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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왕벌 박인비의 느긋한 봄날①

김두용 기자2015.03.31 오전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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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비는 “오빠는 멋진 부분이 많고 배려를 많이 해주는 등 성격이 나와 맞았다. 결혼도 안 했는데 약혼자와 같이 다닌다는 게 신경 쓰이고 숨겨야 될 부분도 많았다. 하지만 행복해지고 즐겁게 골프를 칠 수 있다면 굳이 신경 쓸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행복해지기 위해 시선에 얽매이지 않고 오빠와 같이 다니기로 결정했다”고 털어놓았다. [노건우 사진작가]

‘황금곰’ 잭 니클라우스는 자서전 에서 1957년 9월 대학 캠퍼스에서 아내 바바라를 만난 후로 삶이 달라졌다고 썼다. 1960년 둘은 결혼했고, 함께 성장했다. 니클라우스는 이듬해 프로 전향을 한 뒤 메이저 18승 등 무수한 업적을 남겼다. 그는 바바라를 ‘나의 토대, 나의 목소리, 나의 반향판, 나의 가장 큰 후원자, 나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사랑’이라고 표현했다. 지난해 결혼한 박인비도 크게 다르지 않다. 박인비는 평생의 반려자이자 스윙 코치이자 최고의 친구인
남기협 씨와 함께 새롭고 화사한 봄날을 준비하고 있다.

여행하는 기분으로 투어 생활
박인비는 지난 해 결혼을 앞두고 세상에서 가장 로맨틱한 프러포즈를 받았다. 남씨가 라디오에 사연을 보내 실명까지 거론하면서 프러포즈를 한 것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2012년 프랑스 에비앙 여행이었다. 박인비는 “오빠와 투어를 함께 다니기 시작한 뒤 처음으로 우승한 대회가 에비앙 마스터스다. 긴 슬럼프를 털어내고 우승을 한 대회라 기분이 정말 좋았다”고 고백했다. 이 커플에게 만년설이 쌓인 알프스 산맥은 더욱 아름답게 다가왔다.

2014년 10월 시즌 중 결혼식을 올린 박인비 커플은 12월에야 신혼여행을 다녀왔다. 몰디브의 해변에서 모처럼 휴식을 즐겼다. 박인비는 “그림에서만 보던 해변가들이 눈앞에 펼쳐져 현실이 아닌 것 같았다”며 달콤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두 번째 허니문의 테마는 신비의 ‘오로라’ 여행이다. “오로라를 볼 수 있는 아이슬란드나 노르웨이가 다음 여행의 행선지가 될 것”이라는 박인비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전 세계를 누벼야 하는 직업이지만 사실 이 커플은 비행기를 타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제 공식적인 커플이 된 만큼 여행을 하는 기분으로 투어를 돌고 있다. 애정 표현도 잘 하는 편이다. 박인비는 ‘골프와 남편 중 뭐가 더 중요하냐’는 노골적인 질문에도 전혀 망설임 없이 “남편이 제 인생의 1순위”라고 답했다. 여전히 달콤한 신혼을 즐기고 있는 남씨도 “질문 자체가 잘못된 거 아니냐. 직장과 배우자 중에 선택하라고 한다면 답은 뻔히 정해진 거다”며 대수롭지 않게 반응했다.

비시즌인 동계 훈련기간에는 커플이 함께 라운드를 한다. 남씨도 프로 출신이라 만만치 않은 실력자지만 아내에게는 견줄 정도가 아니라고 한다. 결혼 전에는 내기 골프도 했던 남씨는 “결과가 뻔하고 지금은 같은 주머니를 차고 있기 때문에 크게 흥미가 없다”라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부부·스승-제자, 환상의 커플
박인비는 고등학교 3학년 때였던 2006년에 25살의 남씨를 골프 아카데미에서 만났다. 당시에는 별다른 감정이 없었다. 박인비는 “오빠를 처음 봤을 때는 그냥 아저씨 같았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2년 뒤 KPGA 정회원이었던 남씨가 자신의 투어 꿈을 포기하면서까지 캐디를 자청했고, 이들의 관계도 조금씩 진전되기 시작했다.

