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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준의 세컨드샷-10대 여제 시대

성호준 기자2015.03.25 오전 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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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에비앙 챔피언십 우승 세리모니에서 가장 존경하는 거인 안니카 소렌스탐 옆에 선 김효주. 만 35세에도 10승을 한 소렌스탐처럼 김효주도 롱런할 수 있을까. [골프파일]

기자는 피닉스 와일드 파이어 골프장에서 김효주와 스테이시 루이스의 결투를 세대대결로 봤다. 열 살 차이가 나는 두 선수의 경기에서 김효주가 이겼다. 김효주는 아직 만 19세다.

올 들어 20대 선수와 10대 선수의 우승 대결이 이전에도 세 번 있었다. 최나연이 리디아 고를 개막전에서 꺾었고, 박인비는 리디아 고를 싱가폴에서 묶었다. 리디아 고가 호주의 난코스인 로열 멜버른에서 양희영을 누르고 한 번 우승했지만 팽팽한 접전은 아니어서 큰 의미를 두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아직 10대는 좀 무리인가라는 생각도 했는데 김효주가 올 들어 벌어진 가장 격렬한 전투에서 루이스를 잡았다. 이제 다시 주도권은 어린 선수쪽으로 넘어온 것 같다.

현재 여자골프의 세계랭킹 1위는 만 17세 리디아 고다. 김효주도 세계랭킹 4위로 올라서면서 여제 경쟁에 본격 뛰어들었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닌 선수”라는 김효주의 주장과 달리 기자가 보기에 그는 가장 강력한 여제 후보다.

세대대결을 20대와 10대로 무 자르듯 구분하는 것은 아니다. 김효주도 7월이면 만 20세가 된다. 골프의 세대대결은 10대 20대가 아니라 베테랑의 경험, 지혜와 어린 선수의 힘과 패기의 각축으로 정의할 수 있겠다.

흐름은 명백하다. ‘여제’라고 불리는 여자 골프 최강자의 나이는 꾸준히 어려지고 있다. 만 35세에도 시즌 10승을 하면서 정상을 지켰던 안니카 소렌스탐에서 20대 중반의 로레나 오초아로 낮아졌고 이후 20대 초반의 신지애와 청야니, 다시 20대 중반의 박인비, 스테이시 루이스에서 이제 10대인 리디아 고가 1위가 됐다.

어느 정도의 출렁거림은 있지만 최고 선수의 연령이 낮아지는 흐름은 뚜렷하다.

랭킹 1위 선수의 나이가 어려진다는 것은 선수들의 전성기가 예전보다 더 어린 나이에 형성된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한국 선수를 포함한 동양선수들은 확실히 전성기가 어리다. 신지애가 다시 세계랭킹 1위에 오르지 못한다면 그의 전성기는 스물 두 살 때인 2010년으로 기록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청야니가 다시 세계랭킹 1위에 오르지 못한다면 역시 그의 전성기도 스물두 살인 2011년이라고 평가될 것이다.

박세리가 US오픈과 LPGA 챔피언십에서 동시에 우승한 해는 21세 때였고 LPGA 투어 25승 중 21승을 26세 이전에 했다.

아직 잘 하고 있고 다시 한 번 최고의 활약을 펼칠 가능성도 충분하지만 현재까지만 보면 박인비가 최고의 활약을 펼친 시기는 2012년 7월 에비앙부터 2013년 6월 US오픈까지다. 박인비가 만 스물네 살 때다.

한국계인 미셸 위는 2승을 거둔 지난해 성적도 괜찮았지만 PGA 투어에서 68타를 친 만 14세, 혹은 4개 메이저대회에서 연속 3위(2005년 브리티시여자오픈~2006년 US여자오픈)이내에 든 만 16세 때 더 찬사를 받았다.

투어 전체 우승자의 평균 연령으로 봐도 이런 흐름은 명확하다. 2014년 LPGA 투어 대회 31개 공식 대회에서 우승자 평균 연령은 24.7세였다. 이전에 비해 낮아졌는데 올해 6개 대회에서 우승자의 평균 연령은 23세대. 지난해 10대 우승자는 6번 있었으나, 40대 이상 우승자는 없었다.

지난해 기준 KLPGA는 LPGA에 비해 4살이 더 어리다. 지난해 27개 대회에서 10대 우승자는 13번이었다. 25세 이상 우승자는 2번에 불과했다. 가장 나이 많은 우승자는 28세였다. 우승자의 평균 연령은 20.7세였다.

우승자의 나이가 어려진 건 김효주, 백규정 등 1995년 전후 태어난 뛰어난 선수들의 활약 때문이다. 꼭 이례적인 일이라고 볼 수는 없다. 전세계적인 현상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현 1위 리디아 고와 태국의 아리야 주타누간이 10대 중반부터 언니들을 위협하는 경기력을 보였다. 서양에서도 렉시 톰슨, 찰리 헐 같은 10대 천재들이 나오고 있다.

이런 통계를 보면 세계 최고가 되기를 원하는 여자 골프 선수는 일찍 프로로 전향하고 일찍 빅리그에 가서 싸우는 것이 효율적으로 보인다. 김효주와 백규정은 적절한 시기에 LPGA 투어에 진출했고 김세영, 장하나는 한 두 해 먼저 갔어도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된다.

안니카 소렌스탐을 잊지 못하는 사람들을 갸우뚱하게 한 “서른 살이 되면 은퇴하겠다”는 리디아 고의 발언도 이해가 간다.

여자 골프의 어린 챔피언 현상은 장단점이 있다. 신선한 10대 챔피언이 더 매력적일 수도 있고 세상을 알고 지혜가 있는 30대 챔피언이 팬들을 더 많이 모을 수도 있다.

어린 챔피언 현상의 아쉬운 점은 있다. 팬들이 어린 천재에 열광하는 이유는 단지 젊고 신선하고 예뻐서가 아니다. 물 위에 드러난 그들의 모습이 단지 빙산의 일각 같은 것이라고 생각해서다.

아직 어린 선수가 보여주는 게 저 정도라면 20대, 30대가 되어 수면 아래에 있는 거대한 얼음까지 드러난다면 얼마나 대단할까라는 기대다.

그러나 10대 혹은 20대 초반에 드러난 그 얼음산이 그들의 모든 것일 수도 있다. 현재 뛰어난 활약을 보이는 어린 선수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그럴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성호준 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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