회가 있었지만 번번이 뒷심 부족으로 정상에 오르지 못했다. 경기가 뜻대로 잘 풀리지 않자 조급함은 더 커졌다. 답답했고, 원치 않던 잡음마저 일어났다. 함께 투어 생활을 하고 있는 어머니 이금자씨와 말다툼이 잦았다.

박성현은 “원래 사이가 좋고 다투는 일도 없었는데 미국에 와서 좀 부딪혔다. 어머니가 잔소리가 없는 편인데 괜히 저 때문에 고생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그래서 ‘미국에 오지 않았어야 했나’ 하는 회의감마저 들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우승을 확정 지은 뒤 어머니를 본 박성현은 참아 왔던 눈물을 왈칵 쏟아 냈다.

박성현은 어머니와 뜨거운 포옹을 하고선 우승이 실감 났다고 했다. 그는 "어머니가 '잘했고 수고했다'는 말 다음에 '미안하다'고 얘기하셔서 눈물이 났다. 저도 답답했는데 그 모습을 곁에서 지켜본 엄마가 더 답답했을 것이다. 엄마는 음식이 맞지 않는 미국에 와서 식사도 제대로 못 하고 계신다"며 눈물을 훔쳤다.

박성현은 자신의 최대 장기인 '닥공 골프'을 앞세워 역전승의 발판을 놓았다.

최종일 페어웨이를 한 번만 놓칠 정도로 정확도 높은 드라이브샷을 구사했다. 트럼프 내셔널 골프 클럽은 러프가 질겨 티샷이 승부의 관건으로 꼽혔다. 6700야드가 넘는 긴 코스에서 멀리 정교하게 보낸 박성현은 그린도 수월하게 공략할 수 있었다. 그린을 3번만 놓친 박성현은 28개의 퍼트를 기록하며 놀라운 피니시 능력을 보여 줬다.

144야드로 세팅된 16번홀(파3)에서 10언더파 공동선두였던 최혜진(학산여고3)이 티샷을 물에 빠뜨렸다. 최혜진이 4m 보기 퍼트마저 놓쳐 더블보기를 적은 탓에 박성현과의 격차는 2타로 벌어졌다.

박성현은 17번홀(파4)에서 1.5m 버디를 낚으며 더 달아났다. 하지만 까다로운 18번홀(파5)이 남아 있어 긴장감을 늦출 순 없었다. 특히 마지막 홀은 지난해 악몽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워터해저드가 길게 늘어진 홀이다. 박성현은 2016 US여자오픈 마지막 홀에서 세컨드 샷을 물에 빠뜨려 우승이 물거품된 바 있다.

104야드를 남겨 두고 박성현은 50도 웨지를 잡았다. 충분히 자신 있는 거리였다. 하지만 워터해저드를 너무 의식한 나머지 클럽이 두껍게 들어갔다. 이 세 번째 샷은 그린을 넘어 어려운 위치에 떨어졌다. 20m 거리에서 오르막 칩샷을 준비했던 박성현은 한참 뜸을 들였다. 정확하게 임팩트되지 않으면 공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갈 수도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박성현의 머릿속은 하얗게 변했다. 그때 캐디인 데이비드 존스(북아일랜드)가 박성현에게 용기를 북돋아 줬다. "평소 연습하던 대로 치면 된다. 실수해도 괜찮다"는 말에 자신감을 얻은 박성현은 칩샷을 핀 90cm 옆에 붙이며 우승에 마침표를 찍었다.


사진설명 : 박성현의 이름이 새겨진 US여자오픈 우승 트로피 [사진 김두용]

박성현은 우승 뒤 특별한 경험도 했다. 우승 트로피에 자신의 이름이 새겨지는 장면을 15분간 숨죽이며 지켜봤다. 35년 동안 미국골프협회(USGA)에서 챔피언의 이름을 새겼던 장인 더그 리처드슨(미국)이 한 땀 한 땀 정성을 담아 작업을 진행했다. 리처드슨은 US여자오픈을 정복한 한국 선수들의 이름을 모두 도맡아 왔다. 1995·1996·2006년 우승자인 안니카 소렌스탐(스웨덴)의 이름도 보였다. 박성현은 "이렇게 직접 이름이 새겨지는 작업을 목격하니 기분이 묘했다. 전설들 옆에 내 이름을 넣을 수 있어서 정말 영광"이라며 활짝 웃었다.

베드민스터(미 뉴저지)=김두용 기자 enjoygolf@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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