2008년 US 여자오픈 이후 박인비에게 슬럼프가 찾아왔다. 견디기 힘들만큼 벅찼고, 골프를 그만둘까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2009~2011년 깊은 늪에 빠졌던 박인비는 “화나는 단계를 지나서 포기 단계에 이르렀다. 인생이 불행했고, 골프를 그만두고 싶었다”고 털어 놓았다. 이때 남씨가 흔들리는 박인비를 잡아줬다. 2011년 8월 남씨와 약혼한 박인비는 서서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2012년 시즌부터는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함께 투어를 다녔다. 남씨는 매니저이자 스윙 코치 역할을 했다.

박인비는 “오빠는 멋진 부분이 많고 배려를 많이 해주는 등 성격이 나와 맞았다. 결혼도 안 했는데 약혼자와 같이 다닌다는 게 신경 쓰이고 숨겨야 될 부분도 많았다. 하지만 행복해지고 즐겁게 골프를 칠 수 있다면 굳이 신경 쓸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행복해지기 위해 시선에 얽매이지 않고 오빠와 같이 다니기로 결정했다”고 털어놓았다. 마음이 한결 편안해진 이 커플은 환상의 하모니로 부활을 노래했다.

박인비는 2012년 4대 메이저 대회 중 3차례나 톱10에 이름을 올렸다. 브리티시 여자오픈에서는 준우승을 차지했다. 7월 에비앙 마스터스에서는 4년 1개월 만에 LPGA 투어 통산 2승째를 챙겼다. 그해 상금랭킹 1위를 차지했고, ‘골프 여제’ 탄생의 서막을 알렸다. 박인비는 “오빠와 함께 첫 우승을 일궜던 에비앙 마스터스는 평생 잊을 수 없다”라고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박인비의 ‘컴퓨터 퍼트’는 남씨와의 합작품이다. 남씨는 2012년 박인비에게 말렛형 퍼터 사용을 권했고, 최상의 결과를 낳았다. 투어 프로 시절 퍼트를 잘 하는 편이 아니었지만 남씨는 무거운 말렛형 퍼터가 박인비와 밸런스가 맞다고 생각해 퍼터 교체를 권했다.
애인의 말을 듣고 골퍼에게 ‘애인’과 다름없는 퍼터를 바꾼 박인비는 승승장구했다. 신비의 판도라 상자를 연 듯한 기분이었다. 2013년 박인비는 ‘골프 여제’로 당당히 세계무대를 호령했다. 나비스코 챔피언십부터 웨그먼스 LPGA 챔피언십, US 여자오픈까지 메이저 3연승의 파죽지세를 이어갔다. 메이저 3연승은 1950년 베이브 자하리아스 이후 63년 만에 나온 대기록이다.

그해 박인비는 상금왕과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다. 올해의 선수상 수상 연설에서는 “나를 위해 어떤 희생도 마다하지 않았다. 영어를 못하는데도 나와 함께 외국을 다니는 결단을 했는데 그 이유는 단 한 가지, 나를 믿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제 약혼자가 운 좋은 사람이라고 하지만 틀렸다. 운이 좋은 사람은 바로 나다. 약혼자가 있었기에 골프와 다시 사랑에 빠질 수 있었다”라고 진한 애정이 담긴 소감을 밝혔다. 또 한국어로 “오빠 고마워. 사랑해”라고 말하며 울먹이기도 했다.

천생연분이라고 할 정도로 서로 궁합이 잘 맞는다. 오랫동안 함께 다니고 코치와 제자 사이라 마찰이 있을 법도 한데 크게 부딪힌 적이 없다고 한다. 박인비는 ‘주도권을 누가 쥐고 있냐’는 애꿎은 질문에 “남편이 스윙 코치라 주도권을 뺏어올 일이 별로 없다”라고 수줍게 웃었다. 그리고는 “기술적인 부분에 관한 건 남편 말을 많이 듣는 편이다. 제가 많이 양보하는 스타일이고, 남편도 말을 잘 들어주는 유형이라 의견 충돌이 많지 않다”고 덧붙였다. 서로를 배려하는 심성 고운 스타일이라 동료들에게도 부러움을 산다. 박인비의 절친 유소연은 “배려심이 깊고 성격 좋은 기협 오빠이기에 결혼 전부터 투어 생활하는 게 가능했다”라고 평가했다.

김두용 기자 enjoygolf@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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