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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라이벌 열전① 침묵의 암살자와 철녀

서창우 기자2015.01.14 오전 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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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비와 스테이시 루이스. 이 둘의 라이벌 구도는 LPGA 투어 전체에 흥미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골프파일]

국어사전에 라이벌은 ‘같은 목적을 가졌거나 같은 분야에서 일하면서 이기거나 앞서려고 서로 겨루는 맞수’라고 되어 있다. 스포츠 세계에서 라이벌의 존재는 서로의 목표 의식과 승부욕을 자극하고, 팬들 입장에서도 더욱 흥미로운 볼거리를 제공한다. J골프에서 2015 시즌을 뜨겁게 달굴 라이벌 열전 시리즈를 연재한다. 첫 번째 주인공은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서 가장 강력한 라이벌로 꼽히는 박인비(KB금융)와 스테이시 루이스(미국)다.

박인비와 루이스는 지난 2012년 ‘청야니 시대’가 막을 내림과 동시에 각각 최저타수상과 올해의 선수를 양분하며 본격적인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다. 이듬해 박인비는 메이저 3연승을 포함해 시즌 6승을 거머쥐며 루이스에 한 발 앞서 나갔다. 메이저 3연승은 LPGA 투어에서 63년 만에 나온 대기록이기도 했다. 자연스레 박인비의 캘린더 그랜드슬램 달성 여부를 놓고 관심이 집중됐다. 이에 루이스는 미국 언론과 인터뷰에서 “올해부터 메이저 대회가 하나 더 늘어 5개가 됐다. 모두 우승해야 그랜드슬램”이라며 경계하기도 했다.

지난해도 둘은 시즌 내내 1위 자리를 놓고 자웅을 겨뤘다. 2013년 라이벌의 승승장구에 자존심이 상할 법 했던 루이스는 지난해 6월 59주째 세계랭킹 1위를 고수했던 박인비를 끄집어 내리며 선전포고했다. 둘이 겨뤘던 타이틀의 향방은 시즌 최종전인 LPGA 투어 CME 투어 챔피언십에 가서야 갈렸다. 루이스가 대회 9위에 오르며 시즌 3관왕(올해의 선수, 상금왕, 최저타수상)을 달성했다. 반면 박인비는 공동 24위에 그쳤다. 박인비는 가장 애착을 보여왔던 올해의 선수상 부문에서 점수를 추가하지 못하며 2연패 달성에 실패했다. 그러나 박인비는 지난해 10월 세계랭킹 1위 자리를 되찾았고, 13주째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박인비와 루이스는 지난 시즌 최고의 명승부를 연출했다. 루이스는 골프채널과 인터뷰에서 “지금껏 서로 베스트 컨디션으로 맞붙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만약에 우리가 동반라운드를 할 때 둘 다 최고의 플레이를 펼친다면 재밌을 것이다. 드라마틱한 대회가 될 것”이라고 했고, 이내 소원은 이뤄졌다. 지난해 11월에 열린 LPGA 투어 푸봉 타이완 챔피언십에서다. 이 대회에서 박인비는 1, 2라운드에서 18언더파를 몰아치며 무서운 상승세로 타수를 줄여갔다. 3, 4라운드에서는 박인비가 4타를 줄이는 사이 루이스는 11타를 줄이며 바짝 추격했다. 그러나 뛰어난 위기 관리능력으로 무장한 박인비가 결국 우승컵에 입을 맞췄다. 골프채널은 이 대회를 '2014 LPGA 10대 뉴스'로 선정하기도 했다.

박인비와 루이스의 성격은 정반대다. 박인비는 ‘침묵의 암살자’라는 별명답게 조용한 성격이다. 필드 위에서도 좀처럼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반면 루이스는 직설적이다. 가끔 불같은 성격을 내비치기도 한다. 루이스는 지난 2013년 레인우드 클래식 직후 “우승을 뺏긴 기분이다. 중국 팬들에게 매우 실망했다. 퍼트할 때마다 터지는 카메라 플래시와 시끄러운 갤러리들로 인해 경기를 치르는데 힘들었다”고 말해 빈축을 샀다.

이 둘은 정상에 오르기까지 아픔을 겪기도 했다. 박인비는 2008년 메이저 US여자오픈 우승과 함께 메인 스폰서 계약을 체결하는 등 빠른 성공을 눈앞에 두는 듯 했다. 그러나 이듬해부터 부상이 겹치면서 2011년까지 슬럼프가 이어졌다. 결국 박인비는 지난 몇 년간 메인 스폰서 없이 대회를 치러야 했다. 루이스는 더 큰 아픔이 있다. 11세 때 척추 뼈가 휘는 척추 측만증 진단을 받았다. 18세 때 척추에 티타늄 고정물과 5개의 나사를 삽입하는 대수술을 받았다. 그러나 루이스는 이런 핸디캡을 극복하고 세계 최고의 골퍼가 됐다.

이들은 라이벌로서 서로를 어떻게 생각할까. 루이스는 “우리는 서로에게 자극을 주면서 더 잘하는 것 같다. 지난 2013년 박인비의 활약을 보고 압박감을 많이 받기도 했다”고 털어놓았다. 박인비도 “항상 대회 기간 중에 루이스의 성적을 확인한다. 루이스는 언제나 좋은 자극이 된다"고 말했다.

박인비와 루이스의 라이벌 구도는 현재 진행형이다. 길게 내다보면 명예의 전당 입성을 두고 경쟁을 해야 한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기 위해서는 LPGA 투어 풀시즌 10년을 채우고 명예의 전당 포인트 27점이 필요하다. 현재 박인비는 8년에 19점, 루이스는 6년에 17점을 획득하고 있다.

박인비와 루이스의 시즌 첫 대결은 29일부터 열리는 LPGA 투어 개막전인 코츠 챔피언십에서 이루어질 전망이다.

서창우 기자 realgolf@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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